21년을 기다린 첫 문장

요하네스 브람스

by크로마

요하네스 브람스는 자기가 쓴 교향곡을 해체했다. 네 악장 가운데 첫 악장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걷어냈다. 느린 악장은 버렸다. 끝악장은 완성되지도 않은 채로 접었다. 남긴 첫 악장은 교향곡이기를 그만두고 피아노 협주곡의 첫 악장이 되었다. 걷어낸 악장 가운데 하나의 재료는 십수 년을 떠돈 끝에 《독일 레퀴엠》의 장송 행진곡으로 되살아났다. 스물한 살에 시작한 그 악보는 결국 교향곡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 악보는 1854년에 놓였다.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진 해로, 스물한 살의 브람스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이 쓰고 있는 음악을 두 대의 피아노로는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곧 알았다. 악보는 관현악으로 옮겨졌고 네 악장짜리 교향곡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클라라 슈만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자신의 그 실패한 교향곡으로 협주곡을 만들어 그것을 연주하고 있더라는 이야기였다. 실패한 교향곡은 그가 자기 악보를 부르는 말이었다. 꿈에서 깬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가 교향곡 1번을 오랜 시간 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반년쯤 전 슈만은 자신이 창간했던 음악 잡지에 오랜 침묵을 깨고 글 한 편을 실었다. 요아힘의 소개장을 들고 뒤셀도르프의 문을 두드린 무명의 스무 살 피아니스트를 두고 쓴 글이었다. 이 젊은이가 왔고 그의 요람 옆에는 우아함과 영웅주의가 함께 서 있었다고 그는 적었다. 〈새로운 길(Neue Bahnen)〉이라는 제목이었고 슈만이 남긴 마지막 비평문이 되었다. 십수 년 만에 펜을 든 거장이 직접 후계자로 지목한 스무 살의 작곡가 브람스. 그가 앞으로 무엇을 써낼 것인지를 이제 유럽 음악계 전체가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기다림이 브람스를 짓눌렀다. 헨델은 《메시아》 전곡을 스물네 날에 썼다. 브람스는 자신의 교향곡 1번 한 곡에 스물한 해를 들였다고 말한다. 1855년에 시작해 1876년에 끝냈다는 것이다. 같은 형식의 예술 안에서 이토록 벌어진 두 시간을 재능의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헨델의 스물네 날이 무대에서 보낸 반생의 결산이었듯 브람스의 스물한 해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만 그 이유는 그의 안이 아니라 등 뒤에 서 있었다.


그 오랜 고뇌의 깊이를 전하는 말이 하나 있다. 마흔을 코앞에 둔 1870년대 초, 그는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자신은 결코 교향곡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베토벤이라는 거인이 늘 등 뒤에서 행진하는 소리를 들으며 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짐작도 못 할 것이라고 말이다. 브람스의 첫 전기를 쓴 막스 칼벡이 전한 말이고 칼벡의 서술은 오늘날 그리 신뢰받지 못하지만, 스무 해 넘게 첫 음 앞에서 물러선 사람의 자리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문장도 없다. 그때 그는 이미 실내악과 가곡으로 이름을 얻은 작곡가였고 교향곡 완성을 불과 몇 해 앞둔 시점이었다. 마흔에 이르러 명성마저 손에 쥔 사람이 여전히 그 첫 음 앞에서 물러서고 있었던 것이다. 등 뒤의 발소리. 그것은 한낱 비유가 아니라 첫 음을 쓰려할 때마다 실제로 그를 되돌려 세우는 압력이었다.


두 번째 시도의 초고는 1862년에 나왔다. 스물아홉의 브람스는 그해 여름 클라라 슈만과 친구 알베르트 디트리히에게 첫 악장을 보여주었다. 클라라가 요아힘에게 보낸 편지에 그 악장의 첫머리가 적혀 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곡의 첫머리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 팀파니가 심장처럼 두드리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와 같은 그 유명한 서주는 그때 아직 없었다. 그는 곡의 입구를 십사 년 뒤에야 지어 붙인 셈이다. 그리고 첫 악장에 값할 나머지 세 악장을 더구나 첫 악장보다 더 강렬해야 할 마지막 악장을 써 붙이는 일 앞에서 그는 번번이 멈춰 섰다. 초고는 바카라상 위에 놓인 채 해를 넘겼고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1868년에 스위스에 머물던 브람스는 클라라의 생일에 맞춰 짧은 악보 한 줄을 적어 보냈다. 높은 산 위에서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에게 천 번의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그 아래에 오늘 알프호른이 이렇게 불었다고 덧붙였다. 산에서 주워 온 목동의 가락처럼 건넨 그 선율을 오늘날 학자들은 브람스 자신이 지어낸 것으로 본다. 자기가 만든 것을 남의 것인 양 내밀었다. 그 선율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서랍 속에서 팔 년을 기다렸다.


1876년 마침내 교향곡 1번이 완성되었다. 그해 가을 그는 마흔셋이었다. 베토벤이 첫 교향곡을 내놓은 것이 스물아홉이었음을 떠올리면 마흔셋의 브람스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출판업자 짐로크는 이미 몇 해 전부터 편지로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올해도 교향곡은 없는 것이냐고. 슈만의 예언이 활자로 박힌 지 사반세기, 그 사이 쌓일 대로 쌓인 기대 앞에서 브람스는 초연의 자리부터 신중하게 골랐다. 그가 택한 곳은 빈도 라이프치히도 아닌 바덴의 작은 도시 카를스루에였다. 베토벤을 숭배하는 빈의 청중과 가차 없는 비평가들 앞에 이 곡을 처음 내놓는 일이 그에게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친구인 지휘자 오토 데소프에게 좋은 벗과 좋은 지휘자와 좋은 관현악단이 있는 작은 도시에서 이 곡을 처음 듣는 것이 오래된 은밀한 소망이었다고 적어 보냈다. 초연의 지휘봉조차 그는 자신이 잡지 않았다. 1876년 11월 4일 데소프의 지휘 아래 교향곡 1번이 처음 울렸다.


그날 밤 카를스루에의 청중이 무엇을 들었는지는 지금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마지막 악장은 곧장 노래를 내놓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현이 조각난 소리를 더듬고 그 위로 호른이 알프호른의 그 선율을 길게 불어 올린다. 팔 년 동안 서랍에 있던 엽서가 여기서 소리가 된다. 그다음 세 악장 내내 한 음도 불지 않고 앉아 있던 트롬본이 처음으로 입을 연다. 스물한 해를 미룬 사람이 곡 안에서도 이 악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아껴 두었던 것이다. 짧은 코랄이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유명한 선율이 현악기에서 흘러나온다.


베토벤의 9번은 정반대로 간다. 그는 마지막 악장의 문을 굉음으로 부수고 들어가 첫머리부터 밝은 창을 한 번에 확 열어젖힌다. 브람스는 어둠 속에서 문을 세 번 두드린다. 호른으로 한 번 트롬본으로 한 번 그러고도 한 번 더 숨을 고른 뒤에야 창을 연다. 작은 창으로 들어온 빛을 아까워하며 방을 천천히 채운다. 밀어붙일 수 있는 구간에도 그는 숨을 고른다.


그러니 이 곡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가 지운 것을 세어 볼 수 있다. 교향곡이기를 그만둔 악보가 둘이다. 하나는 협주곡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세레나데가 되었다. 완성되지 못한 채 접힌 끝악장이 하나. 십사 년이 지나서야 지어 붙인 입구가 하나. 세 악장 동안 입을 다물게 한 악기가 하나. 남긴 것은 여덟 해를 서랍에 둔 엽서 한 장과 첫 악장의 초고뿐이었다. 스물한 해 동안 그는 생각하고 지우고 생각하고 지우며 다른 작품을 채워나갔다.


정작 브람스 자신이 그 곡을 두고는 "길고 그다지 사랑스럽지도 않은 곡이다"라며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평을 했다. 그리고 스물한 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도 마냥 감탄하지는 않았다. 클라라 슈만은 이 곡의 마지막 대목이 음악적으로 다소 밋밋하며 내면이 아니라 바깥에서 온 감정에 기댄 화려한 마무리에 가깝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당대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곡을 가리켜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 불렀다. 베토벤이 아홉 곡에서 멈춘 그 위대한 계보를 브람스가 한 칸 이어 붙였다는 뜻이었으니 본래는 더없는 찬사였다. 실제로 마지막 악장의 그 선율은 '환희의 송가'와 마찬가지로 이웃한 음들을 한 걸음씩 밟아 올라가는 소박한 걸음걸이를 하고 있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전체의 구도 또한 베토벤 5번이 네 개의 음표로 걸었던 바로 그 길과 겹쳐 있었다. 조성마저 같은 다단조였다. 그러나 브람스는 이 별명을 조금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닮음을 거듭 지적할 때마다 그는 그쯤은 어떤 바보라도 알아본다고 퉁명스럽게 받아쳤다고 전해진다. 그 짧은 대꾸 속에는 베토벤과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스물한 해를 보내고도 끝내 베토벤의 이름과 나란히 호명되고 만 사람의 오래된 긴장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 이 이야기의 가장 깊은 역설이 놓여 있다. 브람스의 스물한 해는 결코 침묵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그동안 피아노 협주곡과 두 곡의 세레나데, 여러 편의 실내악과 가곡, 변주곡을 써냈고 그 작품들은 지금도 무대에 오른다. 손이 멎은 것은 오직 교향곡이라는 형식 앞에서였다. 다른 모든 형식은 그에게 자유로웠으나 베토벤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운 그 한 형식에서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교향곡이 아닌 것들'의 목록을 다시 보면 관점이 달라진다. 그 목록의 맨 앞에 있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애초에 그가 해체한 교향곡의 첫 악장이었다. 세레나데도 한때 교향곡이었다. 협주곡에서 그는 독주와 관현악을 맞세우는 법을 익혔고 세레나데와 변주곡에서는 큰 편성을 다루고 긴 호흡을 끌고 가며 관현악의 무게를 배분하는 법을 한 겹씩 손에 새겼다. 교향곡을 지운 시간은 동시에 교향곡을 쓸 수 있는 손을 만들어 가던 시간이었다.


그가 찾아낸 것은 베토벤과 다른 음악이 아니라 베토벤을 통과한 자기 자신의 어법이었다. 그런데 그 어법의 가장 또렷한 흔적은 정작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 그 유명한 선율이 지나가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대목, 음들이 3도씩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짧은 구간이다. 훗날 브람스의 지문이라 불리게 될 3도의 사슬이 여기 이미 들어 있다.


아홉 해 뒤 그는 마지막 교향곡을 썼다. 4번에는 서주가 없다. 서주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 부를 만한 것 자체가 없다. 첫마디는 온전한 마디가 아니라 한 박이 모자란 마디이고 바이올린은 그 못 갖춘마디의 약한 자리에서 여리게 들어온다. 지휘자가 첫 박을 내리는 순간 곡은 이미 시작되어 있다. 그렇게 스며든 소리가 시-솔-미-도-라-파샵-레샵-시, 3도씩 내려가는 여덟 개의 단순한 음이다.


4번 교향곡 총보의 첫 장을 펼치면 그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눈으로 보인다. 오보에가 쉬고 있다. 트럼펫이 쉬고 있다. 팀파니도 쉬고 있다. 관현악이 무언가를 선포할 때 동원하는 악기가 정확히 그 셋인데 곡이 시작되는 자리에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트롬본은 이 악장의 편성에 아예 들어 있지 않다. 남은 것은 여리게 노래하라는 지시가 붙은 목관과 길게 붙들린 호른과 여리게 시작하는 현뿐이다. 그 페이지 어디에도 강하게 연주하라는 표시는 없다.


교향곡의 첫머리는 원래 그렇게 쓰지 않는다. 첫 주제는 뚜렷해야 하고 서주가 있다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내야 한다. 브람스 자신이 1번에서 그렇게 했다. 어둠 속에서 팀파니가 무언가를 쪼개는 것 같은 그 서주를 십사 년에 걸쳐 만들었다. 그런데 아홉 해 뒤 마지막 교향곡의 첫 악장에서 그는 그 문을 만들지 않았다. 같은 시대에 바그너는 자기 작품만을 위한 극장을 짓고 무대의 규모를 계속 키우며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브람스는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첫 음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곡을 쓰는 일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에 속한다. 나도 그 앞에서 몇 달을 보낸 적이 있다. 첫 음을 정하는 일은 결국 그 곡 전체를 정하는 일이어서, 한 음을 놓는 순간 그다음에 올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줄여 나가다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접은 악보가 내게도 여럿 있다. 그것들은 지금도 완성되지 않은 채로 있다.


스물한 해를 그 결정 앞에서 보낸 사람이 마지막 교향곡에서는 그 자리를 비워 두었다. 4번 교향곡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채로 이미 시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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