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살을 닮은 출판사를 만들었다.

1인 출판사 〈오후의 글방〉 등록기

by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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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록을 버리고


오후. 낮 열두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시간이다.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쉰 살을 넘기면 인생의 후반기인 오후가 시작된다. 정오의 볕은 너무 밝아 눈이 부시다. 오후의 햇살은 비스듬히 내려와 숨겨진 그림자마저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퇴임. 나는 오후의 문턱을 넘었다. 글 쓰는 일은 늘 계속한다. 문득 지금껏 쓴 글들을 세워봤다. 대부분 신변잡기지만, 온라인카지노에 올린 글, 신문에 기고한 글, 평소 끄적인 단상들. 합치면 700편에 가깝다.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40년 동안 기록했던 손 기록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걸 두고 곱씹어 추억을 새길 수는 없는 노릇. 중요한 것들만 추려 파일로 저장했다. 마음을 비우는 뜻이다. 그러고도 디지털 매체에 기록된 글이 많다. 이건 종이처럼 쉬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할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바카라으로 만들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요즘처럼 짧은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글이 읽힐까. 더구나 유명 작가도 아닌 그저 아마추어의 서툰 솜씨를 누가 봐줄까. 잠시 망설였다.


부드러운 귀, 이순(耳順)


중국의 대학자 공자는 예순 살이 넘으면 이순(耳順)이라 했다. 귀가 부드러워져 남의 이야기에 관대해진다는 뜻이다. 2,000년도 더 전의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근본 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내가 타인의 흰소리에 마음 상할 일이 뭐 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래 출판하자는 결심이 섰다.


몇 번 출간한 교재와 교양서적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유명하거나 재능 있는 작가가 아닌 이상 출판이란 실패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취미로 쓴 글이야 자신에게는 기특하겠지만 타인에게는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만 못하다. 더 가볍고 자유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자바카라, 그것도 내가 직접 출판사를 등록해 1인 출판으로 세상에 내놓는 일.


돈벌이가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일은 긴장감을 불러온다. 아무리 소액이라도 남에게 바카라을 판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압박감과 무게감. 그것은 화살의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것과 같다. 그 긴장이 오히려 반갑다. 글에 바카라임을 지겠다는 뜻이니까.


1인 출판사 【오후의 글방】


출판사 이름이 필요했다. '오후의 글방'. 50대 이후의 바카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독서 동아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이름도 내가 지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사유를 나누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싸지 않아도 되고,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건네는 가게. 【오후의 글방】은 그런 곳이 되고 싶다.


결심은 빠르게 행동으로 이어졌다. 월요일 오후 인터넷으로 구청에 출판사 신고를 마치자 화요일, 신고 확인증이 손에 들어왔다. 다시 수요일 오늘 아침 국세청에서 사업자등록이 나왔다. 내친김에 국립중앙도서관에 ISBN 발행자 번호 신청까지 마쳤다. 1인 출판업자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사흘, 아니 더 정확하게 만 이틀. 신기한 노릇이다.


AI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출판사 신고부터 사업자 등록증 발급, 그리고 ISBN 발행자 번호 신청까지, 모든 절차에서 클로드와 제미나이의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24시간 채 안 걸려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기술은 차갑지만, 그 기술을 빌려 내 온기를 전하는 길을 찾았다. 오늘이 바로 그 첫 장이 열린 날이다.


그동안 써놓은 글을 추리고 있다. 우선 〈빛과 색채〉와 〈AI야, 나랑 놀자〉로 전자바카라을 출간 준비 중이다. 중복되는 내용도 있고 어쭙잖은 표현도 다시 다듬어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다잡아진다. 글을 수정하는 추진력도.


낯선 설렘과 두려움


취미로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다. 눈 뜨면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고, 산바카라하다 마주친 풍경에서 한 문장을 건져 올린다. 그건 개인적인 취미 생활이다. 출판은 그와 차원이 다르다. 원고를 다듬고 편집하고, 디자인하여 한 권으로 완성하는 일. 작가이면서 편집자이고 디자이너여야 한다. 1인 출판사란 그런 것이다.


낯선 역할. 설렘이 반이고 두려움도 반이다. 기대치를 확 낮췄다. 삶의 경험을 통해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불러온다는 것을 안다. 스스로 일터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좋은 글을 쓰고, 지혜를 모아 한 권의 제대로 된 바카라이라도 만든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을까.


오후의 햇살은 비스듬히 내려온다. 서두르지 않는다. 그림자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내 글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눈부시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의 차가운 오후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비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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