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 생각하면 그건
마지막 시간 3월 9일, 오후 2시. 매월 한 번 열리는 교무회의가 시작되기 전, 퇴임식이 있었다. 동료들과 후배들, 평소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힘껏 손뼉 친다. 고마웠다. 이상하다. 박수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몸은 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은 먼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강단, 학생들, 첫 강의 설렘. 시간이 스치듯 지나갔다.
"장강의 앞 물결은 뒷물결에 밀려난다고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사람이 옛사람을 대신해야겠죠." 나는 담담하게 고별사를 이어갔다.
33년 전. 긴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선택의 고비마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때로는 비겁했고, 때로는 우유부단했다. 모든 결과는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고, 긴 시간 나를 힘들게 했다. 그걸 운명이라 말해야 할까?
가난과 오랜 중이염과 난청으로 청춘을 방황했다. 결별과 상실로 내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나의 청춘은 온통 우울한 잿빛이었다.
학위를 받은 나는 서울 어느 금융연구소에서 파트타임 연구원으로 시작했다. 틈틈이 시간강사 생활을 하면서.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나는 초조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과 불안한 살림살이. 늘 나를 괴롭히던 낮은 청력.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 그것이 성급한 결정을 낳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걸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짧은 결정과 오랜 원망
그때 지인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 고향에서 전문대학을 새로 만들고, 4년제 대학으로 키운다고 했다. 면접도 없고, 복잡한 절차도 없었다. 내가 결심하면 되었다. 거기다가 끝내 지켜지지 않은 달콤한 약속까지. 32살의 나는 그렇게 순진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나빴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거라는 가족의 만류를 뿌리쳤다. 당시만 해도 가족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의 성원조차 그 불안을 달래지 못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가족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지쳐 있다는 것, 자신이 없다는 것, 그냥 어딘가에 빨리 가고 싶다는 것.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기다림보다 편안한 도피처를 갈구했던 비겁함을 침묵으로 대신했다. 그 짧은 결정이 두고두고 얼마나 큰 원망으로 남을지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33년이 시작되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후회와 방황, 번민이 있었다. 대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기회가 올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고,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나를 탓했다. 하지만 끝내 인연이 닿지 않았고,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비뚤어진 첫 단추의 아픔
사는 동안 참 사연이 많았다. 파란만장이라고 할까. 무수한 고비와 굴곡이 있었다. 처음부터 엇갈린 인연 탓에 마음이 늘 조급했다. 무리한 욕심이 화를 불렀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픔도 맛봤다. 첫 단추를 비뚤게 꿴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마지막을 제대로 마칠 수 있었다는 것. 그나마 위안이 된다. 참 먼 길을 돌아 다시 수도권으로 왔다. 여전히 그곳에서 묵묵히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불경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시답잖은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의미가 크다.
문득 그런 생각에 잠겼다가 박수 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가슴으로도 품을 수 없을 만큼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웃으며 받았지만, 착잡함과 고마움, 뿌듯함과 민망함이 함께 밀려온다. 이렇게 33년이 마무리되었다.
퇴임식이 끝났다. 남은 이들을 뒤로하고, 혼자 복도를 걷는다. 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낮은 청력과 떨어진 자신감으로 선택한 그 길을 걸었다. 그것으로 이곳과의 인연은 끝났다. 하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