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은퇴 생활

by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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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삶의 언어다.


톱날이 시퍼런 대형 전기톱 앞에 섰다. 손이 떨렸다. 난생처음 목공 장비 앞에 섰다.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퇴직한 나는 화요일 아침, 나무를 깎고 있었다.


은퇴자의 로망은 늦잠과 자유다. 미뤄둔 취미, 마음껏 하는 여행, 아내와의 밀린 대화. 하지만 그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은퇴자들은 잘 안다. 유튜브와 에세이에 그 하소연이 넘친다.


왜 그럴까. 인간의 유전자 깊은 곳에 노동의 DNA가 새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처음부터 혹독한 환경 속에 던져졌다. 자연은 어떤 생명체에게도 처음부터 친절하지 않았다. 스스로 움직이고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노동은 모든 생명체 존재의 근거이자 이유다.


인간은 인지혁명으로 두뇌를 발달시켰고,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을 높였다. 인류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화려한 물질문명을 이루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생존은 여전히 노동을 요구한다. 열심히 일해 하루를 버티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현실이다.


은퇴의 역설


먹고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참 힘들다. 더구나 온라인 게임생활이 주는 정신적 압박감은 어떤가. 오죽하면 많은 온라인 게임인이 빨리 은퇴하기를 바라는가. 파이어족의 조기 은퇴가 부러움을 사는 이유다. 그런데 막상 은퇴하면 다시 일하고 싶어 몸이 들썩인다.


경제적 보상도, 슬롯적 소속감도 없는 시간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취미 생활에는 돈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생산성도 기여감도 없는 취미는 오래가지 않는다. 은퇴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거리를 찾는다. 소속감이 주는 긴장감과 약간의 경제적 보상은 사람에게 묘한 짜릿함을 주기 때문이다.


퇴직 후 일자리는 전공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공학이나 기술 전공자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이론 전공의 문과 출신은 은퇴 후 일할 곳이 드물다. 대안으로 취미 생활과 자기계발에 눈을 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퇴직했지만


그런 점에서 일주일에 이틀 강의 기회를 잡은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경제적 보상도 있지만, 강의 준비가 주는 긴장감이 좋다.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최신 기술 트렌드를 파악해야만 제대로 된 강의를 할 수 있다. 그 과정이 나에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준다.


5월이면 시민대학에서 재능기부 강의도 한다. 인공지능의 역사를 소개하고, 생성형 AI를 비교 설명하고, 마지막 시간에는 직접 사용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반 시민을 위한 강의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강의하는 것 말고도 목공실에서 첫 번째 목표를 세웠다. 작은 협탁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는 민화도 배운다. 매주 토요일 화실에서 수채화를 그리지만, 한국화의 결을 따로 느끼고 싶었다. 정기적인 독서 모임에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일요일은 빠지지 않고 달리기를 하려고 한다. 주중에는 피트니스 센터에 들러 근력 운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처럼 꾸준히 나가기는 쉽지 않다. 빠진다고 해도 뭐라는 사람은 없으니까 강박은 없다. 그건 나이 듦의 지혜일 것이다.


퇴직했지만 달력이 빽빽하다. 게다가 2주에 한 번 신문사에서 요청한 AI칼럼까지. 언제 쉬냐고? 가끔 틈날 때 기타를 친다. 일과 쉼의 경계를 따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원목이 손끝에 닿는 감촉, 코끝에 맴도는 나무 향. 일주일 한 번 목공실에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나는 노동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들으면 발칙하다고 화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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