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사업

라벨8

by돈태

“지면 부족하다네. 오늘 추가 발제할 거 있는 사람?”

주말의 충만했던 기분은 너무나 사소하게 무력해졌다. 월요일 출근 길부터, 아니 정확히는 일요일 저녁때부터 월요일 뭐 쓰지?라는 일상에 점령당했다. 오전 발제를 끙끙대며 마치니 바로 팀장의 단체 메시지가 올라왔다.

선배 하나가 소비자 불공정 약관과 관련해 두서 없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선배는 프랜차이즈 가격 인상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태민은 모니터 옆에 놓인 수첩을 한번 봤다.

“태민. 뭐 없나?”

“죄송합니다.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팀장은 더 묻지 않았다. 메일함에 새 메일 표시가 떴다. 농림축산식품부였다. 소비자 정바카라팀 출입처인데 공공급식을 취재할 때 쯤부터 태민에게도 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민은 제목을 읽었다.

<미래 먹거리, 학교 식탁에서 만난다… 대체단백질 공공급식 실증사업 추진>

메일을 열었다. 기후변화 대응과 미래 식품산업 육성, 학생들의 다양한 식생활 선택권 확대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대체단백질 공공급식 실증사업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태민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시범지역과 참여 학교 수가 나왔다. 사업기간, 예산, 공급제품 선정기준이 이어졌다. 맨 아래에 참여기업이 있었다. 세 곳이었다. 두 곳은 태민도 잘 아는 대기업 계열 식품회사였다. 나머지 하나에서 마우스가 멈췄다. 처음 보는 이름인 거 같은데 낯설지 않았다. 태민은 수첩을 집었다. 몇 장을 넘겼다.

비인간종.

착취.

억압.

수요.

도축.

채식 선택권.

대체육.

그 아래 회사 이름이 있었다.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태민은 다시 보도자료를 봤다. 대기업 두 곳 사이에 그 이름이 있었다. 회사 이름을 검색했다.

홈페이지가 먼저 나왔다. 화면 상단에는 갈색으로 구운 고기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아래에는 ‘식물로 만드는 새로운 단백질’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회사 소개를 눌렀다. 설립 3년째였다. 직원 수는 많지 않았다.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한 대체식품을 개발·생산한다고 돼 있었다. 투자유치 기사가 몇 개 나왔다.

대표이사 이산.

태민은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검색창에 이름을 넣었다. 인터뷰 기사 몇 개가 나왔다. 젊은 창업가였다. 대학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최고 명문대였다.

한 인터뷰의 제목에는 ‘푸드테크’가 들어 있었고 다른 기사에는 ‘미래 단백질 시장’이 들어 있었다. 태민은 기사를 하나 열었다가 닫았다. 정부 보도자료로 돌아갔다.

대기업 두 곳은 이해가 됐다. 이미 공장도 있고 전국 유통망도 있었다. 학교에 납품할 물량도 수월히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태민은 작은 회사 이름에 다시 마우스를 올렸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네, 보좌관님.”

“이 기자, 바빠요?”

“아닙니다.”

“농식품부 자료 봤어요?”

태민은 모니터를 바라봤다.

“대체단백질 급식이요?”

“빠르네.”

“방금 보고 있었습니다.”

김성재가 잠시 말이 없었다.

“거기 업체들 봤어요?”

“네.”

“하나 좀 튀지 않아요?”

태민은 수첩을 내려다봤다.

“작은 회사 하나요?”

“알아요?”

태민은 잠깐 망설였다.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취재했어요?”

“아직요.”

김성재가 낮게 웃었다.

“그럼 나보다 빠른 건 아니네.”

태민도 웃었다.

“왜요?”

“그 회사 한번 봐요.”

태민은 볼펜을 들었다.

“뭐가 있습니까?”

“아직 뭐가 있다는 건 아니고.”

“그럼요?”

“대기업들이야 이해되잖아요. 시설 있고 물량 있고 식품사업 오래 했고.”

김성재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근데, 저 회사는 규모가 작아요. 그런데 이번 사업 준비는 제일 오래 한 것 같더라고.”

“어떻게요?”

“급식용 제품을 따로 준비했어요. 사업 공고 나오기 전부터.”

태민의 펜이 멈췄다.

“언제부터요?”

“그건 우리 기자님이 알아 봐야지.”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렇게 쓰면 내가 곤란해요.”

태민이 웃었다. 김성재도 웃었다. 잠시 뒤 목소리가 낮아졌다.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하기는 아직 어렵고. 내가 본 자료로는 절차는 밟았어요.”

“그런데 왜 보라고 하시는 건데요?”

“정바카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좀 재미있어요.”

태민은 대답하지 않고 기다렸다.

“정부에서 푸드테크 키운다는 얘기는 계속 있었잖아요. 그중에서도 대체 단백질을 공공급식이랑 연결하자는 얘기가 지난해부터 조금씩 나왔어요.”

“어디에서요?”

“정부에서도 했고, 국회에서도 했고.”

김성재가 말했다.

“서정훈 의원 알죠?”

태민도 아는 이름이었다. 집권당 재선 의원. 농해수위 여당 간사였다. 뉴스에서 자주 봤다.

“네.”

“그쪽에서 꽤 열심히 했어요. 관련 법안도 발의하고 토론회도 하고 정부에 계속 푸시하는 거 같고.”

태민은 수첩에 이름을 적었다.

서정훈.

“이산 대표하고도 아는 사이인가?”

“그건 내가 확인해 줄수 있는 건 아니고.”

김성재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닐 겁니다.”

“오늘 숙제 많이 주시네요.”

“지난번에는 내가 자료까지 다 서포트 해줬으니.”

태민이 웃었다.

“이번에는 안 주십니까?”

“이번엔 나도 보고 있는 중이에요.”

태민이 볼펜을 멈췄다. 김성재는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하나 더.”

“네.”

“우리 당도 이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태민은 기다렸다.

“그런데 정부 자료를 보면 대체 단백질을 왜 먹어야 하는지가 별로 없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보면 알아요.”

전화가 끊겼다. 태민은 다시 보도자료를 처음부터 읽었다.

기후변화 대응.

미래 식품산업 육성.

푸드테크 경쟁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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