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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10

by돈태


월요일 새벽에 기자실에 도착했다. 일요일 저녁부터 발제를 고민했다. 토요일에 이산을 인터뷰한 수첩은 빽빽했다. 제목을 세번째 바꾸면서 그만, 씨발.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왔다. 머리가 굳은 느낌이 들었다. 눈은 따끔거렸다. 빨리 자고 내일 일찍 출근해서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출근 지하철에서도 계속 수첩을 들여다 봤다.

정부가 돈을 쓰는 시장.

서정훈과 개인적으로 연락.

실증사업 전 공공급식 이야기.

수율. 조리시간.

동물도 덜 죽이고 돈도 벌면.

쓸 수 있는 말은 많았다. 그런데 기사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새로운 팩트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의혹을 제기하기에는 뒷받침할 근거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서정훈을 앞세우려면 특혜라고 부를 만한 게 있어야 했다. 실증사업에 선정된 대체육 스타트업 대표의 인터뷰로 쓰기에는 자기가 왜 이 취재를 시작했는지부터 흐려지는 것 같았다.

새벽 공기가 찬 기자실은 아직 조용했다. 태민은 눈을 한번 찔끔 감은 뒤 수첩을 덮었다. 그리곤 메일함을 열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쌓인 보도자료가 한가득이었다.

편의점 도시락 신제품.

대형마트 가을 할인전.

식품업체 세 곳의 신제품 출시.

온라인몰 식품 카테고리 매출 자료.

태민은 숨을 한번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발제 하나 만들자. 보도자료 몇 개에서 비슷한 주제로 모아지는 숫자들을 정리했다. 계절성도 따져봤다. 최근 출시된 간편식 제품과 유통업체 매출 자료 그리고 가을 이벤트 등을 엮으면 한 꼭지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다닥 제목을 붙였다. 발제를 전송했다.

잠시 뒤 전화가 왔다. 팀장이었다.

“네, 선배.”

“발제 이게 다야?”

태민은 노트북 모니터를 봤다. 낌새가 이상하다.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말이 없자 팀장이 다시 말했다.

“이태민.”

“아, 네. 선배. 더 찾아보겠습니다."

팀장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발제에서 새로운 내용이 뭐야?”

태민은 다시 대답하지 못했다.

“너 지금, 보도자료 붙인 거잖아.”

“매출 자료를 활용해 보려고...”

태민은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팀장의 깊은 한숨이 들렸다.

“너 유통팀 처음 왔을 때 PB 기사 썼지?”

“네. 선배...”

“그때 제대로 하나 들어왔구나 했다.”

태민은 숨죽이며 의자에 앉은 채 허리를 세웠다.

“수습 떼고 바로 온 애가 자료 구해서 기사 만들고, 업체들 전화 돌리고. 솔직히 에이스라고 생각했어.”

옆자리 기자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태민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네. 선배...”

“그런데 다음에 뭐 썼냐?”

태민은 목이 탔다. 혀로 입술을 한번 핥았다.

“지금 몇 달 됐지?”

“…….”

“맨날 보도자료 받아서 신제품 쓰고 할인행사 쓰고. 그거 하라고 너 뽑은 거 아니잖아.”

태민은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팀장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매일 단독 하라는 거 아니잖아. 발제에 네가 취재한 게 하나는 있어야 될 거 아니야.”

“네.”

“오전에 다시 찾아봐.”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태민은 휴대전화를 바카라상 위에 내려놓았다. 모니터에는 조금 전 자신이 보낸 발제가 떠 있었다. 제목 아래에 붙여놓은 세 업체의 매출 증가율이 보였다.

가방 안에는 토요일 수첩이 있었다. 태민은 가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메신저 창이 올라왔다. 유통팀 단톡방이었다. 팀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점심 팀회의. 12시 10분 ○○한상 여의도점.

곧바로 선배 하나가 답했다.

오늘 갑자기요? 저 점심 있는데요

다른 선배가 웃는 이모티콘을 올렸다.

팀장이 답했다.

취소해.

잠시 뒤 다시 메시지가 올라왔다.

부장 오더 있음. 오늘 해야 됨

단체방에 한동안 아무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태민은 대화들을 보고 있다가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팀장이 점심 장소로 잡은 ○○한상은 한식뷔페였다. 태민도 잘 아는 곳이다. 팀장과 태민이 함께 출입하는 식품 대기업 계열사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젊은 층을 타깃으로 감각적인 프로모션을 많이 하는 곳이었다. 그만큼 모기업 홍보실에서도 적극적으로 챙기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다만 가격이 다소 비싸 모기업은 생각만큼 재미를 보지 못하는 중이었다.

태민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팀장은 이미 입구에 서 있었다. 선배 둘이 차례로 도착했다.

“여기 맞아요?”

소비자 정바카라 쪽을 출입하는 선배가 간판을 올려다봤다.

“어.”

“팀장님이 이런 데도 알아요?”

“내가 잡은 거 아니야.”

팀장이 말했다.

“○○푸드 쪽에 얘기했더니 여기 잡아줬어.”

"그럼 오늘 선배가 쏘는 거 아니네요?”

“사실상 내가 쏘는 거 아니겠냐.”

"뭐, 그렇지요."

팀장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직원이 팀장 이름을 확인하더니 네 사람을 안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자 팀장이 말했다.

“일단 각자 먹을 거 가져와서 이야기하자.”

네 사람은 각자 접시를 들었다.

태민은 밥을 조금 담고 돼지구이와 나물 몇 가지를 올렸다. 앞에 있던 선배가 떡갈비를 집다가 말했다.

“나 오늘 약속 취소하면서 욕먹었어요.”

뒤에 서 있던 팀장이 말했다.

“누군데?”

“○○마트.”

“내가 전화해 줘?”

“됐어요. 더 창피해져.”

“부장이 오늘 안에 달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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