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육

라벨9

by돈태

토요일 아침 태민은 수민이 보내준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십여 분을 걸었다. 평일이면 온라인 게임인들이 많을 것 같은 업무지구였다. 식품회사와 물류업체, 중소기업 이름이 적힌 건물들이 큰길을 따라 이어졌다.

주소는 그중 한 건물을 가리키고 이었다. 태민은 건물 외벽의 입주사 안내판을 훑어봤지만 이산의 회사 이름은 없었다. 수민이 보내준 메시지를 다시 열었다.

7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 끝 유리문에 다른 회사 이름이 붙어 있었다. 태민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푸드서비스 메뉴개발센터.

유리문 옆에는 방문객용 호출벨이 있었다. 태민이 벨을 누르자 잠시 뒤 스피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오셨어요?”

“○○일보 이태민 기자입니다. 오늘 열 시에 이산 대표님 뵙기로 했습니다.”

"네. 잠시만요."

태민은 유리문 너머를 들여다봤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조리실에 가까웠다. 흰 벽과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보였다. 안쪽으로 위생모를 쓴 사람들이 오갔다. 문이 열렸다.

“기자님이시죠?”

목에 사원증을 건 여자가 말했다. 태민이 명함을 건넸다.

“네. 이태민입니다.”

“대표님 안에 계세요. 들어오시기 전에 이것부터 작성해 주세요.”

여자가 태민에게 방문기록지를 내밀었다. 이름과 소속, 연락처를 적는 칸 아래에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항목이 있었다.

발열.

구토.

설사.

피부질환.

최근 감염병 증상.

태민이 항목마다 아니오에 표시했다.

“여기가 이산 대표님 회사는 아닌 거죠?”

“네. 저희는 단체급식 하는 회사예요. 오늘 테스트 때문에 빌리셨어요.”

여자는 기록지를 받아 들고 옆에 놓인 신발장을 가리켰다.

“신발 갈아 신으시고 이거 착용해 주세요.”

일회용 위생모와 흰색 가운이 놓여 있었다. 태민은 운동화를 벗고 흰색 위생화를 신었다. 가운의 단추를 잠근 뒤 위생모를 썼다. 유리문에 비친 모습을 잠깐 보고 머리카락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여자가 앞장섰다. 손을 씻는 곳을 지나자 에어커튼이 돌아갔다. 손 소독기를 통과하고 다시 문 하나를 열었다. 안쪽 공간은 태민이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한쪽 벽에는 대형 스팀컨벡션오븐이 두 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가스레인지와 낮은 조리대가 이어졌다. 가운데에는 학교 급식실에서 본 것과 비슷한 회전식 국솥 두 개가 있었다. 손잡이를 돌리면 솥 전체를 앞으로 기울일 수 있는 형태였다. 벽에는 칼과 도마가 색깔별로 걸려 있었다. 육류, 어패류, 채소, 조리완제품. 그 아래에는 조리도구 소독기가 있었다.

태민은 걸음을 조금 늦췄다. 학교 급식실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배식대 너머로 기다리는 아이들은 없었고 식판도 없었다. 대신 조리대 위에 전자저울과 중심온도계, 계량컵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벽 한쪽 화이트보드가 보였다.

메뉴명.

투입량.

조리온도.

조리시간.

완성중량.

수율.

몇 개의 숫자가 검은 펜으로 적혀 있었다.

“여기서 실제 급식 메뉴를 개발하는 건가요?”

태민이 물었다. 앞서 걷던 여자가 뒤를 돌아봤다.

“네. 신메뉴도 해보고 기존 메뉴 레시피도 바꿔보고요. 사업장에 보낼 표준레시피 만들 때 여기서 대량조리를 해봐요.”

“사업장이요?”

“구내식당 같은 데요. 학교나 병원, 회사도 있고요.”

여자가 조리실 안쪽을 가리켰다.

“프라이팬으로 열 명 먹을 거 만드는 거랑 솥으로 몇백 명 먹을 거 만드는 게 다르거든요.”

태민은 화이트보드를 다시 봤다.

“영양사분들도 여기 오시고요?”

“교육할 때는 와요. 조리사분들도 오고요. 새 메뉴 들어가기 전에 조리교육도 하고.”

안쪽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커다란 주걱이 솥 가장자리를 긁는 소리였다. 태민이 고개를 돌렸다.

조리복을 입은 사람이 긴 주걱으로 솥 안을 휘집고 있었다. 그 옆에는 위생모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조리대 위에는 뜯은 포장지와 아직 개봉하지 않은 은색 봉투들이 쌓여 있었다.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동안 모니터에서 보던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옆에는 작은 접시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접시마다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10:05

10:20

10:35

태민은 가까이 가서 들여다봤다. 접시 위에는 양념에 볶은 갈색 조각들이 조금씩 담겨 있었다. 냄새는 낯설지 않았다.

“시간마다 보는 겁니까?”

“네. 급식은 만들어서 바로 먹는 게 아니니까요.”

여자가 말했다.

“첫 배식하고 마지막 배식이 차이가 많이 나면 안 되잖아요.”

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솥 옆에서는 한 사람이 초시계를 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무언가를 기록했다.

“수분 한번 볼게요.”

누군가 말했다. 조리된 제품 몇 조각이 저울 위에 올라갔다. 태민은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이곳에 오기 전, 회사 사무실에서 제품을 앞에 놓고 인터뷰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산의 회사가 작은 스타트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그가 찾아온 곳에는 회사 간판도, 대표실도 없었다. 대신 커다란 솥이 있었다.

안쪽에서 다시 금속 긁는 소리가 났다. 태민은 여자를 따라 수첩을 들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솥 주변에는 네 사람이 서 있었다. 조리복을 입은 남자가 긴 주걱으로 내용물을 뒤집었고, 맞은편에 선 여자는 태블릿 화면에 숫자를 입력했다. 그 옆에 흰 가운을 입은 남자 둘이 있었다. 그중 키가 큰 남자가 솥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보다 좀 더 붙는데요.”

남자가 말했다. 조리사가 주걱으로 바닥을 한번 긁었다.

“양념 들어가면 아무래도 그래요.”

“온도는요?”

“백팔십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리사가 건져준 조각 하나를 받아 손가락으로 눌러봤다. 반으로 갈라 안쪽을 살핀 뒤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다음에는 십 도만 내려서 해보죠.”

“그러면 시간이 좀 더 걸릴 텐데요.”

“얼마 나요?”

“한 오 분?”

남자가 벽에 붙은 조리시간표를 한번 봤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하겠네요. 십 도 내려서 한번 보죠.”

태민은 걸음을 멈췄다. 인터뷰 기사에서 본 얼굴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위생모가 이마를 덮고 있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진에서는 대부분 정장을 입거나 셔츠 차림이었다. 안내하던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갔다.

“대표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기자님 오셨어요.”

그의 시선이 태민에게 향했다. 사진에서 봤을 때보다 키가 컸다. 얼굴은 길고 턱선이 분명했다. 마른 체형이었지만 어깨가 반듯해서 왜소해 보이지 않았다. 위생모 아래로 짧은 머리카락이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남자는 태민을 잠깐 바라보다 웃었다. 활짝 웃는 표정은 아니었다.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고 눈가가 뒤따라 좁아졌다. 손에 들고 있던 조각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이태민 기자님?”

“네.”

남자가 일회용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고 두어 걸음 다가왔다.

“이산입니다.”

태민이 수첩을 왼손으로 옮기고 손을 내밀었다.

“이태민입니다.”

이산이 미소를 지었다.

“수민 씨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뒤에서 조리사가 이산을 불렀다.

“대표님, 이거 한번 보실래요?”

이산은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악수하는 동안에는 태민을 바라봤다.

“주말인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만나자고 부탁드린 건데요.”

“그래도요.”

악수를 마친 뒤에야 이산이 조리사 쪽을 돌아봤다.

“잠깐만요.”

그리고 다시 태민에게 말했다.

“인터뷰부터 하셔도 되는데.”

솥 쪽에서 주걱이 다시 바닥을 긁었다. 이산이 그쪽을 한번 봤다.

“조금만 같이 보시겠어요?”

태민도 솥을 바라봤다.

“네.”

“지금 보시는 게 아마 설명 듣는 것보다 빠를 겁니다.”

이산이 먼저 솥 쪽으로 걸어갔다. 태민은 수첩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조리사가 주걱 끝에 걸린 조각 하나를 보여줬다.

“이렇게 붙어요.”

이산이 가까이 몸을 숙였다. 주걱 끝에 두세 조각이 서로 붙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랬어요?”

“아뇨. 양념 넣고 한 오 분 지나면서요.”

“아까 백팔십일 때보다 심해요?”

조리사가 잠깐 생각했다.

“비슷한데 이쪽이 조금 덜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시간까지 보고 판단하죠.”

이산은 옆에 있던 여자에게 말했다.

“지금 몇 분이에요?”

“칠 분 지났습니다.”

“십오 분, 삼십 분 같이 볼게요.”

여자가 태블릿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태민은 수첩을 펼쳤다. 인터뷰를 위해 적어둔 질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급식용 제품 개발 시점?

공공급식 시장을 먼저 준비한 이유?

정부 간담회 참석 경위?

그리고

서정훈 의원과의 관계?

물어볼 것이 많았다. 태민은 조금 더 지켜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산은 조리사와 함께 솥 안을 들여다보다가 조리대에 놓인 봉투를 집어 뒷면을 확인했다.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무언가를 묻고, 대답을 들은 뒤 봉투를 다시 내려놓았다. 태민은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생각했다.

“이건 몇 킬로 넣었죠?”

“십 킬로요.”

“양념 포함해서요?”

“아뇨. 원물만요.”

“완성중량도 한번 재주세요.”

태민은 그 말을 무의식적으로 수첩에 적었다. 십 킬로. 쓰고 나서 자기가 왜 그것을 적었는지 잠깐 생각했다. 질문을 언제 하지?

옆에 놓인 작은 접시 하나를 조리사가 들어 이산에게 건넸다. 이산은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몇 번 씹더니 물었다.

“아까 거 남아 있죠?”

태블릿을 들고 있던 여자가 처음 만들어둔 접시를 가져왔다. 이산은 그쪽에서도 하나를 집어 먹었다.

“어때요?”

조리사가 물었다. 이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씹었다.

“처음보다 낫네요.”

“붙는 건요?”

“그건 더 봐야죠.”

이산은 접시를 내려놓았다. 태민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인터뷰 기사에서 읽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늘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붙어 있었고 기사에는 투자금과 시장 규모, 푸드테크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그런데 지금 이산은 커다란 솥 앞에서 조리된 조각 하나를 씹고 있었다.

태민도 무의식적으로 솥 안을 들여다봤다. 붉은 양념이 묻은 갈색 조각들이 주걱을 따라 한꺼번에 뒤집혔다. 김이 올라왔다. 냄새는 제육볶음과 비슷했다. 그제야 이산이 태민 쪽을 봤다.

“제육볶음 좋아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태민이 고개를 들었다.

“네?”

이산이 웃었다.

“고기 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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