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모임

라벨7

by돈태

모임은 누가 진행한다고 할 것도 없이 시작됐다. 한 사람이 지난번에 나눠준 자료를 읽어 왔느냐고 물었고, 몇 사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못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묘한 질서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동물복지 인증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돼지를 키우는 공간의 크기와 바닥, 조명, 먹이 같은 기준들이었다. 태민은 수첩에 짧게 옮겨 적었다. 맞은편 수민이 자료 한 장을 넘기며 말했다.

“기준이 좋아지는 건 필요하죠. 실제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비인간종의 고통이 줄어드는 거니까.”

태민의 펜이 무의적으로 움직였다.

비인간종?

뜻은 알겠는데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였다. 예전 지역당원 모임에서 페미니즘 관련 바카라을 읽고 토론하던 때가 떠올랐다. 한 여성 당원과 논쟁을 벌이면서도 그가 쓰는 몇몇 단어가 낯설었다.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뜸을 들인 수민이 말을 이었다.

“다만 사육환경을 조금 낫게 만드는 것하고 착취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개선을 하지 말자는 건 아니고요.”

자체.

이번에는 태민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인터뷰나 칼럼 등에서 그 단어를 반복하던 교수가 생각났다. 교수는 어떤 사안이건 본질부터 살폈다. 그런데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한쪽으로 기운 코멘트가 필요할 때 자주 찾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문득 따가운 인기척을 느꼈다. 옆의 혜원이 자신을 째려보나 생각하며 곁눈질했다. 혜원은 수민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수민이 다시 덧붙였다.

“급식은 일단 그 개선부터 해보자는 거고요.”

태민은 수첩에 적힌 ‘비인간종’을 한번 내려다본 뒤 그 아래에 ‘착취’라는 단어도 적었다. 수민이 말을 마친 분위기에서 장바구니를 가져온 여자가 물었다.

“그럼 동물복지 붙은 걸 사 먹는 건 의미가 있는 거죠?”

“있죠.”

수민이 바로 대답했다.

“덜 고통받는 조건을 만드는 거니까요. 저는 그걸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가끔 헷갈려요. 비싼 거 골라서 사기는 하는데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그래도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만드는 데가 늘지 않을까요?”

노트북을 펼쳐놓은 남자가 말했다. 혜원이 테이블 가운데 놓인 인증 기준표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학교급식도 비슷해요. 수요가 있어야 농가나 납품업체도 움직이니까. 학교는 물량이 크기도 하고요.”

태민은 ‘수요’라고 적었다. 익숙한 단어였다. 며칠 전 박상철한테도 들었던 말이다. 그때 혜원의 시선이 태민을 향했다.

“기자님도 업체에서 보셨어요. 학교 급식이 상당하다는 걸."

태민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아, 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물량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수민이 무표정하게 태민을 바라봤다.

“저는 수요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태민은 수민을 마주 본 후 수첩으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어떤 점에서요?”

“동물복지 고기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게 목표가 되면 이상하잖아요. 돼지를 덜 억압하는 방식으로 더 많이 생산하자는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억압.

태민은 그 말도 적었다. 수민은 태민이 받아 적는 것을 잠깐 보더니 말을 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지금 쓰는 고기를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살아온 돼지로 바꾸는 건 필요하죠. 혜원 씨가 하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고요.”

“갑자기 씨라고 부르며 칭찬하니까 불안하네.”

혜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뒤에 뭐가 더 나올 것 같죠?”

“보통 그렇잖아.”

“오늘은 없어요.”

“진짜?”

“아마도.”

주변에서 기분 좋은 웃음들이 나왔다. 장바구니를 가져온 여자가 과자 봉지를 집어 들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죠?”

수민이 봉지를 받아 뒷면을 봤다.

“우유 들어갔네요.”

“그럼 안 먹어요?”

“저는 안 먹죠.”

수민은 과자 봉지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태민의 시선이 봉지 뒷면에 잠깐 머물렀다. 혜원이 다른 봉지를 집어 수민 쪽으로 건넸다.

“이건 먹을 수 있을걸.”

여자가 봉지를 뒤집었다.

“이건 되겠네.”

봉지를 뜯어 하나 집어 먹고는 옆 사람에게 건넸다. 태민도 자기 앞까지 온 봉지에서 하나를 집었다.

“수민 씨, 지난번에 보내준 거 잘 봤어요.”

노트북을 펼쳐놓은 남자가 말했다. 수민이 고개를 들었다.

“도축장 자료요?”

“네. 그거 보니까 인증농장에서 키운 돼지도 마지막에는 똑같은 데로 가는 경우가 많던데.”

“대부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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