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들어진 가족, 재구성 가정
'콩가루 집안과 엮였다.'
남편 집안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콩깍지가 씌었던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콩가루 집안의 아들과 결혼했다.
일단 남편과 시누이는 아버지가 달랐다. 또 결혼한 시누이도 아들이 있었지만, 그 아들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남편의 친구들이었다. 멀쩡해 보이는 모두가 대략 비슷했다. 나를 그들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거나 파티를 할 때 가족같이 살갑게 대해 주던 남사친 여사친들이 많았는데, 그들 가족을 소개할 때면 친형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엄마나 아빠가 다른 형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끼리끼리 모이는구나.' 아무래도 잘못 엮인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미 결혼한 것을 어찌하리오. 그래도 사랑하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혼자 팔자타령을 했더랬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가족이 평범한 형태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에 살면서 그런 가족 형태가 특별해 보이지 않을 만큼 빈번했던 것은 분명하다. 당시 우리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이었는데 재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이들도 각자 데리고 온 아이와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이런 형태를 프랑스에서는 ‘Famille recomposée’, 말 그대로 다시(re-) 조합한(composée) 가족이라고 부른다. '재혼 가정'이라는 말과는 결이 다르다. 새로운 부모가 생김에 따라 아이들도 계속 헤쳐 모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작 놀란 것은 그렇게 콩가루 집안이 수두룩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골치가 아플 지경인데, 그런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은 아무 문제 없이 평안하게 모두가 모여 살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피가 섞였는가'가 가족을 나누는 절대 기준이지만, 프랑스에서는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나누는 시간이 가족을 만든다. 즉, 현재 생활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들은 부모가 헤어져도 어른이 된 뒤까지 계속 가족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처음에는 프랑스 지인들이 자기 가족을 소개할 때 저들이 정말 피가 섞인 가족인지 호구조사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엄마가 달라도 아빠가 달라도, 아니면 둘 다 달라도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았다면 가족이다. 다시 조합된 가족들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프랑스 슬롯는 서로 맞춰 가며 돌아간다.
프랑스어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부르는 단어는 Beau-père와 Belle-mère이다. 앞에 붙는 Beau와 Belle은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이다. 처음에 시어머니(Belle-mère)와 시누이(Belle-sœur)를 부르는 말에 Belle이 붙는 것을 보고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관계이길 바라마지 않는 간절함이 들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단어는 새아버지, 새어머니라는 뜻도 갖는다. 아이들은 보통 새 부모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보다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위계질서에 의한 또 다른 부모라기보다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또 다른 조력자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아빠가 둘, 엄마가 둘이 된 아이들은 일주일은 아빠, 일주일은 엄마 집을 오가며 지내기도 한다. 한쪽 집에서 주로 살고 주말과 방학에 다른 쪽 부모를 만나는 아이들도 많은데, 그런 경우는 대개 엄마와 사는 쪽이다. 헤어진 부모가 아이 때문에 일부러 15분 거리 내에서 살려고 노력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학기 중에는 한쪽 부모, 방학 동안에는 다른 쪽 부모와 지내게 된다. 한 부모 가정도 많지만 내가 본 프랑스에서는 한부모라는 사실이 별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여하튼 아이들은 집도 두 개, 방도 두 개, 생일 선물도 두 배, 크리스마스 선물도 두 배가 되는 기적을 체험한다. (우리 첫째 아이가 10살 즈음 반 아이들이 거의 모두가 엄마와 아빠가 각각 둘이 되는 모습을 보고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언제 헤어질 거냐?"라고 천진난만하게 물었더랬다.)
프랑스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완벽한 독립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부부관계는 끝났을지라도 부모로서의 관계는 이어지고, 아이는 함께 키우는 쪽으로 간다. 한쪽 부모를 못 보게 아이를 막는 일은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다.
이러한 면접교섭권과 공동 양육 방식은 법으로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고 철저히 지켜야 한다. 만나야 할 때 만나고 데려다줘야 할 때 데려다줘야 한다. 간혹 배우자 중 한 명이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프랑스 생활 초기에는 TV를 보다 보면 갑자기 아이 사진과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붉은 화면에 뜨고, 아이를 데리고 간 배우자의 사진도 함께 나오곤 했다.
처음 엠버경보를 보았을 때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헤어졌어도 엄마, 아빠인데 정해진 날이 아닌 날에 애 좀 데려갔다고 납치범 취급을 하나 싶어서였다. (물론 그런 경우 대부분이 아이를 볼모로 잡는 것이라 위험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국에 가려면 공항에서 남편의 서면동의서를 요구받은 적도 있었다. 엄마가 자기 아이를 데리고 조부모님을 만나러 가는데 아빠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게 못내 불편했다. 직원이 서류와 나, 아이를 번갈아 매의 눈으로 훑어볼 때면 납치범이라도 된 듯 긴장했고, 외국인이라 차별받나 싶어 마음이 뾰족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국경을 넘으면 아이를 되찾을 길이 없어지는 부모와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그것이 아이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절차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런데 이 지면을 빌려 살짝 고백하자면, 간혹 '나도 아이들을 위해서 프랑스 여자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물음을 던질 때가 있다. 실제로 아빠가 둘, 엄마가 둘인 아이들을 보니 경제적으로나 슬롯적 관계로나 훨씬 더 풍요로워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을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남편에게는 절대 비밀이다.
모든 가정이 평화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프랑스 슬롯에는 이혼 후에도 아이를 위해 같은 동네에 사는 전 배우자들이 있고, 의붓자식을 차별하지 않고 '든든한 어른 친구'가 되어주는 새 부모들이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상처가 왜 없겠는가. 어찌 보면 이런 과정을 통해 프랑스 아이들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가족관계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서로에 대한 집착이 덜해지는 지점이 아닐까.
한국인 눈에는 '콩가루 중의 콩가루'로 보이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모의 헤어짐이 아이의 상처나 결핍이 되지 않도록 슬롯가 함께 받쳐 주는 장치가 있다. 잘 뭉치지 않는 가루도 그렇게 모이면 가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