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인종차별이 많을까?

자존감과 위선의 사이

by파리이방인

20여 년 전, 남편의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하나가 아시아 사람 이야기를 하며 손으로 눈을 옆으로 찢는 흉내를 냈다.


그런데 나는 그때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친구도 비하하려는 의도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고, 남편도 듣고 그냥 웃으며 지나치는 정도였다. 참고로 나는 그 흔한 속쌍꺼풀조차 없어서, 그 친구가 흉내 낸 '찢어진 눈'의 당사자가 바로 나였다. 내가 너무 무감각했었나? 그로부터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이후, 그 몸짓은 완전히 비하의 제스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9년여의 세월이 흐른 후, 애들 친구 엄마가 인종차별자였다. 아이들과 아빠들끼리 친해서 어쩔 수 없이 어울리는 듯했다. 하루는 내 아이들이 그 엄마가 눈을 찢는 시늉을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이들 앞에서? 나도 우리 애들이 보는 앞에서 엄지와 검지로 눈 아래를 잡고 기괴하게 크게 늘였다. 그럼 걔 엄마는 눈이 이런 건가? 아이들이 깔깔댔다.)


당시 내게는 무던하게 지나간 일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내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생김새'와 '인종'의 문제는 전혀 다른 무게로 내 삶에 다시 찾아왔다.


나의 아이들은 혼혈이다.

아빠가 백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곳 사람들이 보기엔 아시아인에 가깝다.

(물론 한국에 가면 외국인 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이 아홉 살, 열 살 정도 될 즈음이면 학교에서 중국 애라고 놀리는 아이들이 꼭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이었다.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있다. '니하오'나 '중국 애'라는 말이 어쩌다 놀리는 말이 되었는지. 길 가다가 누군가 나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면 반갑게 맞이할 텐데, 내가 중국인이라고 생각해서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게 왜 인종차별이 되었을까. (물론 껄렁한 이들이 하는 캣콜링은 '니하오'든 '봉쥬르'든 불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중국인'이라는 말 자체는 욕이 아니다. 그러나 말하는 이가 비하적인 어조를 담는 순간, 그 단어는 곧바로 인종차별의 언어가 된다. 어쩌다 전 세계에서 '니하오'와 '중국인'이 인종차별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는지, 그런 면에서는 중국인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을 지경이다.


"엄마, 왜 어떤 아이는 나에게 계속 중국 애라고 부르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첫째의 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지만,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내 주변의 같은 처지인 한국 엄마들은 끝까지 학교에 항의하고 그 부모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야 아이가 기죽지 않고 본보기가 된다고 했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이 내 아이의 일이 되었을 때, 나는 한 발 물러섰다. "중국 애"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에 내가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그런 어리석은 친구들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니 그냥 무시해라."라고 담담히 말했다.

나도 남편도 아이를 명실공히 '피해자'의 위치에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이 아니고 한국이라고 대답하렴."

나는 그 정도의 대답을 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째가 그 단계를 지났고, 둘째와 셋째도 그 시기를 지났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랬듯 크게 동요하지 않았고 피해의식도 품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하던 아이를 선생님이 제지하지 않자 첫째와 친한 친구 몇몇이 화장실에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가 나름의 '응징'을 해주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야 들었다. 놀라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되려 남편은 "스스로 잘 해결한 지난 일로 왜 이제야 엄마를 걱정시키냐"며 첫째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가! 첫째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아이들은 각자 나름의 고충과 경험을 거치며 스스로 이겨내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바란 것은 아이들에게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내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살면서 각자 짊어진 짐처럼 순간순간 차별의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그 상황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스스로의 내면이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사실 백인인 남편은 나의 이런 깊은 속내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평생 단 1초도 그런 상황에 맞닥뜨려본 적이 없을 테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슬며시 물었다. 당신은 아마 모를 것 같다고.


"그래, 내가 다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거야. 중요한 건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왔고,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다는 사실이지."


그렇다고 모든 불쾌함이 차별은 아니다.


인종차별은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올 때 가장 발끈하는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프랑스를 방문했던 한국 사람들의 글을 보면 "인종차별을 당했다"라는 후기를 쉽게 접한다. 레스토랑에서 자기 테이블에만 늦게 왔다거나, 뷔페식당에서 음료수를 리필하려다 제지당했다거나(뷔페에서 음료수는 리필이 안 되는 곳이 있음), 빵집 직원이 퉁명스러웠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인종차별이라기보다는 문화 차이에서 오는 오해에 가깝다. 레스토랑에서 서버가 오기 전에 먼저 손을 들어 부르거나 보채는 것을 매우 예의 없다고 생각하는 문화이고, 한국의 빠른 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그들의 느려터진 여유를 이해하기 힘들 뿐이다.


또한 프랑스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예민하게 따지는 문화가 있다면 단연 '인사 문화'다. 무조건 "봉쥬르(Bonjour)"를 처음 보자마자 해주어야 한다. "봉쥬르" 없이 바로 커피나 물건을 주문하면, 그들은 자신을 하대한다고 느껴 매우 불쾌해한다. 프랑스인들끼리 시비가 붙는 가장 흔한 원인 역시 이 첫인사의 부재다.

20년을 산 나조차 가끔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그 철저함을 이해하기란 여전히 난해하다. 우리의 "안녕하세요"와는 다른, 관계를 맺기 위해 기계적으로라도 꼭 먼저 내던져야 하는 인사말이다. 이 인사만 잘해도 프랑스 여행이 한층 편안해질 것이다.


상대방의 눈을 빤히 마주치는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윗사람이나 타인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실례가 될 수 있지만 이곳은 반대다. 대화할 때 눈을 피하면 진정성이 없거나 음침하다고 느낀다. 길을 걷다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면 그저 같이 눈을 맞추며 가볍게 인사하면 된다. 프랑스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골목이나 상점에서 가볍게 인사하는 습관이 자연스럽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인들은 정말 잘 투덜거린다. 자기들끼리도 아무렇지 않게 투덜대기 때문에 기분 나빠할 상황이 아닌데, 아시아인들은 이를 불친절이나 차별로 받아들여 충격을 받곤 한다. 그저 무시하면 될 일이다.


이렇듯 문화적 차이와 해프닝에서 나오는 불쾌함은 인종차별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대놓고 외치는 '칭챙총'등은 잘 참고 고분고분한 아시아인을 상대로 하는 개인적 인종차별이 맞다. 이제껏 딱 한 번 마주쳐 봤는데 화가 난다기보다는 실소가 나왔다.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너무나 명백해서 슬롯의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딱히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집을 구할 때나 직업을 구할 때 북아프리카계는 이름만으로 이미 한 번 걸러진다는 사실은 정부조사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런 차별 자체가 불법이라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함에도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취업시장에서도 이민자 밀집지역의 주소지를 가진 이들이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차별은 슬롯현상에 가까워서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끊임없이 법과 제도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슬롯는 더 난장판이 될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진짜 차별'은 따로 있다.

'프랑스에 인종차별이 많으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겠다.

눈에 보이는 불쾌함과 정말 무거운 차별은 서로 다른 곳에 있다고.

후자는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가, 어느 날 투명한 유리천장처럼 나를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온라인 게임에서 갑자기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웃어주는 사람을 나는 경계하게 되었다.

내가 이곳의 주류가 아닌 아시아인이어서인지,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들도 고군분투해서 쟁취해야 하는 피로감이 있다. 이 피로감은 내 업무의 일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쟁취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시간도 있었다. 그 차별은 겉으로는 지극히 우아하다. 완벽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 근본적인 자아를 건드리는 불쾌함의 본질을 아는가.

머릿속으로는 선을 그어 배척하면서, 그 배척의 시스템을 부지런히 쌓아 올리고, 그것을 감추려고 한층 더 친절한 미소를 보내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도움의 손을 내밀 때조차 그렇다.

그런 순간을 증명할 수는 없다.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차별의 가장 고약한 점이다.


이것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조용히, 그러나 고개를 꼿꼿이 들고 가슴을 펴는 데서 시작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