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TV 봐도 돼?"

by지안의 방

최근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 아동 전문가 최민준 소장의 영상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 제목부터 수많은 부모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로 만드는 엄마의 말습관>


영상에 등장한 아이의 대사는 지금 이 시간, 수많은 집 거실에서도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너무나 익숙한 질문이다.


"엄마! 나 TV 켜도 돼?" "아빠, 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어도 돼?"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심 안도하며 묘한 쾌감마저 느낀다. '우리 아이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꼬박꼬박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는 예의 바른 아이구나. 아직 내 통제 안에 잘 있구나.'


그래서 아이가 결재 서류를 들고 오듯 조심스레 허락을 구하면, "숙제는 다 했어? 그럼 30분만 봐"라며 관대하게 조건부 승인을 내려주거나, 피곤하고 예민한 날엔 "안 돼, 밥 먹기 전이잖아. 방에 들어가 바카라이나 읽어"라며 단호하게 통제권을 행사한다.


부모들은 그것이 올바른 훈육이자 어른이 당연히 쥐고 있어야 할 권력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영상은 부모들의 이 오만한 착각을 산산조각 낸다. 매사 "이거 해도 돼?"라고 묻는 아이는 착하고 순종적인 것이 아니다. 뼈아프지만, 그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기를 포기한 채 부모라는 정답 자판기에 자기 삶의 주도권을 통째로 하청(외주) 주고 있는 것뿐이다.




기준이 '가정의 규칙'인가, '부모의 기분'인가

아이는 왜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매번 부모의 입술만 바라보게 되었을까? 원인은 바로 어른들에게 있다.

가정에서 아이에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일관된 규칙'을 가르쳐주기보다, 그때그때 부모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기분이 좋으면 웬만한 건 다 허락이 떨어지고,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온 날이거나 옆집 아이의 진도와 비교되어 조급해진 날에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행동의 기준이 아이 자신이 세운 원칙이 아니라, 그날그날 다르게 변하는 '부모의 안색'이 되어버린 환경. 이런 집에서 아이가 생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유(思惟)를 멈추고 눈치만 살피다 절대 권력자에게 묻는 것뿐이다.


승인이 떨어지면 마음 편히 행동하고, 혹시라도 TV를 오래 봐서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하라고 허락했잖아!"라며 바카라임마저 교묘하게 떠넘기면 그만이니까. 스스로 사유할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는 그렇게 부모의 치맛자락 아래서 가장 무기력한 수동태의 늪에 빠져들고 만다.




사소한 결정도 못 하는 어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겨우 TV 보는 거 하나 허락받는 게 대수냐"라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런 사소한 통제가 매일 쌓이면 끔찍한 나비효과를 낳는다. 어릴 적 거실에서 TV 리모컨을 쥐는 아주 작은 결정조차 주도적으로 해보지 못한 아이가, 자라서 험난한 세상에 나갔을 때 과연 자기 삶의 딜레마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까?


대학교 수강 신청을 엄마가 대신해 주고, 취업과 퇴사마저 부모에게 묻는 결정장애 청춘들의 씁쓸한 기사들은 결코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가 내려주는 정답(Input)만 입 벌리고 받아먹고 자란 아이는, 내 삶에 닥친 낯선 문제를 내 언어와 내 결정으로 씹어 삼켜 출력(Output)해 낼 힘이 없다.


대법관이던 부모가 사라진 자리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통제하고 정답을 내려주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속 빈 어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그 알량한 '결재권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시간

아이가 "엄마, TV 켜도 돼?"라고 물어올 때, 즉각적으로 "응" 혹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는 그 달콤한 통제 권력부터 버려야 한다.


대신, 날아온 결정의 공을 아이의 코트로 부드럽게 튕겨 보내주어야 한다. 최민준 소장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집 TV 시청 규칙이 뭐였지?" "네 생각은 어때? 네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늘 정답을 주던 부모가 바카라임을 넘기니 "아 몰라, 그냥 엄마가 정해줘!"라며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서늘하고 낯선 정적 속에서, 아이의 차갑게 식어있던 전두엽은 비로소 팽팽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늘 남의 눈치만 살피던 아이가 마침내 자신의 일과를 객관화하고 스스로 사유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설령 아이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 다음 날 아침 지각을 하거나 피곤해하더라도, 부모는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꾹 삼키고 그 실패의 쓴맛을 아이가 온전히 감당하게 두어야 한다. "아, 내가 그때 내 맘대로 늦게까지 놀아서 지금 이렇게 혼나고 힘들구나." 이 뼈아픈 인과관계를 몸소 겪어본 아이만이, 다음번엔 부모의 잔소리 없이도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어김없이 결재를 요구하는 질문이 날아온다면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리모컨을 아이의 손에 쥐여주자.


"그건 부모한테 허락받을 일이 아니네. 네 삶의 주인이니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렴."


내 삶의 작은 버튼 하나부터 내 손으로 누르고 바카라임져 본 아이만이, 훗날 거대한 인생의 폭풍 앞에서도 남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 아이의 사유를 틔워주는 일은, 어른들이 그 결재권자의 자리에서 기꺼이 내려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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