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위해 희생했는데!

어느 진상 엄마의 뼈아픈 착각

by지안의 방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다가, 한 장면에서 리모컨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아들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진상 짓과 억압을 일삼던 극성 엄마. 자신의 모든 만행이 발각되어 궁지에 몰리자, 그녀는 교권보호국 감독관을 향해 피를 토하듯 악을 쓴다.


​"내가 우리 아들 의대 보내려고 어떻게 희생했는데!!!! 다 그 애를 위해서 한 거라고요!!!"


​발악하는 엄마를 향해 감독관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아주 서늘하고 묵직한 돌직구를 날린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머니를 위해서 아드님이 희생한 겁니다."


​그 순간, 꽉 막혔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완벽한 사이다를 느꼈지만 이내 명치끝이 뻐근해졌다.


누군가에겐 그저 통쾌한 명대사였겠지만, 같은 부모의 입장에 서 있는 나로서는 마냥 손뼉만 칠 수 없는 뼈아픈 일침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단순히 드라마 속 빌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 자식을 위한다'는 핑계로 아이를 닦달하고 학원으로 내몰며, 불안한 밤을 지새우는 대한민국 수많은 부모들의 민낯을 향한 경고였다.


​우리는 흔히 자식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내 입을 옷 한 벌 안 사고 비싼 학원비를 결제하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늦게 라이딩을 뛰며 스스로를 헌신적인 부모라 여긴다.


그리고 아이가 내 맘대로 따라주지 않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억울함에 눈물을 흘린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위해 뭘 포기하고 살았는데!"

​하지만 아무도 없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아주 냉정하게 내면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자. 그 눈물겨운 헌신과 희생, 정말 오롯이 아이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뼈아프지만, 우리가 말하는 희생의 종착지에는 지독한 '자기만족'과 '대리만족'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의대 간 아들', '대치동 선행 끝낸 딸'이라는 타이틀은, 결국 부모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고 남들 앞에서 빳빳하게 고개를 들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빛나는 훈장이자 전리품이다.


​내 인생에서 채우지 못한 인정 욕구와 결핍을 자식의 화려한 성적표를 통해 보상받으려 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감히 모성애와 부성애라는 숭고한 단어로 포장해 왔다.


​부모의 훈장이 되기 위해 청춘을 바치는 아이들
​감독관의 말마따나 희생의 주체는 철저히 뒤바뀌어 있었다. 정작 뼈아픈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해,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이 끔찍한 가스라이팅 아래, 아이들은 스스로 고민하고 사유할 기회를 완벽하게 압살당한다. 부모가 짜놓은 촘촘한 레일 위를 달리는 아이는, 자신이 진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볼 권리를 통째로 부모의 제단 위에 바친다.


​그저 부모를 실망시키기 두려워서, 뼈 빠지게 나를 뒷바라지했다는 부모의 눈물에 부채감을 느껴서 꾸역꾸역 바카라상에 앉아 있을 뿐이다.


자식의 숨통을 조여 얻어낸 화려한 대학 간판으로 부모가 미소 짓고 있다면, 과연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한 것인가.


​부모의 훈장이 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기에 작은 실패 앞에서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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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자식의 인생에 기생해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비겁한 짓은 이제 멈춰야 한다.


​내 삶이 공허하고 내세울 것이 없으니, 자식의 성적표를 내 인생의 성적표로 착각하며 집착하는 것이다. 자식을 내 트로피처럼 여기며 닦달할 에너지가 있다면, 부모인 나 자신의 삶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데 써야 한다.


자식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는 대신 부모 스스로 자신의 일과 일상에 몰두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뒷모습을 보여줄 때, 아이는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고 자신의 삶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이제 억지로 쥐고 있던 아이 삶의 선택권을 온전히 돌려주어야 한다. 의대에 가든, 평범한 회사원이 되든, 엉뚱한 예술을 하든 그것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다.


아이가 어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날 때까지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해야 할 진짜 헌신이다.

​​자식의 삶에서 과감히 로그아웃하고 나 자신의 삶에 로그인하는 것. 대리만족의 늪에 빠진 어른들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자 참교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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