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아이, 공부 이렇게까지 시켜야 할까요?

매일 밤 흔들리는 부모님들께 드리는 대답.

by지안의 방

아이가 잠든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보거나, 지우개 가루가 수북한 바카라상 앞에서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 쉬는 뒷모습을 볼 때면 부모의 마음에는 어김없이 무거운 질문 하나가 내려앉습니다.


"우리 아이, 공부를 꼭 이렇게까지 시켜야 할까?"


시대가 변했다고들 합니다. 학벌이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도 지났고,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나만 잘 찾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세상입니다. 때로는 매일같이 문제집 분량을 두고 아이와 실랑이를 하며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제 모습에 깊은 회의감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냥 몸 튼튼하고 마음 편하게, 스트레스 없이 크면 되는 것 아닐까?'

'내 불안함 때문에, 다 큰 어른도 견디기 힘든 이 무한 경쟁 속으로 작은 아이를 억지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캄캄한 밤, 홀로 수백 번도 더 삼켜보았을 눈물겨운 질문일 것입니다.


저 또한 이 질문을 수없이 듣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조심스럽지만 꽤 단호하게 제 교육의 철학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 아이들이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해본 경험'을 꼭 한 번쯤은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말이 남들을 짓밟고 1등급이라는 트로피를 거머쥐어야 한다거나, 소위 말하는 명문대 타이틀을 따내야만 성공한다는 낡은 공식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는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백 점짜리 시험지라는 얄팍한 결과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점수를 빚어내기 위해 아이가 마주하고 통과해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삶의 태도를 빚어내는 치열한 과정'에 진짜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보다 나아진 성적, 눈에 띄는 결과는 어느 날 아침 하늘에서 마법처럼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세상은 온통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쾌락들로 가득합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도파민이 쏟아지는 숏폼 영상을 끝없이 넘겨보고 싶고, 오늘 밤 당장 새로 나온 게임의 레벨을 올리고 싶은 것이 너무나 당연한 아이들의 본능입니다. 어른인 우리조차 당장의 달콤함을 참아내는 것이 이토록 버거운데, 유혹에 취약한 작은 아이들에게는 오죽할까요.


그런데 '공부를 해낸다'는 것은, 그 모든 즉각적이고 달콤한 유혹들을 스스로 유예한다는 뜻입니다. 당장 놀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달래가며 묵묵히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일. 오늘 끝내기로 한 분량을 마주하며 도망치고 싶은 나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일.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의 막막함과 짜증을 견뎌내고 기어코 답을 찾아내는 그 끈적하고 고독한 시간.


저는 이 과정이 단순히 머리에 지식을 욱여넣는 지루한 노동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가장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자 위대한 자기 통제력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쾌락을 미루고, 미래의 목표를 위해 현재의 땀방울을 기꺼이 지불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 묵묵한 인내의 훈련을 통해 아이는 앞으로의 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될 마음의 근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눅눅하고 고단한 터널을 기어코 뚫고 나온 아이만이 맛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전리품이 있습니다. 바로 "나도 하니까 되는구나!", "내가 결국 해냈다!"는 짙고 벅찬 성취감(자기효능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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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땀 흘려본 아이, 그리고 그 정직한 노력이 성취라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해 본 아이는 세상을 대하는 눈빛부터가 다릅니다. 이 짜릿한 성공의 경험은 아이에게 세상 그 어떤 학원에서도 가르쳐 줄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의 사용 설명서를 스스로 써 내려가게 만듭니다.


"아, 나는 눈으로만 대충 읽으면 다 까먹고, 백지에 직접 쓰면서 구조화해야 진짜 내 것이 되는구나."


"나는 밥 먹고 나면 무조건 졸리니까, 어려운 수학은 머리가 가장 맑은 아침에 먼저 풀어야겠다."


"처음엔 산더미 같아서 막막했는데, 매일 3일 치로 잘게 쪼개서 하나씩 지워가며 하니까 결국 끝이 나는구나."


이런 미세한 깨달음들, 즉 나라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최적의 효율을 내는지, 나의 약점과 강점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고도의 메타인지가 켜켜이 쌓일 때 공부는 비로소 혁명적으로 바뀝니다. 부모가 소리쳐서 억지로 끌고 가는 고역이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의 운전대를 쥐고 나아가는 진짜 '자기주도학습'의 궤도에 오르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시기, 학교라는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이 뜨거운 몰입과 쟁취를 경험해 본 아이는 훗날 어른이 되어 어떤 거대한 벽이나 낯선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나 그때도 해냈잖아. 이번에도 어떻게든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며 자신을 굳게 믿어주는 단단한 자존감. 이것이 바로 학창 시절의 공부가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우리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리고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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