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릇한 글레이즈 케이크 (glaze cake)

난이도 ★★★★

by영감산바카라


401호 실습실 아일랜드 위로 내려앉은 정적은 묵직했습니다. 지난주 경찰에 체포되었다던 배웅이 멀쩡하게 돌아와 출근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배 씨는 마지막 수업이니 최선을 다하려고 온 것이라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핑계를 늘어놓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부디 3시간이 무사히 흘러 지나가길 바랐습니다.


마지막 실습은 작은 구움과자가 아닌 조별로 공동작품 ‘글레이즈 케이크’였습니다. 6개 조의 아일랜드 위에는 꽁꽁 얼려진 무스 케이크와 푸른빛 글레이즈 액이 담긴 볼, 디지털 온도계가 놓여 있었습니다. 구움 과자에서 뜬금없이 케이크라니… 얼마나 근본 없고 제멋대로 초급 과정을 해 왔는지 속이 터졌습니다. 수강생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서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숨 막히는 정적을 깨뜨린 것은 날카로운 배 씨의 잔소리가 아닌, 복도에서 들려오는 거친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지난주 센터 주차장에서 봤던 수사관 두 명이 제과실 문을 밀치고 들어섰습니다. 17명 남짓한 여성 수강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쏠렸습니다.


"배웅 씨, 구포경찰서로 동행하겠습니다. 영생교육원 내 실습용으로 사용된 설탕에서 마약류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과실 전체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칠판 앞에 서 있던 배 씨의 얼굴에서 피기가 싹 빠져나가는 모습이 스쳤습니다. 첫 시간부터 돈돈 본전만 밝히면서 수강생들의 말투, 헤어스타일, 옷차림, 수업 태도까지 비꼬며 질바카라하던 그의 오만한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습니다. 수사관들이 그의 팔을 낚아채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실습실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아무도 저지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배웅은 끌려가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글레이징에 열중한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았습니다. 문이 닫히고, 제과실 안에는 마약이라는 낯선 단어가 남긴 소름 돋는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나는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으로 유튜브 채널에서 "아이싱 글레이즈"를 검색하면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애초에 강사에게 배운 것은 없었으니 스스로 배워 나간다는 생각으로 케이크 마무리에 집중했습니다. 처음부터 걸림돌이던 사람이 없어졌으니 이제 키친과 도구를 빌린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마무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케이크 데코레이션은 미대에서 들었던 조형 수업과 공통점이 있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배웅이 재료들에 섞었다는 마약이 어떤 종류인지 궁금했습니다. 먹고 서서히 병이 들어서 죽는 것은 아닌지,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닌지, 첫 시간부터 실습 후 나눠 먹으면서 맛을 보았는데 혹시 우리도 공범으로 억울하게 몰리는 것은 아닌지, 지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별의별 최악의 상상들이 머리를 스쳐 울고 싶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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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일본에서 작가 데뷔해 2023년 리걸테크 스타트업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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