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글쓰기
나는 매니아 기질이 있다.
어쩔 수가 없다. 그런 게 내 핏속에 녹아 있는 듯 하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에 잘 빠져버리곤 했으니까.
바카라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뭐든지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동하고.
사랑도 그랬다. 불꽃처럼 돌진했다고 해야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여하간,
나는 삼십대 중반 쯤 한 아이돌 그룹을 참으로 좋아했다.
갓세븐.
인기가 많았다고 해야할까 적었다고 해야할까.
유미의 세포에 나온 바비 역을 맡은 박진영 배우가 있던 그룹이다.
당시 아이돌 덕질은 정말 내 인생의 한 줄기 빛이요, 단비였다.
아이돌 자체도 좋았지만 팬들끼리 공유한 밈도 즐거운 경험도 다 재미진 추억이었다.
열성 팬이었던 홍콩을 1박 2일로 가서 원정 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고
덕분에 아직도 거기서 만난 홍콩 친구와는 안부를 주고 받고 있다.
나의 덕질은 아이를 가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한 날은 내가 덕질하던 아이돌 갓세븐의 팬미팅 날이었다.
나는 그 날 일단 그 팬미팅에 가서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었다.
내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그 날 가서 찍어온 팬미팅 사진.
아이를 낳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다시 팬미팅을 한다는 소식에
한 손으론 젖병을 잡고, 다른 손으론 좌석 포도알을 찾아헤메어가며
어렵사리 티케팅에 성공해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열정적으로 덕질을 하던 나에게도
점차 위기와 시련이 찾아왔으니,
코로나였다.
아이를 낳고 살과 붓기도 다 뺐었던 나는 코로나 시절 만삭보다 더 몸무게가 불어버리고 만다.
내 인생 최고의 덩치를 갖게 된 것.
아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니 미치게 사랑했지만
육아의 영역과 코로나의 콜라보는 나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내가 무력하다는 감각은
나를 내 삶에서 점차 소외시켜갔다.
점차 덕질은 나에게 중차대한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내 일상의 중심은 온통 아이와의 생활이 되었다.
뉴스도 신문도, 바카라도 영화도 모든 것이 빛바랜 박스 안에 들어갔으니까.
그렇게 흘러간 세월동안 나는 점차로 그 아이돌을 나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가끔씩 추억으로만 꺼내보는 즐거운 그림엽서의 한 장면 정도로 반기게 되었다.
글을 적느라고 다시 찾아본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보니 그때의 열정과 즐거움이 다시 생각이 나 반갑다.
지금은 아이도 어느정도 컸고,
코로나도 끝이 났으며
신문과 바카라, 영화를 종종 보고 시간을 쪼개 글을 적고 바카라을 낼 정도로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때의 내가 미래의 나를 잠깐 만났더라면
정말 내가 이런 활기찬 삶을 보내고 있으리란 것을 믿을수나 있을까?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갓세븐 노래를 들어야겠다.
ps: 아직도 내 스타벅스 닉네임은 '아가새짹'이다. 아가새란? 갓세븐 팬들을 애칭으로 부르는 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