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오늘은 제가 살게요

공을 오래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

by민들레C

“점심 약속 언제 괜찮으세요?”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후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별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자기가 밥을 너무 많이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꼭 한번 사겠다고 했다. 말끝에는 늘 그렇듯 웃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몇 번 더 샀을 뿐이고, 그걸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 사람은 자기 나름의 셈을 오래 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회사 축구팀에서 가까워졌다.


처음부터 순탄한 회사생활을 한 사람은 아니었다. 기간을 정해 일하는 자리에서 시작했고,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조금씩 자기 자리를 만들어왔다. 고용의 형태라는 것이 사람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회사 안에서 그것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안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해도 앞으로의 시간이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루를 받아들이는 무게는 다를 수 있다.


다행히 그는 자기 자리를 잘 만들었다. 부서를 옮긴 뒤에도 사람들과 잘 섞였고, 일을 대하는 태도도 한결같았다. 무슨 일을 맡든 먼저 얼굴을 찌푸리는 법이 드물었고,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예의를 갖췄으며, 자기가 해야 할 몫은 웬만하면 웃으면서 해냈다.


그리고 아이가 넷이었다.

아들, 딸, 아들, 딸.

회사에서도 꽤 유명한 사실이었다.


아이 넷을 키우는 온라인 게임인의 하루가 늘 밝을 리는 없다. 회사에서도 속상한 일이 있었을 것이고, 집에 돌아가서는 네 아이의 서로 다른 하루를 받아내야 했을 것이다. 사람 하나 키우는 데도 마음과 돈과 시간이 든다는데 넷이면 어떤 날들이 있었을지 내가 다 짐작할 수는 없다.


그런데 회사에서 마주치는 그의 얼굴에는 이상할 만큼 밝은 쪽이 먼저 보였다.

억지로 유쾌한 척하는 사람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고, 도움을 받으면 기억했다가 꼭 고맙다고 말하고, 분위기가 조금 굳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웃었다.


그래서 나도 무엇인가 생길 때면 가끔 그 후배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이나 물건이 생기면 한번 물어봤고, 몇 번은 밥을 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족 모두를 불러 같이 식사한 적도 있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어도 서로의 가족 구성을 알고,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물어볼 수 있는 정도의 사이.


온라인 게임 관계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 이야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조금 생겼다.

그 후배가 이번에는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날짜를 잡고 나니 당일 아침부터 다시 메시지가 왔다.

몇 시쯤 나올 수 있는지, 어디가 좋을지,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마음은 고마웠지만 괜히 점심 한 끼 때문에 그 사람까지 긴장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15-2.png

“장소는 내가 정할게요.”

로비에서 만나 회사 뒤쪽 길로 내려갔다. 몇 번 가본 순댓국집이 있었다. 새로 생긴 곳인데 국물이 깔끔했고 점심에도 회전이 빨랐다.


“여기 한번 가봅시다. 괜찮아요.”

후배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제육볶음이나 돈가스와 함께 흔히 ‘남자들이 좋아하는 메뉴’라고 농담처럼 묶이는 음식이지만, 그날 우리에게는 그냥 뜨거운 국 한 그릇이면 충분했다.


걸어가는 동안 나는 먼저 부서를 옮긴 뒤 어떠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민들레C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별이 된 어머니의 바카라장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과 침묵 사이에 남은 마음을 씁니다.

14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4화14. 오래된 교집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