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말 걸기 어려운 식탁

한 뼘쯤 느슨해진 자리

by민들레C

모처럼 학교에 들른 날, 대학원 주임교수님이 대화 중에 불쑥 말씀하셨다.


“얼마 전에 도심 호텔에서 점심 드시는 거 봤어요.”


식당 이름을 듣고 어느 날인지 짐작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거기서 셋이 식사를 한 날도 그리 많지 않았다. 교수님은 인사를 할까 싶어 몇 걸음 다가왔다가 그대로 지나쳤다고 했다.


“왜요?”


“말 걸기가 좀 어렵더라고요. 세 분이 앉아 계시는데 분위기가 꽤 중량감 있어 보여서.”


듣고 보니 그럴 법했다. 몇 걸음 밖에서는 얼굴보다 자리가 먼저 보였을 것이다. 누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말이 어느 쪽에서 시작되고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 식탁에도 직함처럼 멀리서 먼저 보이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날 내가 오래 보고 있던 것은 보고서도 숫자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딸의 사진이었다.


나는 여섯 해 가까이 회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그분을 가까이에서 모셔왔다. 외부 고객과의 일정이 없는 날, 아주 가끔 그분이 자리 쪽으로 오셔서 물었다.


“오늘 점심 약속들 있어요?”


없다고 하면 다음 말은 대개 짧았다.

“그럼 앞에서 간단히 할까요?”


오랫동안 그분의 하루를 챙겨온 전문비서와 나, 그렇게 셋이 내려갔다. 이미 약속이 있던 날에는 급히 메시지를 보내 사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상대방도 내가 하는 일을 아니까 대부분 길게 묻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몇 마디면 됐다.


그 점심을 편한 자리라고 부르기에는 각자의 위치가 너무 선명했고, 업무 식사라고 하기에는 정작 오가는 말이 별 쓸모가 없었다.

아주 업무적이지도, 아주 개인적이지도 않은 사이.


회사에서 누군가와 오래 가까이 일하다 보면 그런 거리가 생긴다. 직함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는데 굳이 모든 말의 앞뒤를 설명할 필요는 없어지고, 사적인 관계라고 할 수는 없는데 남들이 모르는 표정 몇 개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디까지 가까워져도 되는지 따로 합의한 적은 없지만 대략 안다. 오히려 더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지켜지는 친밀함도 있다.


우리 셋은 대체로 그 정도에 앉아 있었다.


사무실에서의 그분은 빠르다. 판단도, 질문도, 다음으로 넘어가는 속도도 빠르다. 원하는 결과가 분명하니 일이 기대한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말은 짧아지고 목소리에는 힘이 붙는다. 가까이에서 일한다는 것은 좋은 표정만 가까이서 본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한두 번 거쳐 들었을 말을 바로 앞에서 받는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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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어머니의 바카라장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과 침묵 사이에 남은 마음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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