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 시간의 행방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by민들레C

한 해가 지날 때마다 하루를 버티는 체력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건방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디 가서 나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고, 나보다 훨씬 오래 일해온 사람들도 매일 아침 멀쩡히 출근한다. 그런데 몸은 생각보다 정직해서, 작년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일정이 올해는 조금 버겁고, 오전 내내 회의 몇 개를 지나고 나면 오후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아무 소리가 없는 곳에 있고 싶은 날이 생긴다.


체력이 줄어든 것인지 마음의 근육이 약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그렇게 친절하게 영역을 나누어 늙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날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무실의 공기가 먼저 움직였다. 열두 시가 되기 몇 분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화면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뭐 먹을 거냐는 말이 오갔고, 먼저 내려가 자리를 잡겠다는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조금 뒤면 1층 로비에서는 약속한 사람을 찾느라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서로 발견하면 짧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둘이나 셋씩 정문 밖으로 흩어질 터였다.


나는 그날 그냥 자리에 남기로 했다.


누구와 점심을 먹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요즘은 사람과 밥 먹는 시간이 전보다 좋아졌다. 전에는 점심시간만큼은 사람에게서 빠져나와야 살 것 같았는데, 여러 식탁을 지나고 난 뒤에는 누군가와 앉아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나름의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어떤 날에는 다른 종류의 영양분이 필요했다.

말이 없는 것.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

한 시간 동안만큼은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누군가의 표정을 읽지 않고, 내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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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런 쪽이었다.


오후 회의에 가져갈 자료가 조금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오히려 일이 잘됐다. 오전에는 메시지 하나를 쓰다가 전화가 오고, 문서 한 장을 보다 누군가 자리로 찾아오고, 회의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일정 알림이 올라왔는데, 점심시간의 사무실에서는 화면 속 문장이 이상할 만큼 천천히 보였다.


두 개의 모니터를 켜놓고 자료 몇 장을 정리했다.

표 하나를 고치고, 전날 받아둔 메일을 다시 읽고, 오후에 물어볼 내용을 몇 줄 적었다.

해야 할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닌데 마음이 조금 덜 급했다.


사람이 없는 사무실에는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았다.

한참 화면을 보다가 결국 팔을 바카라상 위에 포갰다.


십 분만.


그렇게 생각하고 얼굴을 묻었다.

사무실 바카라상에서 자는 잠은 집에서 자는 잠과는 종류가 다르다. 깊이 들 수 없다는 것을 몸도 알고 있다. 전화벨이 울릴 수 있고, 누군가 점심을 일찍 마치고 들어올 수도 있고, 메신저 알림 하나에 눈을 뜰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잠이라기보다 잠깐 전원을 낮추는 것에 가깝다.


몸은 바카라상 위에 있고 의식만 잠시 사라지는 시간.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모니터 화면은 그대로 켜져 있었다. 문서도, 메일함도, 오전에 열어둔 채팅창도 그대로였다. 내가 잠깐 없었다는 사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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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어머니의 바카라장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과 침묵 사이에 남은 마음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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