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요즘 뭐가 재밌어요?

직함 밖에서 내민 명함

by민들레C

점심 제안은 메일로 왔다.


언제가 괜찮은지, 혹시 내 일정 때문에 시간을 조금 앞뒤로 조정해야 하지는 않는지, 음식은 어떤 종류가 편한지. 몇 줄 되지 않는 메일인데도 보낸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점심 한 끼를 잡으면서도 순서를 세우고, 상대가 미처 말하지 않은 사정까지 한 번쯤 먼저 생각해두는 사람.


오래전 내가 사람을 키우고 배우게 하는 일을 맡고 있을 때부터 알던 선배였다. 당시에는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상할 만큼 배움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건넸다. 현장에서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고, 자기가 겪은 것을 교육의 언어로 바꾸어 들려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서로 여러 자리를 건너왔는데도 그 관심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배움을 연결하고 있었고, 시간이 나면 다시 과정에 들어가 공부했다. 때로는 휴가까지 내어 배우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오래 놓지 않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 선배가 만든 자리에는 네 사람이 모였다.


한 분은 얼마 전 더 큰 바카라임을 맡게 된 임원이었다. 체구도 아담하고 실제 연배보다 훨씬 젊어 보여, 바깥 행사에서 경력을 듣고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함께해보면 그 긴 시간이 어디에 쌓여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전문성은 단단했고 요구할 것은 분명히 요구했지만, 그 단단함을 사람에게까지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맡고 있는 일의 성격상 반가운 말만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조직이 편하게 가고 싶어 할 때 한 번 더 멈춰 세워야 했고, 모두가 괜찮다고 생각할 때에도 보이지 않는 틈부터 살펴야 했다. 아무 일이 생기지 않으면 한 일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엇인가 어긋나는 순간에는 가장 먼저 질문을 받는 자리. 한동안 여러 현안의 한복판에서 꽤 고단한 시간을 지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바깥에서도 그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내가 더 인상 깊게 본 것은 그 과정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결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이 단단한 것과 사람이 딱딱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또 한 사람은 지금 나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오래된 선배였다. 내가 인사 쪽으로 막 자리를 옮겼을 무렵에는 일을 가르쳐주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고, 올해는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시기에 부장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지금은 회사가 바깥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돌려줄 것인지 고민하는 일을 맡고 있다.


오래된 관계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잔결이 남는다. 먼저 가르치던 사람과 배우던 사람,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과 뒤따라가던 사람. 시간이 흐르면서 역할은 달라지고, 어느 날 다시 비슷한 높이에서 일을 나누게 된다. 젊었을 때라면 그런 변화 하나하나에 마음이 조금 복잡했을지도 모르지만, 세월에는 관계의 뾰족한 부분을 천천히 닳게 하는 힘도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서로 손을 내민다.

더구나 그는 대학원에서도 나보다 먼저 공부한 선배였다. 회사에서 시작된 인연이 다시 배움이라는 곳에서 한번 겹쳤고, 그렇게 오래 이어졌다.


네 사람이 맡은 일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조직이 미처 보지 못한 위험을 먼저 살피고, 누군가는 자기 본업의 바깥에서도 사람의 성장을 오래 궁리했으며, 누군가는 회사와 슬롯가 만나는 곳을 돌보고 있었다. 나 역시 몇 번 역할을 바꾸어왔지만 공부라는 끈만큼은 완전히 놓지 않았다.


회사에서 내미는 명함은 모두 달랐지만, 다른 자리에서는 비슷한 명함 하나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계속 배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이 회사 안에 있다는 것이 꽤 든든하다.


그날 식당에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은 나였다.

앞 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져 먼저 가 있으시라고 연락을 드린 뒤 조금 서둘러 걸었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나는 그런 식당이 있는 줄도 몰랐다. 큰길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있는 일식당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깥의 소음이 금세 줄었고, 안쪽에는 조용한 방들이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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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 세 사람이 이미 앉아 있었다.

늦어 죄송하다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메뉴판이 내 쪽으로 넘어왔고, 이것도 괜찮다, 이왕이면 큰 것으로 하나 시키자는 말이 이어졌다. 사적으로는 처음 마주 앉는 사람도 있었지만 별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을 통해 서로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각자 하는 일은 달랐지만 필요할 때 연락하면 대강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사람들.

완벽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

회사에서 그런 신뢰는 생각보다 귀하다.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내가 한마디 던지면 그 뒤에 붙은 사정을 조금은 알아들을 사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영역에서는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날 식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업무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최근 회사의 이런저런 일과 사람들의 근황이 잠시 식탁을 돌았고, 곧 휴가 이야기와 요즘 배우는 것, 일 밖에서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같은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러다 누군가가 재미있는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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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어머니의 바카라장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과 침묵 사이에 남은 마음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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