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입고 왔냐?"
오래된 사람에게서는 가끔 연락이 느닷없이 온다.
잘 지내느냐는 안부도,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느냐는 섭섭함도 별로 없다. 몇 년 만에 연락하면서도 마치 지난주에 한번 본 사람처럼 본론부터 꺼낸다.
그날도 그랬다.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형이 점심 무렵 전화를 걸어왔다. 약속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중간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는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삼 년 전이었는지, 오 년 전이었는지. 운동을 한번 같이 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나 싶다가도 그 뒤 어딘가에서 커피를 마신 것 같기도 했다.
오래된 관계에는 날짜가 조금 부정확해도 되는 구석이 있다.
만나지 않은 시간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음 문장이 이어지는 사이.
대충 서로의 회사 중간쯤 되는 동네를 골랐다. 처음 가보는 갈비탕집 하나를 정해두고 휴대전화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식당 근처에서 형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얼굴을 보기도 전에 차림새부터 본다.
“양복 입고 왔냐?”
인사가 그랬다.
나는 오전 일정에서 바로 나온 터라 재킷까지 갖춰 입고 있었고, 형은 폴로셔츠에 편한 바지 차림이었다. 자기는 그런 옷 안 입고도 회사 잘 다닌다는 식으로 웃었다.
스무 해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맞는 방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취직 한번 해보겠다고 모여 다니던 시절에 만났다.
아직 누구도 무엇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디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고, 들어간 뒤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더 몰랐다. 요즘처럼 취업 준비의 방식이 촘촘히 정리되어 있던 때도 아니었다. 설령 공식이 있었다 해도 우리에게 썩 맞는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형은 소위 좋은 학벌을 앞세우는 사람도 아니었고, 당시 금융회사들이 좋아할 법한 반듯한 모범생의 인상도 아니었다. 사람은 둥글둥글했고 말투도 느슨했다. 그런데 노무사 자격증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꽤 높은 산 하나를 이미 넘어온 사람이었다.
평범해 보이는데 어딘가 한 음이 달랐다.
그 시절 우리는 공부를 했고 술도 많이 마셨다. 면접 질문을 맞춰보다가 세상을 다 아는 사람처럼 떠들었고, 결과 하나에 하루 종일 풀이 죽었다. 누가 먼저 합격하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내 차례가 영영 오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밤늦게 술을 마시고 다음 날이면 다시 모여 자기소개를 고쳤다.
청춘을 불태웠다고 쓰면 지나치게 아름답다.
우리는 그냥 필사적이었다.
조금 초라했고, 가진 것은 많지 않은데 되고 싶은 것은 많았다.
형과 나는 같은 회사에도 합격했다. 형은 그 문으로 들어갔고 나는 다른 곳을 택했다. 길은 그때 갈렸다. 그렇다고 아주 멀어지지는 않았다. 같은 업종에서 비슷한 숫자를 보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서로 다른 조직에서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자주 만났다. 그러다가 각자의 일이 생기고 가정이 생기면서 몇 년에 한 번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운동을 한번 하거나 차를 한잔 마시고, 살아 있나 확인하는 정도.
그런데도 만나면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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