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새벽을 지나
사무실에서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리듬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점심 약속 있으세요?”
짧은 한 줄이었다.
때로는 메신저 대신 직접 자리로 걸어오셔서 눈빛으로 먼저 물어보시기도 했다.
혼자 점심을 건너뛰려던 날도 있었고, 볼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려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메시지라면 어지간해서는 수락하게 되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직급 때문만은 아니었다.
긴 세월 함께 이런저런 일들을 통과하며 쌓인, 설명하기 어려운 신뢰 같은 것이었다.
일의 언어와 삶의 언어를 동시에 나눌 수 있는 사람.
서로가 허락하는 마음의 선이 어디쯤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 곁에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꽤 드문 행운이다.
오래 전부터 이쪽 건물에서 근무를 해 오신 터라, 골목 구석구석을 훤히 꿰고 계셨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숨은 식당으로 데려가실 때도 많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 짧은 점심시간 동안 나누는 이야기였다.
연륜과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들은 때로 짧은 강연처럼 마음에 남았다.
그날은 백반집이었다.
익숙한 식당이었지만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곳이었다.
둘이서 메뉴를 서너 가지 시켜놓고 나눠 먹는, 그런 자리였다.
가격도 부담 없고 반찬도 넉넉한, 괜히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밥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얼마 전 있었던 점심 자리의 후일담을 꺼내셨다.
회사 밖에서 다른 역할을 이어오시다가, 새롭게 경영을 함께 살피게 된 외부 인사 분과 주요 임원들이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의 일정을 맞추고 식당을 정한 뒤, 당일에는 내가 직접 식당까지 안내해드렸다.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뒤, 그분은 고맙게도 그날의 분위기와 오간 이야기를 내게 차근차근 들려주셨다. 앞으로 관련 업무를 챙겨가려면 나 역시 알아둘 필요가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꼭 업무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내가 자리를 마련하고도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시기에, 그 시간의 한쪽을 내게도 내어주시는 것 같았다. 행간의 숨은 배려와도 같은 마음.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공유해주신다는 것 자체가 내 자리와 역할을 존중해주시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런 순간이 늘 조금 감사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업무로 끝나지 않았다.
새로 함께하게 된 분께서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꽤 깊이 털어놓으셨다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지나온 삶에 적지 않은 굴곡이 있으셨다고. 특히 자녀와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고, 아버지로서 성찰하고 고뇌한 시간이 길었다고 하셨단다.
성당을 다니며 그 시간들을 버텨왔고, 믿음이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자녀분도 자기 자리에서 잘 생활하고 있고, 관계도 회복되어 그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괜히 숟가락을 내려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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