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시작하는 사람
정년을 앞둔 사람의 조언은,
정리가 아닌 확장이었다.
몇 년 전부터 가까운 부서의 부서장 한 분과 일을 자주 섞어왔다. 서로 맡은 기능은 달랐지만 일이 조금 복잡해지거나, 한쪽의 논리만으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결국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는 사이였다.
원래 영업에서 이름을 알린 사람이었다. 판이 커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힘을 발휘하는 종류의 사람. 지원 부서의 바카라임자 자리가 비었을 때도 조직 안에서는 일찍부터 그의 이름이 돌았다. 전혀 다른 일을 해온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그가 앉는다는 말에는 별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를 꽤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같은 문제를 보고도 다른 곳을 보는 사람이 있다. 이미 정해진 길을 더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이 아닌 곳에서 하나를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 그와 몇 번의 까다로운 일을 함께 넘으며 나는 그런 감각을 가까이서 보았다. 특히 내가 부탁한 일은 늘 자신의 우선순위 어딘가에 넣어두고 끝까지 챙겼다. 언젠가는 꼭 밥 한 끼를 제대로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어렵게 시간을 맞췄다.
사무실 근처의 조용한 곰탕집이었다. 화려하지 않고, 뜨거운 국물 하나를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 사람의 말도 조금 느려질 것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동안 함께했던 일 이야기를 몇 가지 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먼저 질문을 받은 쪽은 나였다.
“요즘 바쁘신 건 알겠고. 다른 건 뭐 준비하고 계세요?”
숟가락을 들다가 그를 봤다.
“다른 거요?”
“하셔야죠. 지금이 제일 좋을 때인데.”
그리고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외연을 조금씩 넓히셔야죠. 회사 안에만 계시면 안 됩니다.”
잠시 나를 보더니 웃었다.
“이 정도 인물에, 실력에, 논리면 밖에서 여러 가지 하셔야 할 각인데.”
농담처럼 들렸지만 눈은 웃고만 있지 않았다.
“공부도 더 하시고요. 따실 건 더 따시고. 박사까지 가셔야죠. 강단도 한번 서보시고.”
나는 그저 웃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종종 있다. 더 공부하라거나, 바카라을 써보라거나,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해보라는 조언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떤 말은 듣는 순간 흩어지고, 어떤 말은 오래 남는다. 말의 내용보다는 그것을 말한 사람이 어디쯤에서 그 말을 건네고 있는가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는 곧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말이면 외곽에 내려가 작은 집을 직접 짓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시작한 박사과정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었고, 그동안 살아오며 쌓인 이야기들로 언젠가는 바카라도 한 권 써볼 생각이라고 했다. 강단에 서는 일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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