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12
유로비트에 맞춰서 추는 춤은 파라파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로비트를 리메이크하거나 모방한 일본과 한국의 가수 중에는 파라파라가 아닌 춤을 춘 가수가 오히려 더 많다. 나는 특히 아무로 나미에와 NRG의 격렬한 춤을 항상 좋아했다.
파라파라도 유로비트에만 맞춰서 추는 춤은 아니다. 테크노에 맞춰서 추는 테크파라, 트랜스에 맞춰서 추는 트라파라도 있다. 유로댄스, 팝송, J팝의 파라파라 안무도 꽤 많다(이런 안무들은 테크노에 맞춰 추지 않는데도 테크파라로 분류된다. 유로비트나 트랜스가 아니면 그냥 전부 테크파라라고 부르는 것 같다).
유로비트에 맞춰서 파라파라를 춘다는 발상 자체를 싫어하는 유로비트 팬들도 있다. 주로 파라파라 문화를 생소하게 여기는 서양인들이다.
그럼에도 유로비트와 파라파라는 결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두 장르는 오랫동안 함께 변화하고 발전했으며, 거창하게 말하자면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일본에서 파라파라가 인기 있었던 시기는 세 번 있었던 것으로 정의된다. 각각 제1차, 제2차, 제3차 파라파라 붐이라고 부른다. 구체적인 연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지만 대략 제1차 파라파라 붐은 1980년대 후반, 제2차는 1994년에서 그 이후로 수년 간, 제3차는 2000년 전후다.
그리고 유로비트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제1차, 제2차, 제3차 유로비트 붐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기도 파라파라 붐과 대략 일치한다. 어떤 때는 유로비트 붐이 파라파라 붐을 이끌었던 듯하고, 어떤 때는 그 반대였던 듯하다.
제1차 파라파라/유로비트 붐은 일본의 버블경제와 함께 꽃피고 졌다. 호황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디스코텍을 찾았고, 그곳에서 흐르던 음악이 유로비트였다. 그리고 유로비트를 위한 춤인 파라파라가 탄생했다. (어쩌면 획일성을 좋아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 때문에 디스코텍에서도 다 같이 통일된 동작으로 춤을 추게 된 것 아닐까?)
버블경제는 1990년 초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제1차 파라파라/유로비트 붐도 그보다 조금 후에 끝났다. 다만 버블경제의 붕괴가 파라파라/유로비트 붐을 끝낸 직접적 원인은 아닌 듯한데, 일본 슬롯의 분위기는 아직 낙관적이었고 디스코텍도 계속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은 테크노로 유행이 옮겨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전설적인 테크노 디스코텍 ‘줄리아나 도쿄’가 1991년에 문을 열면서 유로비트 디스코텍들은 외면 받게 됐다. 버블경제가 붕괴한 후에야 문을 열었던 줄리아나 도쿄가 지금은 마치 버블경제의 상징처럼 통하고, 실제로 버블경제 시기에 유행했던 초기 파라파라/유로비트는 잘 회자되지 않는 것이 흥미롭다.
줄리아나 도쿄는 1994년 중반에 문을 닫았다. 그곳에 뺏겼던 손님들이 돌아오면서 파라파라 디스코텍들은 다시 숨통이 트였다. 또한 줄리아나 도쿄의 창업자였던 오리구치 마사히로가 1994년 말 에이벡스와 손을 잡고 ‘벨파레’라는 새로운 디스코텍을 열었다. 벨파레는 에이벡스가 직영하는 곳이었기에 유로비트는 그곳의 주요 장르 중 하나가 됐다. 이렇게 제2차 파라파라/유로비트 붐이 시작됐다.
그리고 1995년과 1996년에 아무로 나미에, V6, MAX 등의 일본 가수가 유로비트 번안곡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유로비트는 디스코텍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음악이 된다. (이처럼 일본인이 노래하거나 제작한 유로비트는 J-유로라고 부른다) 다만 이 가수들은 파라파라를 추지는 않았다. 파라파라는 제1차 붐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이 널리 즐기는 춤이라기보다는 디스코텍에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추는 춤이었다. 제2차 붐 초반에는 파라파라가 디스코텍을 통해 유로비트의 인기를 견인했지만, 그 후에는 J-유로로 인해 유로비트의 대중성이 파라파라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제2차 파라파라 붐은 제1차 붐과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디스코텍에 가지 않고도 비디오를 보며 파라파라를 배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80년대와는 달리 학생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저렴한 디스코텍이 없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이벤트 서클’을 결성해 디스코텍 바깥에서 파라파라를 추기 시작했다.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갸루 문화의 일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