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13
제2차 붐 이후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파라파라/유로비트에 다시 시들해졌다. 유로비트 번안곡은 줄어들었고 파라파라 디스코텍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1998년에 유로비트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이니셜 D 애니메이션이 호평을 받으면서 유로비트 시장에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9년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일본 전국에 제3차 파라파라 붐을 일으켰다. 하나는 키무라 타쿠야, 다른 하나는 갸루들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연예인이었던 키무라 타쿠야는 TV에서 파라파라를 춰서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여고생들을 중심으로 갸루 문화가 유행하면서, 이벤트 서클을 통해 갸루들에게 계승된 파라파라도 함께 유행했다.
제3차 파라파라 붐의 가장 큰 특징은 디스코텍이나 이벤트 서클에 관심이 없던 평범한 사람들까지 파라파라에 열광했다는 것이다. 도쿄 디즈니랜드에서도 파라파라 행사가 열렸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오프닝에서도 주인공이 파라파라를 췄다. 에이벡스에서 발매한 안무 교본 비디오 ‘파라파라 파라다이스’와 ‘파라파라 스타디움’도 합계 40만 장이 팔렸을 정도다.
그래도 물론 파라파라의 중심은 디스코텍이었다. 트윈스타, 9LoveJ, 벨파레가 특히 유명했다. (여담이지만 9LoveJ는 ‘쿠라부 제이’라고 읽는다. ‘쿠’는 9, ‘라부’는 Love, 쿠라부는 클럽의 일본식 발음이다) 물론 다른 디스코텍들도 파라파라 유행에 동참했다. 평일에도 파라파라 이벤트가 열리는 디스코텍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파라파라에서 파생된, 테크노에 맞춰서 추는 테크파라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시기에 최초의 테크파라 안무 비디오테이프가 트윈스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파라파라 바람을 타고 유로비트도 주류 장르가 됐다. 1999년에 발매된 유로비트 컴필레이션 앨범 Super Eurobeat의 100집은 70만장이 팔려,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반 차트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발매된 110집도 마찬가지로 70만장이 팔렸고 오리콘 차트 2위에 올랐다.
제3차 붐은 사실상 마지막 파라파라/유로비트 붐이었다. 그리고 세기말과 새천년의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제3차 붐도 힘을 잃었다. 결국 유로비트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많고도 많은 하위 장르 중 하나일 뿐이고, 파라파라도 주로 거기에 맞춰서 매우 정형화된 춤의 한 장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아마 자극적이고 키치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질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로비트 공급을 독점했던 에이벡스의 근시안적인 행동도 한몫했다. 한 예로 다른 레이블에서 Euro Panic!이라는 유로비트 컴필레이션 시리즈를 내자, 에이벡스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맞서서 시장에서 몰아내 버렸다. 당장은 시장을 독차지하니 좋았겠지만, 장기적으로 저변이 확대되지 못하고 소수의 아티스트가 비슷비슷한 곡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엄청나게 팽창했던 소비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새로운 시도도 조금씩 이뤄졌다. 제3차 붐 때 정신없이 빠르고 시끄러운 곡 위주였던 유로비트에서는 90년대 초반을 연상시키는 약간 느리고 서정적인 곡도 공존하게 됐다. 파라파라 안무의 스타일도 전보다 더 다채로워졌다. 테크파라도 꾸준히 발전했고, 2000년대 초반 트랜스가 유행하면서 2003년경 트랜스에 맞춰 추는 ‘트라파라’도 등장했다. 이 시기를 제3.5차 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4년 에이벡스는 ‘제4차 파라파라 붐’을 선언하고 파라파라 유행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O-Zone의 Dragostea Din Tei가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유행하자(나중에 한국에서도 현영이 ‘누나의 꿈’으로 번안한 곡이다) 에이벡스에서는 얼른 이 곡의 유로비트 리믹스와 파라파라 안무를 발표했다. 당시 인기 있던 코미디언을 파라파라 영상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파라파라와 유로비트 분야에서 여러 적극적인 마케팅이 있었다.
하지만 제4차 붐은 실제로 존재했던 유행이 아니라 그저 에이벡스의 구호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안타깝지만 파라파라와 유로비트는 한물 간 장르였고, 한 음반사가 인위적으로 인기를 되살려낼 수는 없었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에이벡스에 곡을 제공하던 이탈리아의 유로비트 레이블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조각조각 나뉜 때이기도 했다.
다만 에이벡스라는 거대한 기업이 돈을 들이부었던 흔적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영상으로 남아 있다. 마침 DVD의 보급이 완료된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유로비트 아티스트들의 일본 공연과 인터뷰, 파라파라 안무 교본 등의 DVD가 쏟아져 나왔다. 2005년에는 비로소 에이벡스의 첫 테크파라 DVD 시리즈인 We Love Techpara가 발매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테크파라를 배우는 사람이 늘었고, 테크파라는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리센느의 미나미가 춰서 유명해진 Change My World [Going Mad Mix]도 이 시기의 테크파라 안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