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이 내 어깨에 닿은 순간

by이뻔뻔


''툭.''


민수 씨의 크고 두툼한 두 손이 예고도 없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다음 주도 화이팅하시구요.''



그의 손이 내 어깨위에 닿았던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고 회로가 잠시 정지했다. 평소 친한 친구와도 가벼운 팔짱 하나 끼지 않는 나였다.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네 라고 대답하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여의도역 지하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혼자 지하철 안으로 내려갔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5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자마자 진동이 울렸다.


''오늘 즐거웠어요. 커피랑 디저트 못 사드려서 아쉬웠어요. 또 연락드릴게요.''


저녁은 내가 샀기에 커피랑 디저트를 못 사준 게 내심 걸렸던 모양이다. 한강을 걷다보니 적당한 카페가 없었을 뿐이고 선선한 날씨에 한강 계단에 앉아 있다보니 카페에 갈 타이밍이 없었을 뿐이다. 소심한 걸까, 아니면 세심한 걸까.


그 문장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메세지를 보냈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보통은 남자가 먼저 건냈을 법한 안부인데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얼굴 보기 전 데이트 코스 정하는 것부터 이제까지 내가 더 적극적인 것 같이 보였다. 지금까지의 나는 남자들이 정하는 데이트 코스에 수동적으로 응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민수씨가 그 정도로 마음에 든 것도 아니였다. 민수 씨에게 어제 집에 잘 들어갔냐고 물어봤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그는 그 메세지를 읽지 않았다.


'뭐지? 내가 뭔가 착각한 건가?'


내 어깨에 잠시 올라왔던 그의 손, 다음을 기약했던 말, 관심있는 사람이라고 나를 지칭했던 것 등등 그와의 일들이 떠올랐다.


'흠...어렵다. 40대의 연애...'


2시간 쯤 지났을 때 민수 씨에게 답장이 왔다. 커피 사진 한 장과 함께였다.


''일하느라 바빴어요. 지금은 한숨 돌리고 커피 한 잔 하고 있어요.''


혼자 착각한건가 싶어서 심란해하던 마음이 그가 보낸 사진 속 커피 한 잔의 온기에 내 마음은 평정을 되찾았다.


'바빠서 그랬던 거구나.'


널뛰던 감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도감이 들어왔다. 몇 마디 대화를 더 이어갔지만 막상 할말이 없었기에 메세지를 주고 받는 것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사귀는 사이도, 그렇다고 완벽한 남남도 아닌 사이다. 선을 넘을까 말까 고민해보지만 결국 넘지 못한다.

'원래 연락에 무던하고 무심한 성격인 걸까, 아니면 아직 확신이 없어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걸까.'


나를 향했던 그의 친절한 행동과 어깨에 닿았던 그의 커다란 손, 그리고 반대로 무심하게 그어진 침묵들이 끊임없이 엇갈렸다. 그리고 헷갈렸다.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건 정답을 알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점이었다. 먼저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내밀어야 할까, 아니면 그가 다가올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까.


'헷갈리면 아닌 거라는데…….'


씁쓸한 문장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수 씨를 향한 내 진짜 마음조차 불분명했다. 호감도, 그렇다고 비호감도 아닌 애매한 온도로 떠 있는 감정.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어정쩡한 마음 상태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를 향한 내 마음이 열렬한 호감이었다면, 지금의 이 기다림과 불확실성이 훨씬 더 괴롭고 아팠을 테니까...


다음 날, 민수 씨와 소개팅을 주선했던 정미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났다며? "


정미에게는 괜한 부담을 줄까 싶어 민수 씨와의 만남을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아마 민수 씨의 주선자를 통해서 들은 모양이였다. 민수 씨와 그의 주선자는 몇 년 전 자전거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이로 친한 사이라기 보다는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이였다. 어색하지 않은 정도의 관계였다. 아마 민수 씨 주선자가 먼저 민수 씨에게 나와의 진행 상태를 슬쩍 물어보았을 것이고, 민수 씨는 있는 그대로 두 번 만났다고 답했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이 민수 씨 주선자의 입을 통해 내 친구 정미의 귀로 들어갔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정미가 호들갑을 떨며 내게 연락을 취해온 것이었다. 정미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다보니 솔직하게 민수 씨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 :

민수 씨는 키도 크고, 외모도 괜찮으셔.

또 동안이야.

근데 살이 좀 많이 찌셨기는해.

(살쪘다는 말은 비밀이야)

사람은 그냥 무난한 것 같아.

선이 명확한 사람 같아.

사내연애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 번도 안해봤다고 하더라고.

예민한 사람 같기도 하고.

민수 씨에게 이성적 호감은 없지만,

내 나이에 이성적 호감이 느껴질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괜찮은 사람인지 보게되고

그렇다면 만날수 있다?


정미 :

내가 주선자에게 듣기로도

주선자랑 오래본 사이인데도

가까워지지 않은걸보면

원래 성격이 이성적이고

선을 긋는 것 같아.

엄청 깔끔하시다고 해.

너는 이성적 호감은 안 느껴지지만

몇 번 만나서 사람 괜찮으면

사귈 수 있을 것 같다는 거?


나 :

응. 맞아.

이성적 호감 느끼려면 남자가 20대여야 할 듯 ㅋㅋ

보통 소개팅으로 만나면 중간 중간 연락도 하는데 그런게 없어. 연락 조금 주고받다 끊기게 돼.


정미 :

좀 서운하겠다.


나 :

아니야. 서운하지는 않아.

연락 주고받다가 안 사귀면 좀 그럴까봐 그러는 거 아닐까?

그나저나 민수 씨는 에겐남 같아. ㅜㅜ

(테토남 좋아하는 나)


정미 :

사실 답답해도 에겐남이 나.

테토 꼰대보다...

(테토 꼰대남과 결혼한 정미)


나 :

나한테 본인은 느린 사람이래.

서로 지켜보자는 것 같아.

우리 나이에 먼저 사귀고 알아봐야지.

알아보고 사귀겠다는 걸로 들려. ㅋㅋ

나이 들고 남자 만나려니 고난이도야.

멀쩡해보이면 비혼이거나 저런 스탠스로 나와.


정미 :

늦은 나이의 연애는 희안한 경우가 많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