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항암 막바지,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by고들정희

7월 30일부터 시작했던 1차 항암이 서서히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항암 주사 3번을 맞으면 한 사이클이 지나간 것으로 간주한다. 총 12회의 항암이니 4번의 사이클을거쳐야 되는데, 이제 드디어 한 사이클만 남았다. 사이클이 끝날 때마다 종양 내과 전문의와 follow up을 하면서 내 컨디션을 지켜보고 계속 체크하는 중이다.

막바지여서일까.. 그동안 어떻게든 버텨오던 몸이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지치는 게 느껴진다. 누적된 항암제 때문인지,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일에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지금은 내 에너지 바가 살짝 내려간 기분이 든다. 원래 자동차 기름도 절반 아래로 떨어져 있으면 갑자기 내려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처럼.


항암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치료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다.

처음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간단하게 수술만 받으면 금방 끝날 거야!"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단순히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한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암을 이겨 내려면 아주 길고 피로한 여행이 될 테니, 처음부터 마음을 다잡고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1차 항암이 끝나도 치료가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곧바로 다른 약으로 2차 항암을 이어서 할 수도 있고, 수술 후에 다시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은 1차 항암이 끝나고 초음파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음 치료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그렇게 치료를 이어 가다 보면 곧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겠지. 수술과 항암 치료로 1년이 후딱 지나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9월 말 캘거리는 단풍이 한창 이쁜 가을이다. 운전하면서 보이는 캘거리 시내의 노랗고 빨간 단풍들이 화려하고 절정이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주말에 남편과 Bragg Creek에 Larch송을 보러 갔다. 이날 날씨도 참 좋았는데 막상 숲길에 들어서자 그늘진 곳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예전에도 걸어본 적이 있는 가벼운 트레일이었는데도 몸은 긴장 모드로 바뀌어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결국 잠깐 걷다가 단풍은 보지도 못하고 커피를 마시러 야외 카페에 와서 앉았다.

남편은 그동안 그런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진짜 내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는지 많이 피곤해 보인다고 일찍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무기력이라는 게 이런 걸까? 나조차도 어색할 만큼 몸이 축 늘어지고 의욕이 없다. 요즘은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지쳐 버린다.


요즘엔 강아지 산바카라을 하러 갈 때도 40분 정도 걷던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주 3회 지하 홈트도 잠깐 중단했다. 이러다가 체력이 축나고 근육까지 다 빠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긴다.

마음을 다 잡으려 노력하지만 신체적인 피로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무조건 새벽 5시면 눈뜨던 내가 전날 피곤함을 느낄 때는 6시가 넘어서까지 못 일어나는 경우도 생겼다.


특히, 외모의 변화도 나를 많이 지치게 한다.

얼굴에 벌겋게 퍼져있는 뾰루지와 눈밑의 염증이 먼저 눈에 띄어 외출이나 사람 만나는 일이 점점 더 꺼려진다. 피부에 화사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붉고 거뭇거뭇한 느낌이다. 게다가 종일 가발을 써야 하는 날에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귀 뒤쪽이 눌려져 계속 아파온다.

슬롯적 피로감도 무시 못한다. 짧은 가발을 쓰고 나가면 내 머리 변화를 눈치챌 사람들에게 머리를 잘랐다고 해야 하나, 암 투병 중이라 해야 하나 혼자 머리를 굴린다. 상대방은 내 머리에 신경조차 안 쓰고 있을 텐데..


오늘은 몸이 으슬으슬 춥고, 자꾸 저 밑으로 푹 꺼져서 눕고만 싶어진다.

양쪽 팔은 매주 혈액검사와 항암주사로 일주일에 두 번씩 주삿바늘에 찔리다 보니 온통 멍투성이다.

거울에 비친 요즘 내 모습은 영혼마저 탈탈 털린 느낌이다.

남편이 산에서 찍어준 사진을 보니, 햇살 때문에 너무 뿌옇게 나와서 마치 내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안갯속 저만치 멀리 있다. 웬일인지 잠시 하늘나라로 떠나 있는 느낌이다. 천국의 필터인가?

지루하리만큼 긴 치료 기간 동안 내 몸이 잘 버텨줄 수 있겠지?



그렇다고 평소에 소파와 한 몸으로 붙어 있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니다. 평소보다 에너지가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정도다.

오히려 이 와중에도 매일 하던 독서나 글쓰기, 그리고 영어공부에는 의욕이 넘친다. 하루 종일 앉아서 바카라만 읽으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에 손통증으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기타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고, 우쿨렐레도 하나 사서 연습 중이다. 암이 생겼다고 하니 예전에 그렇게 아팠던 손통증도 그것에 비하면 사소한 통증 같다.

몸은 한없이 쪼그라들고 지치고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에 속상하다가도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어쩌면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대단한 의지가 아니라, 이 소소하고도 단단한 일상들 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날에는 감사할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여전히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머리는 빠졌지만 눈썹은 안 빠져서 감사하다.

손톱 발톱이 항암제에도 죽지 않아 기타를 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가발을 쓰기에 선선한 날씨여서 감사하다.

데이지가 점점 성숙해지고 있어서 감사하다.

남편이 나에게 다정해서 감사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감사하다.


사실 감사할 일을 꼽아보라면 무수히 많다. 감사를 하나씩 떠올리고 있으면 힘든 하루도 조금은 덜 힘들게 지나갈 수 있다.

지금은 그늘진 숲길을 걷듯 서늘하고 지치지만, 언젠가는 다시 따뜻한 볕이 드는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그러나 멈추지 않고 제법 잘 걸어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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