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를 시작한다는 건 본격적으로 암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의 통로를 지나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마지막에는 다시 건강해진 내 모습이 분명히 보이지만 그 긴 터널을 지나려면, 혹시 넘어지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암을 마주한 사람치고는 꽤 담담하고 침착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혼자 눈물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주 어느 아침,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다음 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브리핑하듯 카톡으로 전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혹시라도 간에 전이가 되었다는 결과가 나오면 4기가 되는 것이니 그때는 항암 치료를 멈추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전하게 되었다. 카톡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야! 니는 왜 그리 담담한데!"
그러면서 수화기 너머 친구가 울먹이더니 이내 펑펑 우는 것이다. 친구때문에 나도 갑자기 목이 메어 아침부터 둘이 전화기를 붙잡고 꺼이꺼이 눈이 붓도록 울었다.
아침운동을 가려면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주바카라없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뒤로는 이상하게 눈물이 자주 나곤 한다.
내가 쓰게 될 항암제는 다른 부작용은 몰라도 탈모는 막을 수 없을 거라고 한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2주쯤 지나면 자고 일어났을 때 듬성듬성 혹은 한 움큼씩 빠진 머리카락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 조금 조짐이 보이면 삭발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단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가발을 미리 골라봤다. 그런데 가발을 고르는 중에도 괜스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몇 주전에 막내가 친구 가족의 초대로 BC주에 여행을 다녀왔다. 일주일 동안 레이크에서 보트를 타고, 튜빙, 절벽 다이빙, 낚시 등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고 왔다. 새까맣게 그을린 막내는 오자마자 할 말이 한 보따리라며 가방을 풀면서도 주절주절 털어놓는다. 자기 전에 동욱이에게 "엄마가 다음 주부터 chemotheraphy를 시작해."라고 말했다. 아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가 사라졌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막내가 들어와 꼭 안아주면서 굿나잇을 해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동욱이에게 메시지가 와있다.
"Mom, I am here for you. I just asked ChatGPT about everything I didn't understand everything but I don't even know. I just wanted to say that I am here for you. I am so overwhelmed and sad for you. I don't know what to expect or anything. I just hope your surgery goes well and that you will be okay."
메시지를 보자마자 침대아래 앉아서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밤새 항암치료가 무엇인지 ChatGPT에 이것저것 물어봤을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울컥 눈물이 난다.
수술만 후딱 끝내고 회복만 잘하면 될 거라 생각해서 친정엄마에겐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항암치료부터 시작하는 긴 여정이 될 것 같아서 언니에게 어떡해야 할지 상의를 했다. 언니는 한국에 있는 가족은 신경 쓰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고 치료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기도하고 있다고.. 그런데, 언니와 카톡을 주고받는 내내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도대체 이게 뭐지? 아무래도 갱년기와 암이 만나 이상한 호르몬이라도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음악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파를 다듬다가도 눈물이 날까.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집안일도 마음처럼 못 할 것 같아서 미리미리 하나씩 해두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뒷마당도 좀 더 정리를 해야 하는데...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빼곡하다. 안방 여름 침구도 갈아야해서 새 시트를 깔고, 베개커버와 컴포터도 모두 하얀색으로 골랐다. 그런데 정리를 마치고 가만히 바라보니 어쩐지 병실 같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하얗고 포근한 침구의 온기처럼, 수술 후 이 공간에서 무사히, 그리고 평화롭게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예전보다 눈물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감사도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감사일기의 내용이 점점 늘어난다.
암이 나를 울보로 만든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되어서라는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