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게인

[영화] 갈증, 신화, 욕망,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26

by서희복


쇼팽의 갈망, 신화적 슬픔의 순수, 탐욕의 주위를 서성이며 온종일 고갈되는 에너지에 바닥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심야영화 시리즈를 취소했다.


없으면 도저히 못살겠는 그것, 불안해지고 슬퍼지고 삶의 의미가 없는, 그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게 소스라치는 시간, 쇼팽의 안색은 하얗게 창백하다. 생존을 위한 삶의 추임새가 허망하다.


이라크 감독의 영화 속에 들어가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전쟁 속의 아이들을 위해 만든 영화라 했다. 너무 어른스럽게 신화 속으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아이, 일상의 습관에 관심이 없고 신이 데려다줄 엄마 아빠의 품이 그립다. 천박하게 세상에 중독된 어른들이 몸을 흔들어 체액을 흘리고 돈을 흘리고, 모르는 타인이 지나간 몸을 추스르며 마스카라가 진하게 번진다. 꿈이 물밑으로 가라앉고 현실은 폭탄의 재료가 된다.



감독의 조카인 피디가 무대에 섰다. 소요와 혼란으로 데모와 최루 가스가 가득한 현실을 증언한다. 아직은 윤리적인 잣대가 딱히 없는 이라크 영화 제작인들의 현실, 그 안의 인물들, 실제 출연한 아이가 내전에 부모를 잃었다는 말을 듣고 뇌 한쪽이 파열되는 것 같았다. 신화를 연결해 아름다운 미소로 엔딩하는 아이의 현실은 전쟁고아일 뿐이다. 손수건을 얼굴에 대고 코를 막아 소리 나지 않게 손에 힘을 주었다.


사소한 장면 연출에 대해 질문을 했다. 적을 알려면 그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는 피디의 농담이 내 질문의 답 끝에 매달려 있었다. 이라크 피디의 제천국제영화제 홍보대사 같은 끝말이 이상하게도 물 위의 기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존 기술일까. 예의로 담아둔다.


장이머우 감독은 일단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본다. 색채적인 구성이 언제나 나를 흠뻑 빠지게 한다. 장이머우 감독이 쓰는 공리 또한 이유 없이 영화 속으로 이끈다. 내가 본 가장 젊은 공리를 복원판으로 보았다. 귀한 시간이었다.


세 영화를 보고 나니 머릿속이 찐득한 송진으로 부글거리는 듯 열이 나고 두통이 왔다. 독한 중국 문화를 겪고 나니 기력이 없다. 결국 여러 개의 단편이 주를 이룰 심야영화를 취소하고 산속 깊숙이 박힌 숙소로 향했다. 심야영화를 보러 갔으면 예약한 숙소는 밤새 나를 기다렸으리라. 운명이려니 한다.




제천문화극장 근처 중앙시장에서 달걀 10개를 샀다. 편의점 두부와 통조림 김치가 알코올을 부른다. 찐하고 깊어 내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영화에 사는 날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새로 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된다.

JIMFF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