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진, 그 지속의 시선들

[목소리예술연구소] 6월 북토크, 누룩累Look

by서희복

마음을 실어다 바로 앞에 부리는 그녀, 따뜻함을 가득 머금은 채로 가슴에 스며드는 독자를 만났다. 그런 체온의 교차와 밀도 높은 찰기로 풍성하게 축제가 시작되었다.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녀가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를 여는 작가도 소설을 걷는 작가도 독자의 목소리를 가지런히 마음에 담는다. 소리가 일렁이며 아지랑이로 핀다. 우린 그 시간을 채우며 서로의 목격자가 되고 있었다.


독자는 눈으로부터 시작된 가벼운 인사와 한아름의 온기로 왔다. 수줍은 허그로 하나가 되었다가 바라보며 마주 앉았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된 가슴에 힘을 주었다. 참았던 숨이 긴장된 소리로 나올까 가늘게 조금씩 숨을 뱉었다.


흔들리는 숨결 위로 시어들이 하나씩 쌓이고 있었다. 체계적이고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분주한 삶의 증거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작가의 글에 독자가 리듬을 얹으며 노래를 만든다. 때론 다소 느리게 마음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꺼냈다가, 조금 빠르게 달리며 공감의 손뼉을 치기도 한다.


이숲오 작가의 시는 언제나 놀랍다.


구두의 닳는 정도가 약속을 지키는 정도와 비례한다는 독자의 통찰에 시각적인 높이와 허술함의 깊이에 대해 생각한다. 약속에 분주하지 않은 닳지 않은 구두 뒷굽에 야속한 눈빛을 던진다.


두운을 맞춘 시의 소리에 자음과 모음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올려지며 아름다운 균형의 건축물이 지어진다. 중정의 여유와 건물 내부를 잇는 커다란 통로가 소통의 자유를 허락한다. 그래서 오래 머무르는 시구가 있다.


숨은 지금을 겪는 이유이고

쉼은 여기를 딛는 까닭이다


서로 지속되며 이어지는 곳에서 인간 본질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소설 또한 거기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뒤통수와 등을 보며 설명할 수 없던 결핍과 갈증이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혹독한 결별을 거쳐 어떠한 자신으로 거듭나고 싶은지 깨닫게 하여 치유로 다다르도록 한다. 그때 다시 마주치게 되는 등은 전혀 다른 의미의 등이 된다.


심리적 갈등에 대한 전율과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같은 색깔이 되었다가 이내 자기만의 파스텔로 돌아온다. 중심은 자신의 정체성이고 경계는 타인들과의 교집합을 이루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마음이 꿈틀거리며 균열이 생겼다가 들어주고 보아주고 끄덕여주는 순간마다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시인의 '겨우의 안위'의 한 소절은 순환적인 삶의 가치와 깨우침을 나타낸다.


열 개의 무질서를 허락하자 겨우 하나의 질서가 마련된다.


시인은 제레미 리프킨의 두 번째 열역학 법칙의 순서를 바꾸어 응용한 것이라 소개했다. 나는 이 말을 삶에서 깨우침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마주하게 된다고 믿으며, 순환적인 질서-무질서 상태의 새로운 반복으로 본다.


넓게 확장되었다가 깊게 빠져들었다가 사고하며 깨닫는 순간들이 북토크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읽어주고 들어주고 손잡아주는 독자가 있다는 건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독자로부터 맛나고 찰진 선물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근사한 저녁을 차렸다.



기쁘고 감사한 하루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