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산업을 위한 디자인

04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by이규현

3장

산업을 위한 디자인


복제된 세계

1913년, 미시건주 하이랜드파크.

헨리 포드의 공장에서 처음으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시카고의 도축장에서 왔다. 도축장에서는 매달린 고기가 작업자들 앞을 지나가며 해체되었다. 포드의 엔지니어들은 그 과정을 뒤집었다. 해체가 아니라 조립. 부품이 작업자 앞으로 흘러오고, 각 작업자는 한 가지 작업만 반복한다.

결과는 산업의 역사를 바꿨다. 모델 T 한 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12시간에서 93분으로 줄었다. 1년 후에는 더 줄었다. 가격도 따라 내려갔다. 1908년 850달러였던 모델 T는 1925년 260달러까지 떨어졌다. 자동차는 더 이상 부유층의 사치품이 아니었다. 포드 자신도 말했다.

"내 공장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차를 만들겠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1914년 포드는 일당 5달러라는, 당시 업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임금을 선언했다. 자기 공장의 노동자를 자기 제품의 소비자로 만든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하나의 순환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 모델 T는 누적 1,500만 대가 팔렸고, 미국의 도로와 도시와 생활 방식 전체가 자동차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이 기계를 만들었다면, 포드 시스템은 그 기계를 완성했다. 대량생산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문명의 작동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전환은 디자인에게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요구했다. 모리스의 공방에서 태어난 디자인은, 이제 포드의 공장 앞에 서야 했다.


표준화라는 혁명

대량생산이 작동하려면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모든 부품이 동일해야 한다.

손으로 만든 물건은 저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장인의 세계에서 그 차이는 개성이고 매력이다. 그러나 공장 라인에서는 재앙이다. 부품 A와 부품 B가 0.1밀리미터라도 다르면, 조립이 멈춘다. 라인이 멈추면 공장 전체가 멈춘다. 호환 가능한 부품, 즉 표준화는 대량생산의 전제 조건이었다.

표준화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표준화는 디자인의 의미를 바꿨다.

아츠앤크래프츠 운동에서 디자인은 만드는 사람의 철학이었다. 장인의 손에서 나오는 개별적인 판단과 감각. 장인은 눈앞의 나무를 보고 그 나무에 맞게 형태를 조정했다. 설계와 제작이 한 사람의 몸 안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산업 생산 체계 안에서 디자인은 다른 것이 되어야 했다. 수천 개, 수만 개를 동일하게 복제할 수 있는 설계. 눈앞의 재료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수만 개의 재료를 미리 규정하는 것. 손이 아니라 도면. 감각이 아니라 규격. 허용 오차와 공차의 세계.

디자이너는 처음으로 만드는 사람과 분리되었다.

이것은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물건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물건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설계한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 도면을 그리는 사람과 도면대로 만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 역할의 분리에서 현대적 의미의 디자인 직업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분리는 이 바카라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운동의 시작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이후 100년 동안 계속해서 '만드는 행위'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도면에서 전략으로, 형태에서 프로세스로. 2장에서 본 손의 감각 — 소재가 말을 걸고 몸이 설계로 들어오는 그 감각 — 은 이 분리의 순간부터 디자인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레이먼드 로위와 산업 디자인의 탄생

1929년, 뉴욕. 젊은 프랑스 이민자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등사기 회사 게스테트너(Gestetner)로부터 의뢰를 받는다.

게스테트너의 등사기는 잘 팔리는 기계였지만, 흉물이었다. 복잡한 배관처럼 얽힌 부품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사방으로 튀어나온 구조물에 사무실 직원들의 옷자락이 걸렸다. 회사는 로위에게 이것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주어진 시간은 사흘에서 닷새.

로위는 점토 100킬로그램을 주문했다. 그리고 기계 전체를 점토로 감쌌다. 내부 구조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껍질을 만들었다. 매끈하고 단정한, 사무실에 놓여도 부끄럽지 않은 형태. 닷새 만에 새로운 외형이 완성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같은 기능의 기계가 더 잘 팔렸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것이 산업 디자인이 기업에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기능은 엔지니어가 만든다. 디자이너는 그 기능을 사람들이 원하는 형태로 포장한다. 이 사건은 디자인 역사에서 양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디자인은 비즈니스 가치를 입증했고 직업으로서의 시장을 얻었다. 다른 한편으로 디자인은 '껍질을 만드는 일'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스타일링이라는 단어가 디자인과 동의어처럼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그러나 로위를 단순한 스타일리스트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하나의 원칙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이것을 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라고 불렀다. 가장 앞서 있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낯선 것은 거부한다. 인간의 미적 수용에는 한계선이 있고, 그 한계선은 시대에 따라 움직인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 경계선을 정확히 읽는 것이다. 너무 보수적이면 지루하고, 너무 급진적이면 팔리지 않는다. 혁신과 친숙함 사이의 정확한 지점. 로위는 그 지점을 찾는 것을 직업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원칙으로 럭키 스트라이크 담뱃갑을 디자인했고, 코카콜라 냉장고를 만들었고, 그레이하운드 버스와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기관차를 디자인했고, NASA의 스카이랩 내부를 설계했고, 에어포스원의 외관을 결정했다. 1949년 그는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최초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는 판매 곡선을 유선형으로 만든다(He streamlines the sales curve)." 한 사람이 20세기 미국의 시각적 풍경을 상당 부분 만들어냈다.

산업 디자인은 이제 하나의 직업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비즈니스 도구였다.


그러나 무언가 사라졌다

효율은 올라갔다. 접근성도 올라갔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한 번 짚어야 한다. 모리스가 꿈꿨던 것,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물건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모리스가 가장 혐오했던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장인의 손이 아니라 기계의 반복이, 공방이 아니라 공장이 아름다움을 민주화했다. 로위의 매끈한 냉장고는 모리스의 벽지보다 훨씬 많은 가정에 들어갔다. 어느 쪽이 더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었는가. 이 질문에 쉬운 답은 없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무언가 빠졌다.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사라졌다. 물건은 공장에서 나왔고, 공장에는 수천 명이 있었지만,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얼굴은 없었다. 소비자는 물건을 샀지만, 그 물건이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손을 거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디자이너는 보이지 않았다. 엔지니어도 보이지 않았다. 물건은 그냥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것은 어디에서도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산업 디자인이 해결한 문제이자, 동시에 만들어낸 문제였다. 접근의 민주화와 의미의 익명화. 이 둘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미국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이 1896년에 쓴 이 문장은 산업 디자인 시대의 선언처럼 받아들여졌다. 장식을 제거하라. 목적에 충실하라. 기능이 완벽하면 형태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깔끔한 원칙이었다.

그리고 절반만 맞았다.

기능에 충실한 물건은 분명히 아름다울 수 있다. 잘 설계된 공구, 군더더기 없는 의자, 정확한 계측 기기. 기능적 명료함이 만드는 아름다움은 실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형태와 기능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도 형태에 따라 다르게 팔렸다. 게스테트너의 등사기가 그 증거였다. 기능은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는데, 껍질이 바뀌자 판매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기능만으로 물건을 고르지 않았다.

로위가 MAYA 원칙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기능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물건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 현대적이라는 느낌, 세련됐다는 느낌, 시대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느낌, 나다운 느낌. 1930년대의 유선형(streamline) 열풍이 그것을 보여준다. 토스터에는 공기역학이 필요 없다. 그런데 그 시대의 토스터는 비행기처럼 유선형으로 디자인되었다. 기능의 논리가 아니라 시대의 욕망이 형태를 결정한 것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지 않았다. 형태는 욕망을 따랐다.

이 발견은 디자인을 두 갈래 길 앞에 세웠다. 하나는 욕망을 이해하고 섬기는 길, 다른 하나는 욕망을 제조하고 착취하는 길. 두 길은 종종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가까이 붙어 있었다. 다음 장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전후 미국의 풍요는 디자인을 두 번째 길로 깊숙이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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