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팔리는 것이 좋은 것인가
1950년대 미국, 전쟁이 끝났다.
병사들이 돌아왔고, 아이들이 태어났고, 교외에 집이 지어졌다. 레빗타운(Levittown)으로 상징되는 교외 주택 단지들이 동부 해안을 따라 솟아났다. 똑같이 생긴 집 수만 채가 컨베이어 벨트의 논리로 지어졌다. 집집마다 냉장고가 들어왔고, 텔레비전이 거실을 차지했고, 자동차가 차고를 채웠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이 대규모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숫자가 그 규모를 말해준다. 1945년부터 1960년 사이 미국의 GNP는 두 배 이상 늘었다. 1950년대 말이 되면 미국 가정의 90퍼센트 가까이가 텔레비전을 보유했다. 1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물건이었다. 신용카드가 등장했고, 할부 구매가 일상이 되었다. 소비는 더 이상 필요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돌아갔다. 전쟁 기간 동안 폭격기와 탱크를 만들던 생산 능력이 고스란히 소비재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이제 물건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니었다. 만드는 능력은 차고 넘쳤다. 문제는 어떻게 파느냐였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 이미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또 팔 것인가였다.
디자인은 이 질문 앞에서 새로운 역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디자인의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챕터가 된다.
슬론 대 포드
헨리 포드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고객은 원하는 색상의 차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 색이 검정이라면."
농담처럼 들리지만 철학이었다. 포드에게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었고, 좋은 이동 수단의 조건은 명확했다. 튼튼하고, 고치기 쉽고, 싸야 한다. 검정 페인트를 고집한 이유도 단순했다. 가장 빨리 말랐기 때문이다. 건조 시간이 짧으면 생산 속도가 올라가고, 생산 속도가 올라가면 가격이 내려간다. 포드에게 소비자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들면 팔린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실제로 20년 가까이 그것으로 충분했다.
제너럴모터스의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은 다르게 생각했다.
슬론은 1920년대에 GM의 경영을 맡으면서 포드와 정면승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격으로는 모델 T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꿨다. 그의 전략은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기둥은 가격 사다리였다. "모든 지갑과 모든 목적에 맞는 차(a car for every purse and purpose)." 쉐보레에서 시작해서 폰티악, 올즈모빌, 뷰익, 캐딜락으로 올라가는 브랜드의 계단. 슬롯 초년생은 쉐보레를 사고, 승진하면 뷰익으로 옮기고, 성공하면 캐딜락에 도달한다. 자동차가 인생의 단계를 표시하는 계기판이 된 것이다. 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어디까지 왔는지를 말해주는 물건이 되었다.
두 번째 기둥은 연식 변경(annual model change)이었다. 매년 디자인을 바꾼다. 기계적으로 멀쩡한 작년 차를 시각적으로 낡은 차로 만든다. GM은 1927년 업계 최초로 디자인 전담 부서를 만들고 할리 얼(Harley Earl)에게 맡겼다. 할리우드에서 맞춤 차체를 만들던 얼은 자동차에 꿈을 입히는 법을 알았다. 더 낮게, 더 길게, 더 반짝이게. 테일핀과 크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슬론의 전략은 포드를 이겼다. 1920년대 중반 시장의 절반 이상을 쥐고 있던 포드는 1930년대가 되자 GM에 1위를 내줬고,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드는 회사가, 욕망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회사에 패배한 것이다.
이 순간부터 디자인은 판매 전략의 일부가 되었다. 물건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더 원하게 만드는 것. 기능이 아니라 욕망을 설계하는 것. 3장 끝에서 말한 두 갈래 길 중에서, 미국의 산업은 두 번째 길로 깊숙이 들어섰다.
브랜드라는 개념의 탄생
물건이 넘쳐나기 시작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품질이 비슷한 물건들이 같은 선반에 놓였다. 세제와 세제, 치약과 치약, 콜라와 콜라. 기술은 평준화되었고, 기능적 차이는 미미해졌다. 소비자는 어떻게 고르는가. 가격? 때로는. 그러나 가격이 같다면?
기업들은 답을 찾았다. 이름을 팔아라. 이미지를 팔아라. 느낌을 팔아라.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실험이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블라인드 테스트. 상표를 가리고 마시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펩시를 더 맛있다고 했다. 그러나 상표를 보여주고 마시게 하면 코카콜라가 이겼다. 그리고 실제 시장에서도 코카콜라가 이겼다. 사람들은 자신이 맛으로 고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브랜드로 골랐다. 혀가 아니라 기억이, 미각이 아니라 이미지가 선택을 결정했다. 수십 년 후 뇌과학자들이 fMRI로 이 실험을 재현했을 때, 상표를 본 순간 활성화되는 것은 미각 영역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의 영역이었다.
이것이 브랜드의 힘이었다. 물리적 제품 위에 덧씌워진 의미의 층위. 그 층위는 만질 수 없지만, 가격을 결정하고 충성도를 만들고 시장을 지배했다.
디자인은 이 힘을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로고, 색상, 타이포그래피, 패키지. 물건의 겉에 붙는 모든 것이 디자인의 영역이 되었다. 폴 랜드가 IBM의 로고를 만들고, 레이먼드 로위가 럭키 스트라이크의 패키지를 다듬던 시대. 그리고 이 겉이 때로는 안보다 중요해졌다. 디자이너의 일은 물건을 만드는 것에서 의미를 입히는 것으로 한 번 더 이동했다.
계획된 노후화
슬론의 전략에는 한 가지 숨겨진 엔진이 있었다.
매년 디자인을 바꾼다는 것은, 작년 모델을 낡아 보이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차는 멀쩡하다. 엔진도 돌고, 바퀴도 구른다. 그러나 거리에 새 모델이 깔리는 순간, 작년 차의 주인은 미묘한 결핍을 느낀다. 물건이 망가지기 전에 새것을 사고 싶게 만드는 것. 이것을 계획된 노후화(Planned Obsolescence)라고 한다.
노후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능적 노후화다. 제품이 물리적으로 빨리 망가지도록 설계하는 것. 1920년대의 전구 카르텔 '피버스'는 전구 수명을 1,000시간으로 제한하기로 담합한 것으로 악명 높다. 다른 하나는 심리적 노후화다. 제품은 멀쩡한데 욕망이 낡게 만드는 것. 슬론과 할리 얼이 완성한 것은 후자였다. 그리고 후자가 훨씬 강력했다. 기능적 노후화는 소비자가 알아채면 분노하지만, 심리적 노후화는 소비자가 스스로 원해서 지갑을 연다.
산업 디자이너 브룩스 스티븐스(Brooks Stevens)는 1954년 이것을 노골적으로 정의했다. "소비자가 조금 더 새롭고, 조금 더 나아 보이고, 조금 더 빠른 물건을, 필요한 시점보다 조금 더 일찍 원하도록 만드는 것." 그는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강한 경제의 엔진이라고 옹호했다.
디자인이 욕망을 설계하는 것을 넘어, 불만족을 설계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는 성공했다. 소비는 계속 늘었고, 공장은 멈추지 않았고, 경제는 성장했다. 그러나 이 모델에는 균열이 내재되어 있었다. 소비자는 끊임없이 새것을 사야 했고, 지구는 끊임없이 버려진 것들을 받아야 했다. 1950년대에는 아무도 그 청구서를 생각하지 않았다. 수십 년 후, 이 균열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위기로 돌아왔다.
디자인은 공범인가
2001년, 애플은 아이팟을 출시했다.
얇고 아름다웠다. 1,000곡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었다. 클릭 휠의 촉감은 혁명적이었고, 흰색 이어폰은 거리의 패션이 되었다. 디자인의 승리로 불렸다. 그런데 아이팟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었다.
18개월 후 배터리가 수명을 다하면, 수리 비용은 거의 새 제품 가격에 육박했다.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새 아이팟을 샀다. 2003년 한 사용자가 이 문제로 애플에 항의했다가 "새 아이팟을 사라"는 답을 들은 일화는 'iPod's Dirty Secret'이라는 영상으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었다. 애플은 이것을 설계 단계에서 결정했다. 얇은 디자인을 위해서라는 설명이었다. 그 설명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품의 수명을 디자인이 결정한 것이었다. 슬론의 연식 변경이 욕망으로 작동했다면, 일체형 배터리는 구조로 작동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전형적인 사례다.
패스트패션 산업에서 디자인은 매 시즌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자라는 디자인에서 매장까지 2주의 사이클을 자랑하고, 더 빠른 울트라 패스트패션 업체들은 매일 수천 개의 신상품을 올린다. 지난 시즌의 옷을 낡아 보이게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 된다. 전 세계에서 매년 버려지는 의류는 9,200만 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는 팔리지 못한 옷들의 산이 위성사진에 찍힐 만큼 쌓여 있다. 그 사이클을 만들어낸 것은 공장이 아니라 디자인이었다. 공장은 디자인이 그린 것을 찍어냈을 뿐이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매년 새 모델을 출시하면서 이전 모델의 소프트웨어 지원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 하드웨어는 멀쩡하지만 기기는 느려지고, 앱은 실행되지 않는다. 소비자는 교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설계된 선택이다. 이 사이클의 출발점에도 디자인 결정이 있다.
비즈니스를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에게 강력한 도구를 주었다. 시장이라는 무대, 자본이라는 연료, 욕망이라는 언어. 그 도구로 디자인은 세상에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도구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지금 우리는 그 결과 앞에 서 있다. 디자인의 바카라임이라는 주제는 이 바카라의 후반부에서 다시, 더 정면으로 다룰 것이다.
그 전에, 같은 시대의 유럽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디자인을 욕망의 도구가 아니라 사유의 학문으로 만들려 했던 사람들.
다음 장은 바우하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