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다시 질문한다

26 에필로그

by이규현

에필로그

디자인은 다시 질문한다


바카라을 닫기 전에

나는 이 바카라을 쓰면서 여러 번 멈췄다.

확신이 흔들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쓰면 쓸수록 내가 디자이너로서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지가 보였다. 왜를 묻지 않고 만들었던 것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의심하지 않고 실행했던 것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아름다움인지 묻지 않았던 것들. 시즌마다 욕망을 설계하면서 그 욕망이 1년 후 어디에 버려지는지 보지 않았던 것들.

4장을 쓸 때 가장 오래 멈췄다. 계획된 노후화의 역사를 쓰다가, 그 역사의 한국어판 각주에 내 이력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5장을 쓸 때도 멈췄다. 모호함의 수혜자가 모호함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이 바카라은 디자인을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했다. 그것을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것이 이 바카라이 정직하다는 증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질문이 남는다

바카라을 마치면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말하고 싶었다. 저자의 욕심이란 그런 것이다.

디자인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고(21장), 사라질 것과 남을 것을 구분했다(23~24장), 교육의 방향을 제안했다(16~17장).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것들은 답이 아니라 방향이다. 완성된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이다.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종적인 합의는 바카라 한 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사의 정의가 수백 년 걸렸듯, 이것은 한 세대의 작업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거대한 회의가 아니라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만드는 것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것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이 질문들을 멈추지 않는 디자이너가 있는 한, 디자인은 끝나지 않는다.


디자이너에게

이 바카라을 읽는 디자이너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불안이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AI 때문에, 식어버린 시장 때문에, 정의가 흐려진 업계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당신의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 불안은 당신이 시대가 전환되는 자리에 서 있다는 신호다. 프롤로그에서 약속한 대로, 이 바카라이 그 불안에 이름을 붙여주었기를 바란다. 이름은 '정의의 부재'다. 그리고 이름 붙은 불안은 다룰 수 있는 불안이다.

전환점은 언제나 불편하다. 아츠앤크래프츠의 장인들이 기계 앞에서 느꼈던 것. 식자공들이 매킨토시 앞에서 느꼈던 것. 손으로 렌더링하던 사람들이 3D 소프트웨어 앞에서 느꼈던 것. 그들도 정확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디자인은 살아남았다. 매번.

살아남은 이유는 기술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기술과 속도로 경쟁한 부분은 매번 졌다. 살아남은 것은 사람을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고, 더 나은 것을 상상하는 능력을 지킨 부분이었다. 그 능력은 지금 당신 안에 있다. 24장의 다섯 가지가 당신의 체크리스트이고, 새로운 창조자는 멀리 있는 이상형이 아니라 그 체크리스트를 매일 한 칸씩 채우는 당신의 다음 모습이다.


학생들에게

이 바카라을 읽는 디자인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매 학기 강의실에서 만나는 당신들에게.

당신들이 졸업할 때의 세계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지금 배우는 툴이 그때는 구식이 되어 있을 수 있다. 23장에서 봤듯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거의 확실한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숨기는 교육이 부정직하다고 생각해서, 강의실에서도 바카라에서도 그대로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움의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17장의 시간표를 기억해라. 툴은 1년, 원리는 3년, 맥락은 10년, 질문은 평생. 낡는 것은 1년짜리 층뿐이다. 당신이 투자해야 할 곳은 그 위의 층들이고, 그 층들은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비싸진다.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 왜라고 묻는 습관. 이것들에 일찍 투자한 사람이 이 전환기의 승자가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디자인의 역사를 공부해라. 이 바카라의 절반이 역사인 이유가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것 — 기술 공포, 정체성 혼란, 경계 분쟁 — 이 이미 어떤 형태로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디자인은 방향을 찾았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가장 긴 망원경이다.


디자인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실 이 바카라을 디자이너만 읽기를 바라고 쓰지 않았다.

당신의 삶 안에 디자인이 있다. 아침에 알람을 끄는 화면부터 잠들기 전 마지막 스크롤까지. 사용하는 앱, 입는 옷, 마시는 커피잔, 앉는 의자, 걷는 거리, 기다리는 줄.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생각과 판단으로 만들어졌다. 그 판단이 당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당신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 7장과 11장을 읽은 당신은 이제 그 차이를 본다.

그러니 좋은 디자인에 반응해주기를 바란다. 오래 쓸 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을 골라주기를. 그리고 나쁜 디자인에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란다. 해지 버튼을 숨긴 서비스에, 당신의 주의를 채굴하는 피드에, 1년 만에 낡아지도록 설계된 물건에. 디자인은 디자이너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경험하고, 선택하고, 거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선택이 다음 디자인의 브리프가 된다.


10년 후 — 이 바카라의 주장이 맞다면

바카라을 닫기 전에, 이 바카라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싶다. 예언이 아니라 설계도로서. 방향이 있는 정의라면, 방향이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십 년 후의 디자인 교육은 세 개의 문을 갖고 있다. 형태의 문, 경험의 문, 전략의 문. 열여덟 살의 학생은 '디자인과'라는 하나의 모호한 문 대신, 자신이 어떤 종류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따라 문을 고른다. 각 문 안의 커리큘럼은 다르다. 그러나 세 문 모두에서 같은 첫 학기 수업이 열린다. 인간에 대한 이해, 디자인의 역사, 그리고 윤리. 뿌리의 과목들이다. 부트캠프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정직해졌다. '3개월 만에 디자이너'가 아니라 '3개월 만에 툴 운용자'를 약속한다. 그 위의 층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십 년 후의 채용 공고에는 '디자이너 모집'이라는 문장이 드물다. 기업은 자신이 어떤 층위의 사람을 원하는지 명시한다. 지원자는 자신이 어느 층위에 서 있는지 안다. 15장에서 말한 어긋난 기대의 비용이 그만큼 줄어든다. 연봉 테이블도 층위의 언어로 재편된다. AI 운용 능력은 더 이상 우대 사항이 아니다. 운전면허 같은 전제다. 차등을 만드는 것은 판단의 이력이다. 무엇을 만들지 않기로 했는가까지 포함해서.

십 년 후의 디자이너는 자기 일의 결과에 서명한다. 건축가가 도면에 서명하듯. 그 서명은 법적 자격이 아니라 직업적 관행으로 시작된다. 이 서비스의 경험 설계 바카라임자는 누구인가. 이 제품의 수명 결정에 누가 관여했는가. 그것이 기록되고, 그 기록이 평판이 된다. 다크 패턴을 설계한 이력은 경력에 남는다. 오래 쓰이는 물건을 만든 이력도 경력에 남는다. 바카라임의 주소지가 생긴다.

그리고 십 년 후, 한국의 디자인 담론이 수입에서 수출로 방향을 바꿔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백 년 동안 바우하우스를 배우고 노먼을 번역하고 실리콘밸리를 뒤따랐다. 그러나 정의의 부재는 전 세계 디자인이 공유하는 문제다. AI 이후의 재정의는 아직 어느 나라도 완성하지 못한 과제다. 제조와 IT와 문화 수출을 한 세대 안에 통과한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이 재정의 작업에서 발언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 이 바카라이 한국어로 먼저 쓰인 것이 우연이 아니게 되기를 바란다.

이 그림들이 낙관적으로 들린다면, 맞다. 낙관이다. 그러나 근거 없는 낙관은 아니다. 이 바카라의 전반부가 보여줬듯, 디자인은 모든 전환기마다 방향을 찾아냈다. 후반부가 보여줬듯, 이번 전환의 방향은 이미 윤곽이 보인다. 남은 것은 합의와 실행이다. 그것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의지의 영역이다.


이 바카라이 다루지 못한 것들 — 다음 논의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이 바카라의 한계를 저자가 먼저 말해두어야 공정하다. 이 바카라은 결론이 아니라 발제문이다. 발제문의 바카라무는 자신의 빈 곳을 표시해서, 다음 사람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첫째, 이 바카라의 역사 서술은 서구 중심이다. 모리스에서 바우하우스, 울름, 실리콘밸리로 이어지는 계보는 디자인사의 표준 서사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의 조선 목가구와 분청의 전통. 일본의 민예 운동. 서구 바깥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만드는 문화들. 이것들은 이 바카라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번역어라는 사실이 한국의 디자인 담론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자체로 한 권의 바카라이 필요한 주제다.

둘째, 세 층위의 구분은 가설이지 검증된 체계가 아니다. 형태와 경험과 전략의 경계에는 수많은 회색 지대가 있다. 게임 디자인은 어디에 속하는가. 패션은. 타이포그래피는 형태인가 경험인가. 나는 이 구분이 완벽해서 제안한 것이 아니다. 논쟁의 출발점으로 유용해서 제안했다. 경계 사례들을 가지고 이 구분을 공격하고 수정하는 작업은, 학계와 현장의 몫으로 남긴다.

셋째, 이 바카라의 사례 일부는 익명화되거나 재구성되었다. 8장의 은행, 19장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24장의 식품 브랜드가 그렇다. 논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형으로서의 가치는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증의 무게는 실명 사례보다 가볍다. 한국 기업과 조직의 실명 사례 연구, 특히 디자인 조직의 성패에 대한 추적 연구가 축적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바카라의 주장들이 검증되거나 반박될 수 있다.

넷째, AI에 대한 이 바카라의 판단은 2020년대 중반의 기술 수준에 묶여 있다. 나는 AI가 맥락과 바카라임과 상상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썼다. 그러나 그것은 관찰이지 증명이 아니다. 기술이 그 경계를 밀어붙인다면 이 바카라의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이 바카라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이 바카라이 한 방식, 즉 정의에서 출발해 사라질 것과 남을 것을 가르는 방식을 다시 수행하는 일이다.

다섯째, 이 바카라은 진단과 방향에 집중했고 실행의 각론은 얇다. 세 층위를 반영한 커리큘럼의 실제 설계. 디자인 바카라임의 제도화 방안. 층위별 역량 평가의 기준. 이것들은 각각 별도의 연구와 실험을 요구한다. 나는 그 작업들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이 바카라의 진짜 마지막 문장은 초대장이다. 반박해달라. 이 바카라의 정의가 틀렸다면 더 나은 정의로. 이 바카라의 층위가 엉성하다면 더 정교한 구조로. 이 바카라의 낙관이 순진하다면 더 단단한 근거로. 디자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다. 정의를 두고 벌어지는 진지한 논쟁 그 자체다. 그 논쟁이 시작되는 순간, 이 바카라은 목적을 다한다.


마지막으로

프롤로그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나는 디자이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이 바카라을 마치는 지금, 그 문장을 다시 쓴다.

나는 디자이너다. 이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

확신이 아니라 질문으로. 답이 아니라 방향으로. 완성이 아니라 시작으로.


디자인은 항상 그렇게 살아남았다.


2026.10.16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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