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5부.새로운 창조자의 탄생
마지막 부는 이 바카라에서 가장 짧다. 그러나 모든 장이 이곳을 향해 쓰였다.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 다음에는 남는 것들의 목록이 와야 한다. 맥락을 읽는 능력,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능력, 관계를 설계하는 능력, 그리고 윤리적으로 결정하는 능력. 이 다섯 가지를 가진 사람을 나는 새로운 창조자라고 부르려 한다. 실행의 양으로 정의되던 시대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판단의 질로 정의되는 다음 시대의 만드는 사람.
새로운 창조자는 다른 종이 아니다. 석기시대의 도끼를 만들던 손, 모리스의 공방, 바우하우스의 작업장에 이미 있었던 존재다. 다만 그 위에 쌓였던 반복의 노동이 걷히면서, 이제 그 원형이 다시 드러나는 것뿐이다. 5부는 그 탄생 — 정확히는 귀환 — 의 기록이다.
마지막 질문
이 바카라의 마지막 챕터다.
긴 길을 걸어왔다. 디자인이 어디서 왔는지를 봤고(2~10장), 어떻게 성공했고 그 성공이 무엇을 망가뜨렸는지를 봤고(11~12장), 경계를 긋고(13장), AI라는 거울을 직시했고(14장), 위기의 진짜 이름이 정의의 부재라는 것을 확인했고(15장), 교육과 역할과 구조의 처방을 세웠고(16~21장), 그 처방을 실행의 설계도로 옮겼다(22장). 그리고 바로 앞 장에서, 사라질 것들의 목록을 정직하게 적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무엇이 남는가.
나는 다섯 가지라고 답한다. 이 다섯 가지는 희망 사항이 아니다. 이 바카라 전체의 논리에서 도출된 것들이다. AI가 패턴의 재현이라면, 남는 것은 패턴 바깥의 능력들이다. 하나씩 보자.
남는 것 첫 번째 — 맥락을 읽는 능력
2022년, 한 글로벌 식품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제품은 좋았다. 글로벌에서 검증된 맛이었다. 패키지 디자인도 세련됐다. 본사의 디자인 시스템을 충실히 따른, 흠잡을 데 없는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반응이 냉랭했다. 매대에서 들리지 않는 제품이 되었다.
원인 분석에서 나온 것 중 하나가 색이었다. 패키지의 주조색 조합이 한국 문화의 맥락에서 식품에 어울리지 않는, 차갑고 인공적인 연상을 일으켰던 것이다. 본사 기준으로는 모던했고, 한국의 매대 위에서는 식욕을 지웠다. 글로벌 디자인 팀은 유능했다. 다만 그 색이 이 시장의 일상 속에서 무엇과 나란히 놓이고 무엇을 환기하는지를 몰랐을 뿐이다.
AI는 이것을 알 수 있었는가. 충분한 한국 데이터를 학습했다면 통계적 경향은 잡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맥락은 데이터의 평균이 아니다. 맥락은 이 동네 마트의 조명 아래에서, 옆자리 경쟁 제품들 사이에서, 이 세대의 기억과 농담과 유행 속에서 그 색이 무엇이 되는가의 문제다. 데이터는 행동의 기록이고, 맥락은 삶의 결이다. 맥락을 읽는 능력은 학습 데이터에서 나오지 않는다. 삶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능력은 남는다. 그리고 17장에서 말했듯, 10년이 걸리는 능력이다.
남는 것 두 번째 —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
1979년, 소니의 명예회장 이부카 마사루는 이상한 요청을 했다.
비행기에서 음악을 듣고 싶다. 작고, 가볍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달라. 당시의 상식으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는 녹음 기능과 스피커가 있어야 했다. 그것들을 빼고 재생만 남긴, 게다가 혼자 듣는 기계라니. 사내에서도 회의적이었다. 시장 조사는 부정적이었다. 누가 길에서 헤드폰을 쓰고 다니겠는가.
워크맨은 출시 2개월 만에 초도 물량 3만 대를 다 팔았고, 인류가 음악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꿨다. 6장에서 본 그 워크맨이다. 그리고 그 후의 역사도 같은 문법을 반복했다.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 사람들은 주머니 속 1,000곡을 요구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 전에 사람들은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자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시장 조사는 존재하는 욕망을 측정한다. 위대한 디자인은 아직 언어가 없는 욕망에 형태를 준다.
AI는 존재하는 것들을 학습한다. 학습 분포의 안에서는 무한히 유창하지만, 분포의 바깥 — 아직 세상에 없어서 데이터가 없는 것 — 은 구조적으로 AI의 사각지대다. AI가 과거를 종합하는 동안, 디자이너는 미래를 상상한다. 13장에서 새로 쓴 정의의 첫 동사 — 상상하다 — 가 여기서 빛난다.
남는 것 세 번째 —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능력
아름다움은 측정되지 않는다.
클릭률로 측정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주의를 끄는 능력이고, 11장에서 봤듯 그 둘은 갈수록 반대 방향으로 진화한다. 아름다운 것 앞에서 사람은 멈춘다. 숨을 고른다. 오래 본다. 이것은 최적화의 결과가 아니라 판단의 결과다.
AI는 아름다움을 생성할 수 있다. 학습한 미의 패턴을 유창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AI는 무엇이 이 맥락에서, 이 사람에게, 이 목적에, 이 시대에 아름다운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100장의 그럴듯한 이미지 앞에서 '이것'이라고 짚는 손가락. 18장에서 본 큐레이터의 일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안목에서 온다.
안목은 신비가 아니다. 훈련이다.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나쁜 것과 구별해보고, 왜 좋은지를 말로 설명해보는 연습. 거장의 작업을 뜯어보고, 자기 작업을 버려보고, 시간이 걸러낸 것들 — 100년을 살아남은 람스의 제품들, 500년을 살아남은 타이포그래피 — 에서 시간이 왜 그것들을 살려뒀는지 묻는 일. 이 훈련에는 지름길이 없고, 그래서 이 능력은 희소하게 남는다.
남는 것 네 번째 — 관계를 설계하는 능력
디자인의 가장 깊은 층위에 있는 것이 있다. 관계다.
브랜드와 사람 사이의 관계. 제품과 일상 사이의 관계. 이 관계는 기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펙으로도, 한 번의 멋진 캠페인으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관계는 신뢰에서 오고, 신뢰는 일관성에서 오고, 일관성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 — 그 브랜드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 에서 온다.
나는 이것을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안다. 브랜드를 만들고 키우고 결국 떠나보내는 과정 전체에서, 가장 오래 고민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첫 구매가 아니라 열 번째 구매의 이유는 무엇인가. 10년 후에도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가. 매출은 분기로 측정되지만 관계는 연 단위로만 자란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배신 — 품질의 배신, 가치의 배신 — 으로 무너진다.
이 질문들에 알고리즘은 답하지 못한다. 관계는 데이터 포인트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혹은 인간이 만든 것에게) 느끼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6장의 노먼이 말한 반성적 층위, 그 가장 깊은 곳의 일이다. AI는 관계의 접점들을 운영할 수는 있어도, 관계가 무엇 위에 서야 하는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남는 것 다섯 번째 — 윤리적 판단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가장 무거운 것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가.
AI는 이 판단을 하지 못한다. 구조적으로 못 한다. AI는 요청받은 것을 만든다. 중독적인 앱을 더 중독적으로 만들어 달라면 만든다. 더 교묘한 다크 패턴을 요청하면 설계한다. 가드레일을 붙일 수는 있지만, 가드레일을 어디에 세울지 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판단의 외주는 불가능하다.
이 판단은 디자이너의 것이다. 4장과 7장에서 본 디자인의 어두운 역사가 가르쳐준 그대로, 클라이언트가 원한다는 것은 면죄부가 아니다. 디자이너는 만드는 사람이기 전에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23장의 논리를 따라가면 결론은 명확하다. AI가 실행을 더 많이 담당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일의 중심은 판단이 된다. 무엇을 AI에게 시킬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시키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 디자이너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직무 기술서다.
이 다섯 능력이 교양처럼 들린다면, 그중 하나 — 관계 설계 — 가 한 기업의 생사를 가른 실화를 보자. 레고다.
2003년의 레고는 파산 직전이었다. 비디오게임에 밀린다는 공포 속에 테마파크, 의류, TV 시리즈로 문어발을 뻗다가 브릭이라는 본질을 잃었고, 막대한 손실을 냈다. 회생의 지휘를 맡은 요안 비 크누스토르프가 한 일의 핵심은 신제품이 아니었다. 관계의 재설계였다.
레고는 성인 팬 커뮤니티(AFOL)를 발견했다. 회사가 외면하는 동안에도 자발적으로 창작하고 전시하던 사람들. 레고는 이들을 고객이 아니라 파트너로 다시 정의했다. 팬이 설계한 작품을 투표로 제품화하는 레고 아이디어스 플랫폼이 만들어졌고, 열성 팬을 사내 인증 작가로 위촉했으며, 팬 행사에 회사가 찾아갔다. 브릭의 규격 — 1958년 이후 변하지 않아 아버지의 브릭과 아들의 브릭이 결합되는 그 일관성 — 은 관계의 물리적 토대였다. 레고는 2010년대에 세계 최대 완구 기업의 자리에 올랐다.
이 회생을 어떤 알고리즘도 설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데이터는 성인 팬을 틈새 시장으로 분류했을 것이고, 최적화는 규격 변경으로 원가를 깎으라 했을 것이다. 팬을 파트너로 정의하는 것. 60년의 호환성을 신뢰의 언어로 읽는 것. 그것은 관계에 대한 인간의 판단이었다. 남는 다섯 능력이 교양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을, 레고의 회생이 증언한다.
디자인 종말 이후의 디자인
이 바카라의 제목으로 돌아왔다. 디자인의 종말이란 무엇인가.
지금 끝나가고 있는 디자인이 있다. 반복적인 것, 패턴화된 것, 데이터로 최적화되는 것. 23장의 그 목록이다. 그리고 더 크게는, 정의 없이 무한히 팽창하며 모든 것을 자처하던 한 시대의 디자인이 끝나가고 있다. 그것이 종말의 정체다.
그러나 이것은 디자인의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디자인이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실행의 부담에서 해방되어 판단의 자리로.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 상상의 자리로. 석기시대의 도끼를 만들던 그 손 — 소재와 대화하고, 쓸 사람의 몸을 생각하고, 목적이 형태를 결정하게 하던 그 원형의 자리로.
맥락을 읽고,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고,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관계를 설계하고, 윤리적으로 결정하는 것. 이 다섯 가지가 디자인이 항상 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할 것이고,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눈치챘겠지만, 이 다섯 가지는 20장의 세 뿌리 — 인간 이해, 목적, 바카라임 — 가 피워내는 가지들이다. 뿌리가 깊으면 이 가지들은 자란다.
나는 이 다섯 가지 능력으로 일하는 사람을 새로운 창조자라고 부르고 싶다. 실행의 속도가 아니라 판단의 깊이로, 결과물의 양이 아니라 방향의 질로 정의되는 사람. 직함이 디자이너든 아니든, 이 능력으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사람. 디자인 종말 이후의 디자인은 그들의 손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디자인은 끝나지 않는다.
디자인은 다시 시작된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