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AI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15 2부. 무엇이 디자인을 죽였는가

by이규현

14장

AI는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모두가 AI를 탓했다

2023년 초, 미드저니(Midjourney) V5가 공개됐다.

이전 버전들은 어딘가 어색했다. 손가락이 여섯 개였고, 눈빛이 비어 있었고, 글자는 외계어였다. 디자이너들은 그 어색함을 보며 안도했다. 아직 멀었다고. V5는 그 안도를 부쉈다. 사진과 구별하기 어려운 인물 이미지, 정교한 제품 렌더링, 조명과 질감까지 통제된 브랜드 비주얼. 디자이너들이 며칠을 들여 만들던 것들이 30초 만에 나왔다. 그것도 한 번에 네 장씩.

공포가 퍼졌다. 디자이너 포럼에는 같은 질문들이 반복됐다. "우리 직업이 없어지는 건가요." "포트폴리오를 계속 만들어야 할까요." "지금 디자인과에 다니는데, 자퇴해야 하나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분노는 더 직접적이었다. AI가 자신들의 그림을 학습 데이터로 삼켰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도구가 아니라 도둑이라는 분노.

그 시기 내 강의실의 공기도 달라져 있었다. 학생들의 질문에서 미래형이 사라졌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까요?"가 아니라 "이미 대체된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 시기에 학생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AI는 위기의 원인이 아닙니다. AI는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위기를 드러낸 것입니다."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진단이었다. 이 장은 그 진단의 근거다.


빙산의 수면 위로

빙산은 충돌하기 전까지 보이지 않는다.

이 바카라의 전반부에서 본 것처럼, 디자인의 위기는 AI 이전에 이미 진행 중이었다. 개념의 과잉(12장), 정체성의 혼란(1장), 경계의 소멸(8장), 성공의 역설(11장). 이것들은 미드저니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쌓이고 있었다. 다만 시장이 성장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일감이 있고 연봉이 오르는 한, 정의의 부재는 철학자들의 한가한 걱정처럼 보였다. AI는 이 성장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니다. AI는 성장이 가리고 있던 것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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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이자 창업가. 브랜드를 만들고 가르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창조성과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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