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디자인 경영

11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by이규현

10장

디자인 경영


디자이너가 임원실에 들어간 날

2012년, 펩시코는 이상한 채용을 했다.

CEO 인드라 누이(Indra Nooyi)는 외부에서 한 사람을 데려왔다. 직함은 최고디자인바카라임자(Chief Design Officer). 마우로 포르치니(Mauro Porcini), 당시 3M에서 글로벌 디자인을 이끌던 이탈리아인이었다. 펩시코 117년 역사상 처음 만들어진 자리였다.

마케팅 담당자도 아니고, 브랜드 담당자도 아니고, 디자이너를 C레벨에 앉힌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파격이었다. 식음료 회사에서 디자인이란 패키지 그래픽 정도를 의미하던 시절이었다. 내부에서 회의적인 시선이 나왔다. 디자이너가 전략을 알겠냐고. 손익계산서를 읽을 수 있겠냐고.

누이의 논리는 단호했다. 그녀는 매주 시장을 직접 돌며 매대 사진을 찍어 임원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사진들 속에서 그녀가 본 것은, 소비자가 펩시코의 제품을 만나는 모든 순간이 디자인의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병의 형태, 매대의 배치, 자판기의 인터페이스, 광고의 한 컷까지. 그녀는 훗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인터뷰에서 말했다. 좋은 디자인은 단지 포장이 아니라, 소비자가 브랜드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경험 전체라고. 그 결정이 임원실 밖에서, 외주 발주서 위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포르치니는 부임 후 펩시코 안에 디자인 센터들을 세웠고, 스파이어(Spire)라는 터치스크린 음료 디스펜서부터 게토레이의 스포츠 과학 연구까지 디자인의 영역을 넓혔다. 디자인은 패키지 부서에서 전략 부서가 되었다.

이것이 디자인 경영(Design Management)이 본격화된 장면 중 하나다. 9장에서 본 디자인 씽킹이 디자인의 방법을 조직에 퍼뜨리는 흐름이었다면, 디자인 경영은 디자이너라는 사람을 권력의 중심에 앉히는 흐름이었다. 두 흐름은 같은 시대에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디자인이 주가를 움직인다

2018년, 맥킨지는 'The Business Value of Design'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5년에 걸쳐 300개 상장 기업을 추적한 연구였다. 200만 건의 재무 데이터와 10만 건의 디자인 활동 기록을 분석해, 기업의 디자인 역량을 점수화한 맥킨지 디자인 인덱스(MDI)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점수와 재무 성과를 교차시켰다.

결과는 명확했다. MDI 상위 4분의 1에 속한 기업들은 동종 업계 대비 매출 성장률이 32퍼센트포인트 높았다. 주주총수익률은 56퍼센트포인트 높았다. 산업을 가리지 않았다. 의료기기든 소비재든 은행이든, 디자인을 잘하는 회사가 더 벌었다.

이 보고서가 중요한 이유는 내용보다 발신자였다. 디자인 단체나 디자인 학교가 아니라 맥킨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숫자를 신봉하는 조직이 디자인의 재무 가치를 인증한 것이다. CFO의 언어로 쓰인 디자인 옹호론. 이제 디자인 투자를 망설이는 경영진에게 내밀 수 있는 한 장의 차트가 생겼다. 디자인은 더 이상 비용이 아니었다. 투자였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잠깐 멈춰서 봐야 한다. 디자인 커뮤니티는 이 보고서에 환호했다. 드디어 우리의 가치가 증명되었다고. 그러나 그 환호 안에는 씁쓸한 진실이 있었다. 디자인은 자신의 가치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해서, 경영학의 언어를 빌려야 했다. 의사는 자신의 가치를 주주수익률로 증명하지 않는다. 이 비대칭은 15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애플이 증명하고, 모두가 따라했다

사실 이 논리를 가장 먼저, 가장 극적으로 증명한 것은 애플이었다.

1997년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을 때 애플은 90일 안에 파산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잡스가 한 일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수십 개로 난립한 제품 라인을 4개로 줄였다. 그리고 사내에서 사표를 고민하던 한 영국인 디자이너에게 전권을 주었다. 조너선 아이브. 디자인이 마케팅의 하위 기능이 아니라 회사의 전략 그 자체가 되었다. 잡스의 유명한 조직 설계가 이것을 보장했다. 아이브의 디자인 팀은 어떤 사업부에도 속하지 않았고, 어떤 손익 바카라임자도 디자인 결정을 뒤집을 수 없었다.

1998년 아이맥.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각각의 제품은 단순히 잘 만든 물건이 아니었다. 시장 전체의 기준을 바꿨다. 아이폰이 나온 후 모든 스마트폰이 아이폰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물리 키보드가 사라졌고, 화면이 전부가 되었다. 디자인이 한 산업의 방향을 결정한 것이다. 2011년 애플은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이 되었다. 디자인 중심 경영의 살아있는 증명.

모두가 따라 움직였다. 한국에서는 삼성이 가장 빨랐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한 바 있었다. 앞으로는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는 취지였다. 아이폰 쇼크 이후 그 선언은 실체가 되었다. 서울 서초 사옥에 디자인 경영 센터가 들어섰고, 디자이너 수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 규모로 늘었고, 밀라노·런던·샌프란시스코·상하이·도쿄·델리에 글로벌 디자인 스튜디오가 세워졌다. 디자이너 출신이 부사장이 되고, CEO 직속 보고 라인이 생겼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또 다른 신호가 나왔다. 2010년대 들어 벤처캐피털들이 디자이너를 파트너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디자이너 창업), 핀터레스트(디자이너 창업), 인스타그램의 성공이 배경이었다. '디자이너 공동창업자'가 투자 심사의 가점 요인이 되었다. 디자인은 이제 기업의 기능이 아니라 기업의 DNA로 이야기되었다.


디자인 경영의 세 가지 층위

디자인 경영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것을 세 가지 층위로 나눈다.

첫 번째는 운영적 디자인 경영(Operational Design Management)이다. 디자인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일정, 예산, 품질, 인력. 디자인 팀장의 일이다.

두 번째는 기능적 디자인 경영(Functional Design Management)이다. 디자인이라는 기능이 마케팅, 개발, 생산과 어떻게 맞물릴지를 설계하는 것. 프로세스와 조직 구조의 문제. 디자인 디렉터의 일이다.

세 번째는 전략적 디자인 경영(Strategic Design Management)이다. 디자인을 기업의 장기 전략과 정체성에 연결하는 것. 우리 회사는 무엇을 만드는 회사이고, 고객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 층위에서 디자인은 경영 그 자체가 된다. CDO의 일이고, 잡스가 했던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이 세 번째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첫 번째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CDO라는 직함을 만들었지만 결재 라인은 마케팅 아래 두는 회사. 디자인 전략을 발표하지만 디자인 결정은 여전히 영업 목표가 뒤집는 회사. 직함의 인플레이션과 권한의 디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런데 디자이너는 행복했는가

디자인이 임원실에 들어갔다. 예산이 생겼다. 영향력이 커졌다. 디자이너의 연봉이 올랐고, 디자인 조직의 머릿수가 늘었다. 수십 년간 디자인 업계가 싸워서 얻으려던 것들이 한꺼번에 도착했다.

그런데 현장의 디자이너들은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회의가 늘었다. 보고서를 써야 했다. ROI를 증명해야 했다. 디자인의 가치를 분기마다 숫자로 만들어야 했다. 스케치를 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시간보다, 그 필요성을 설득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승진할수록 디자인에서 멀어졌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더 깊은 디자인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은 회의에 들어간다는 뜻이 되었다.

디자인 경영의 아이러니였다. 디자인이 전략이 되면서, 디자이너는 전략가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전략가가 된 디자이너는 더 이상 디자인을 하지 않았다. 3장에서 시작되어 8장에서 가속된 그 운동 — 만드는 행위로부터의 이탈 — 이 여기서 정점에 도달했다. 도면에서 화면으로, 화면에서 회의실로, 회의실에서 이슬롯로. 손은 점점 더 멀어졌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같은 고백을 했다. 디자인을 팔기 위해 디자인을 멈추게 되었다고.

애플에서조차 균열의 신호가 나왔다. 2019년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을 떠났다. 여러 보도가 전한 배경 중 하나는, 잡스 사후 애플의 무게중심이 디자인에서 운영으로 옮겨갔다는 것이었다. 디자인 경영의 상징이었던 회사에서, 디자인의 시대가 저물고 운영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신호로 읽혔다.


그리고 더 큰 역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디자인이 모든 기업의 전략이 되었다는 것은, 디자인이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두가 잘하는 것은 아무의 무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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