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스탠퍼드에서 시작된 혁명
2004년, 스탠퍼드 대학교에 새로운 학교가 하나 생겼다.
d.school이라고 불렸다. 정식 명칭은 하소 플래트너 디자인 연구소(Hasso Plattner Institute of Design).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공동창업자 하소 플래트너가 3,500만 달러를 기부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학교는 이상했다. 학위를 주지 않았다. 디자인 전공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디자이너를 가르치지 않았다.
엔지니어, 경영학도, 의대생, 법대생이 함께 앉아서 디자인의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법을 배웠다. 교실에는 바카라상 대신 바퀴 달린 화이트보드와 폼보드,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강의실이 아니라 작업장처럼 생긴 공간. 그 공간 배치 자체가 선언이었다. 여기서는 듣지 말고 만들어라.
IDEO의 창업자 데이비드 켈리(David Kelley)가 이 학교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디자인적 사고방식은 디자이너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켈리는 애플의 첫 마우스를 디자인한 IDEO를 이끌며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좋은 결과물의 비밀은 디자이너의 재능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프로세스에 있다는 것. 그렇다면 그 프로세스를 추출해서 누구에게나 이식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디자인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수출품이자, 가장 논쟁적인 추출물.
다섯 단계의 마법
디자인 씽킹은 다섯 단계로 요약된다. 공감(Empathize), 정의(Define), 아이디어 발상(Ideate), 프로토타입(Prototype), 테스트(Test).
첫 번째 단계, 공감. 기존의 경영 방식은 데이터에서 시작했다. 시장 조사, 설문, 통계. 디자인 씽킹은 사람에서 시작한다. 실제 사용자를 만나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까지 읽는다. 핵심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는 통찰이다. 설문에서 건강한 음식을 원한다고 답한 사람이 실제로는 감자튀김을 주문한다. 묻지 말고 지켜봐라. 인류학의 현장 관찰 방법이 비즈니스로 수입된 것이다.
두 번째 단계, 정의. 공감을 통해 모은 관찰을 하나의 핵심 문제로 압축한다. "어떻게 하면(How Might We)..."으로 시작하는 질문의 형태로. 이 단계가 결정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조직이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례가 엘리베이터다. 입주민들이 엘리베이터가 느리다고 불평한다. 엔지니어링의 답은 더 빠른 모터다. 비용이 막대하다. 그런데 문제를 다시 정의하면 — 사람들은 속도가 아니라 기다림의 지루함에 불평하는 것이라면 — 답은 거울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거울을 달자 불평이 사라졌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순간, 해결바카라의 차원이 달라진다.
세 번째 단계, 아이디어 발상. 판단을 미루고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낸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도 환영한다. 질보다 양. 비판 금지. 이 규칙들의 근거는 심리학이다. 평가받는다는 두려움이 있는 한 사람들은 안전한 아이디어만 낸다. 안전한 아이디어는 모두가 이미 아는 아이디어다.
네 번째 단계, 프로토타입. 아이디어를 빠르게 물리적으로 만든다.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 골판지로 만들어도 되고, 종이에 그려도 되고, 역할극으로 시연해도 된다. IDEO의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외과의사들이 새로운 수술 도구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회의에서, 한 디자이너가 회의실을 나가더니 화이트보드 마커와 필름통과 빨래집게를 테이프로 붙여서 돌아왔다. 5분짜리 그 조악한 물건을 손에 쥔 순간, 의사들의 추상적인 논의가 구체적인 논의로 바뀌었다. 그 즉석 모형이 실제 제품의 원형이 되었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배운다.
다섯 번째 단계, 테스트. 실제 사용자에게 프로토타입을 건네고 반응을 관찰한다. 설명하지 않는다. 변호하지 않는다. 그냥 써보게 하고, 어디서 막히는지, 어디서 웃는지, 어디서 포기하는지를 본다. 그리고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간다. 다섯 단계는 직선이 아니라 순환이다.
정리하면 디자인 씽킹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었다. 7장의 사용자 리서치, 8장의 현장 관찰,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늘 해오던 스케치와 목업. 이미 존재하던 실천들을 다섯 개의 상자에 담아 라벨을 붙이고 손잡이를 단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패키징이 천재적이었다. 손잡이가 달리는 순간, 누구나 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IBM이 달라진 이유
2012년, IBM은 위기였다.
하드웨어 사업은 무너지고 있었다. 클라우드 시대가 왔는데 IBM은 여전히 서버를 팔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제품들은 강력했지만 복잡했고, 사용하기 어려웠고, 가볍고 직관적인 경쟁 제품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한 세기 동안 기술로 군림한 회사가, 기술이 아니라 경험에서 지고 있었다.
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디자인 씽킹을 회사 전체에 도입한다. 그것도 워크숍 몇 번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 체계로. 2012년 당시 IBM의 디자이너는 전 세계 38만 직원 중 약 100명이었다. 회사는 이것을 1,500명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디자이너 대 엔지니어 비율을 1:8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디자인 조직 전환이었다.
IBM은 d.school의 다섯 단계를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다. 자기 규모에 맞는 자체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핵심은 세 가지였다. 힐스(Hills) — 프로젝트의 목표를 기능 목록이 아니라 사용자가 달성할 결과로 정의한다. 플레이백(Playbacks) — 정기적으로 모든 이해관계자가 모여 사용자 관점에서 진행 상황을 검토한다. 스폰서 유저(Sponsor Users) — 실제 고객을 개발 과정 안으로 데려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다.
클라우드 관리 플랫폼 재설계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기존 방식이었다면 엔지니어들이 기능 목록을 정하고 개발했을 것이다. 새 방식에서는 먼저 실제 IT 관리자들을 만났다. 그들이 하루에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서 시간을 낭비하는지, 어떤 정보가 가장 필요한지를 관찰했다. 그 관찰이 힐스가 되고, 힐스가 개발의 나침반이 되었다.
2015년 IBM은 내부 데이터를 공개했다. 디자인 씽킹이 적용된 프로젝트는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보다 출시까지의 속도가 2배 빨랐고, 사용자 만족도는 3배 높았다. 이후 외부 기관에 의뢰한 ROI 분석에서는 투자 대비 300퍼센트가 넘는 수익률이 보고되었다. 숫자가 나오자, 다른 기업들의 망설임이 사라졌다.
왜 모두가 디자인 씽킹을 원했는가
디자인 씽킹은 2010년대에 폭발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2015년 디자인 씽킹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표지 제목은 "디자인 씽킹의 진화(The Evolution of Design Thinking)"였다. 맥킨지와 딜로이트는 디자인 씽킹 컨설팅 서비스를 만들었다. 삼성, P&G, GE, 펩시코가 내부 디자인 씽킹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MBA 과정에 디자인 씽킹이 필수 과목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교실에까지 포스트잇이 깔렸다.
왜 이렇게 빠르게 퍼졌는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기존의 문제 해결 방식이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스프레드시트와 파워포인트로 만든 전략이 현실에서 실패하는 일이 반복됐다. 분석은 정교했는데 고객은 오지 않았다. 디자인 씽킹은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는 것 —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느끼는지 — 을 찾는 방법을 제공했다.
둘째, 배우기 쉬웠다. 다섯 단계는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틀짜리 워크숍으로 배울 수 있었다. 미술 실기도, 소프트웨어도 필요 없었다. 포스트잇과 마커만 있으면 됐다. 진입 장벽이 사실상 없는 방법론.
셋째, 이야기가 좋았다. 1999년 미국 ABC 나이트라인은 IDEO가 단 5일 만에 쇼핑 카트를 재설계하는 과정을 방영했다. 다양한 전공의 팀원들이 마트를 관찰하고, 브레인스토밍하고,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 영상은 경영대학원의 단골 교재가 되었다. 디자인 씽킹은 방법론이기 이전에 매력적인 내러티브였다. 창의성은 천재의 번뜩임이 아니라 따라할 수 있는 절차라는 이야기. 모두가 듣고 싶어 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무언가 잃어버렸다
디자인 씽킹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정작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위화감이었다. 이틀짜리 워크숍을 수료한 마케팅 부장이 디자인 씽킹 전문가를 자처한다. 포스트잇 붙이기가 곧 혁신 활동으로 보고된다. 워크숍은 활기찼고 사진은 그럴듯했는데,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혁신 연극(innovation theater)'이라는 신랄한 용어가 생겨났다.
2010년대 후반이 되자 비판은 공개적이 되었다. 디자인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디자인 씽킹이 너무 단순화되었다고. 수년의 훈련으로 길러지는 종합적 사고력을 다섯 단계 레시피로 압축하는 것은, 의학을 응급처치 강습으로 압축하는 것과 같다고. 디자인 씽킹의 산실이었던 IDEO조차 훗날 이 비판을 일부 수용했다.
더 근본적인 비판도 있었다. 디자인 씽킹은 디자인의 방법론을 가져왔지만,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것을 빼놓았다. 바로 만드는 능력이다. 진짜 디자이너는 공감하고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낼 뿐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 그리고 2장의 도끼 수업이 보여주듯, 만드는 행위 자체가 사고의 일부다. 손이 막히는 지점에서 머리가 배운다. 프로토타입 단계가 다섯 중 하나로 들어가 있긴 하지만, 골판지 모형과 양산 가능한 제품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디자인 씽킹은 그 심연을 건너는 능력 없이도 디자인을 했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디자인 씽킹이 범용 도구가 되면서, 그 도구를 어디에 쓰는가 하는 질문이 사라졌다. 방법론은 가치 중립적이다. 담배 회사도 디자인 씽킹으로 더 많이 팔리는 담배를 만들 수 있다. 도박 앱도 공감 인터뷰로 사용자의 심리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7장에서 본 다크 패턴들 중 상당수는 교과서적인 사용자 리서치의 산물이다. 사용자를 깊이 이해하는 능력은, 사용자를 깊이 착취하는 능력과 같은 능력이다. 디자인 씽킹은 능력을 민주화하면서 그 능력에 따라붙어야 할 윤리는 민주화하지 못했다.
디자인 씽킹은 디자인을 민주화했다. 그리고 동시에 디자인에서 디자이너를 지웠다. 누구나 디자인 씽킹을 할 수 있다면, 디자이너는 왜 필요한가. 이 질문은 부메랑이 되어 디자인 업계로 돌아왔다. 디자인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려던 시도가, 디자이너의 고유성을 증발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기업들은 이 모순을 다른 방식으로 풀고 있었다. 방법론을 배우는 대신 디자이너 자체를 권력의 중심으로 데려오는 것. 다음 장은 디자인 경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