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서비스 디자인의 등장

09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by이규현

8장

서비스 디자인의 등장


제품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

2000년대 초, 영국의 한 대형 은행에 컨설팅 팀이 들어왔다.

고객 이탈이 심각했다. 경영진은 원인을 몰랐다. 금리는 경쟁력 있었다. 신상품도 계속 나왔다. 광고도 했다.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도 나쁘지 않은 점수가 나왔다. 그런데 숫자는 계속 나빠졌다. 보고서마다 다른 원인이 지목되었고, 부서마다 다른 부서를 가리켰다.

컨설팅 팀은 보고서를 쓰는 대신 다른 일을 했다. 직접 고객이 되었다.

한 명은 신규 계좌를 열었다. 지점에 갔더니 서류 양식을 주었다. 작성해서 제출했더니 추가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서류는 다른 지점에서는 요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지점마다 기준이 달랐다. 창구 직원도 그 사실을 몰랐다. 자기 지점의 규칙이 곧 은행의 규칙인 줄 알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카드를 분실 신고했다. 콜센터에 전화했다. 연결되는 데 23분이 걸렸다. 그 23분 동안 같은 안내 멘트가 여덟 번 반복되었다. 겨우 연결됐더니 본인 확인 절차가 다섯 단계였다. 재발급 신청을 했다. 일주일 후 카드가 왔다. 그런데 주소가 틀렸다. 다시 전화했다. 또 23분을 기다렸다. 이번에 연결된 상담원은 지난번 통화 기록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온라인으로 대출 신청을 시작했다. 절반쯤 작성하다가 서류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서류를 들고 지점에 갔다. 지점 직원은 온라인 신청 내역을 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야 했다. 온라인과 지점은 같은 은행이었지만, 시스템으로는 남남이었다.

세 사람이 경험한 것은 같은 은행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각자의 규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고객은 매번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자신의 상황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은행의 어느 부서도 무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점은 지점의 규정을 지켰고, 콜센터는 콜센터의 매뉴얼을 따랐고, IT 부서는 주어진 시스템을 운영했다. 각 부분은 작동했다. 전체가 작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제품은 괜찮았다. 경험이 엉망이었다.

이것이 서비스 디자인이 기업의 언어가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7장에서 본 UX의 자연스러운 확장이기도 했다. 화면 안의 경험을 설계하던 눈이, 화면 바깥의 경험 — 전화, 지점, 우편, 사람 — 까지 보기 시작한 것이다.


서비스란 무엇인가

서비스는 오래된 개념이다. 그러나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개념은 새로웠다.

제품 디자인은 대상이 명확하다. 손에 잡히는 물건. 형태가 있고, 소재가 있고, 완성된 순간이 있다. 출고되는 순간 제품은 완성이다. 그러나 서비스는 다르다. 서비스는 시간 안에 펼쳐진다. 고객이 처음 브랜드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정보를 찾고, 선택하고, 구매하고, 사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때로는 떠나는 순간까지. 서비스는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새로 수행될 뿐이다.

이 모든 접점이 경험을 만든다. 그리고 그 경험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무너진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아무리 친절한 직원도, 콜센터에서 23분을 기다리는 경험 하나로 기억이 덮인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정점-종점 규칙(peak-end rule)이 여기서 작동한다. 인간은 경험 전체를 평균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으로 기억한다. 아흔아홉 개의 무난한 접점은 한 개의 끔찍한 접점을 이기지 못한다.

더 복잡한 것은, 서비스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 서비스 하나를 경험하는 데는 창구 직원, 콜센터 상담원, 앱 개발자, 서류 양식 담당자, 보안 시스템, 마케팅 팀이 모두 관여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부서에 있고, 서로 다른 KPI를 가지고 있고, 서로의 일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콜센터의 KPI가 통화 시간 단축이라면, 상담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빨리 끊으려 한다. 부서별로는 합리적인 최적화가 전체로는 재앙을 만든다.

고객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지만, 내부에서는 파편화되어 있다. 조직도의 선을 따라 갈라진 부서들 사이로, 고객의 경험이 추락한다. 서비스 디자인의 역할은 이 파편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조직도가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기준으로 회사를 다시 보는 것.


에어비앤비가 망하지 않은 이유

2009년, 에어비앤비는 거의 끝날 뻔했다.

플랫폼은 있었다. 호스트도 있었다.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도 받았다. 그런데 예약이 늘지 않았다. 주간 매출은 200달러 수준에서 몇 달째 제자리였다. 투자자들은 회의적이었다.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는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것을 멈추고, 이유를 찾으러 직접 뉴욕으로 날아갔다. 당시 에어비앤비 매물이 가장 많은 도시였다.

호스트들의 집을 방문했다. 문제가 바로 보였다.

사진이 너무 나빴다. 어두컴컴한 방 구석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짐이 널린 채로 찍힌 침대, 역광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문. 화면 속 목록에서 그 집들은 전부 수상하고 초라해 보였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어도 사진이 이렇게 찍히면 클릭하고 싶지 않았다.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자야 하는 서비스에서, 사진은 정보가 아니라 신뢰 그 자체였다. 호스트들은 사진 찍는 법을 몰랐고, 플랫폼은 그냥 업로드하면 된다고만 했다.

체스키와 게비아는 카메라를 빌렸다. 그리고 직접 호스트들의 집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광각 렌즈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시간에, 공간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각도에서. 데이터 분석도, 알고리즘 개선도 아니었다. 카메라를 든 두 발의 노동이었다.

그 달 뉴욕 지역 매출이 두 배가 됐다. 창업 이래 처음 보는 성장 곡선이었다.

제품, 즉 플랫폼 자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코드 한 줄 수정되지 않았다. 바뀐 것은 호스트가 숙소를 등록하는 경험의 한 접점이었다. 사진이라는,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한 지점. 서비스 전체의 신뢰가 그 약한 고리 하나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이 경험에서 원칙을 세웠다. 모든 서비스 접점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개선할 수 없다. 이후 에어비앤비는 전문 사진 서비스를 전 세계 호스트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비용이 들었지만, 예약 전환율이 극적으로 올라갔다. 숙박 공간을 한 채도 소유하지 않은 회사가 힐튼과 메리어트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것은, 이런 접점들의 축적이었다. 그들이 소유한 것은 부동산이 아니라 경험의 설계도였다.


청사진이라는 도구

서비스 디자인이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했다.

서비스 청사진(Service Blueprint)이 그 역할을 했다. 1984년 은행 임원 출신의 린 쇼스택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처음 제안한 이 도구는, 고객이 경험하는 모든 접점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고, 그 뒤에서 일어나는 내부 프로세스를 함께 시각화한다. 무대 위(Front Stage)와 무대 뒤(Back Stage)를 한 장에 동시에 보는 것. 연극의 은유가 정확하다. 관객은 무대만 보지만, 공연은 무대 뒤가 만든다.

스타벅스의 서비스 청사진을 상상해보자.

고객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줄을 선다. 주문을 한다. 이름을 말한다. 기다린다. 이름이 불린다. 음료를 받는다. 자리에 앉는다. 이것이 무대 위에서 고객이 경험하는 흐름이다. 5분 남짓한 시간.

그런데 무대 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주문이 입력되는 순간 주방 화면에 뜬다. 바리스타가 컵에 이름을 쓴다. 우유 재고가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발주 시스템에 알림이 간다. 매장의 음악은 본사의 중앙 시스템이 시간대별로 제어한다. 청소 스케줄이 돌아간다. 신입 직원의 교육 매뉴얼에는 고객과 눈을 맞추는 타이밍까지 적혀 있다. 컵에 이름을 쓰는 행위조차 설계된 것이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익명의 거래가 인격적 관계의 흉내를 낸다.

고객이 경험하는 단순한 5분 안에, 수십 개의 내부 프로세스가 맞물려 돌아간다. 이것을 한 장의 지도로 만들면,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지, 어디를 개선하면 경험이 좋아지는지가 보인다. 음료가 늦게 나오는 문제의 원인이 바리스타의 숙련도가 아니라 주문 화면의 정렬 방식에 있다는 것 같은, 무대 위만 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인과가 드러난다.

이 도구가 중요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서비스 디자인은 결국 조직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부서들은 각자의 언어를 쓴다. 말로 설명하면 각자 자기 부서의 이야기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청사진 한 장을 회의실 벽에 붙여놓으면, 모든 부서가 같은 그림 위에서 자기 위치를 본다. 마케팅의 약속과 콜센터의 현실이 같은 종이 위에서 충돌하는 것을 모두가 목격한다. 공통의 그림이 공통의 문제의식을 만든다.


서비스 디자인이 흔든 것

서비스 디자인의 등장은 디자인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물건이나 화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전체가 설계의 대상이 되었다. 디자이너의 결과물이 처음으로 완전히 비물질적인 것 — 흐름, 규칙, 관계 — 이 된 것이다.

이것은 디자이너를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서비스 청사진을 그리려면 마케팅, 운영, IT, 인사 부서와 함께 앉아야 했다. 디자이너는 실행자에서 조율자가 되었다. 손이 아니라 말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3장에서 시작된 그 운동 — 디자인이 만드는 행위로부터 멀어지는 운동 — 이 여기서 또 한 단계 진행되었다. 도면에서 화면으로, 화면에서 회의실로.

그런데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다시 생긴다.

디자이너가 회의실에서 프로세스를 조율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여전히 디자인인가.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과 경영 컨설팅의 차이는 무엇인가. 맥킨지도 고객 경험을 분석하고, 조직을 재편하고, 프로세스를 최적화한다. 실제로 이 시기부터 대형 컨설팅 펌들은 디자인 에이전시를 인수하기 시작했다. 액센츄어가 피요르드를, 맥킨지가 루나를, 딜로이트가 도블린을 사들였다. 서비스 디자이너와 경영 컨설턴트는 같은 회의실에서 같은 언어로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같은 회사의 명함을 들게 되었다.


디자인의 영역은 넓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경계가 흐려졌다. 디자이너가 컨설턴트와 구별되지 않는다면, 디자이너를 디자이너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답해지지 않은 채 보류되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 디자인의 방법 자체를 모두에게 가르쳐주겠다는 더 큰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장은 디자인 씽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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