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화면 앞에 선 디자이너
1984년 1월 22일, 슈퍼볼 중계 도중 60초짜리 광고가 방영되었다.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그 광고에서, 회색 군중이 거대한 스크린 속 빅브라더의 연설을 듣고 있다. 한 여성이 해머를 들고 달려와 스크린을 박살낸다. 그리고 자막. "1월 24일, 애플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출시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왜 1984년이 소설 1984와 다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광고는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 혁명은 광고가 아니라 화면 안에 있었다.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한다. 창이 열린다. 파일을 끌어서 휴지통에 버린다. 지금은 당연한 이 행위들이 1984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컴퓨터를 쓴다는 것은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명령어를 외워서 입력하는 일이었다. 컴퓨터는 전문가의 기계였다. 매킨토시는 바카라상(desktop), 폴더, 휴지통이라는 메타포로 그 장벽을 부쉈다. 기계의 언어를 배우는 대신, 기계가 인간의 일상 언어를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그 기원은 제록스의 팰로앨토 연구소(PARC)였고, 스티브 잡스가 그곳을 방문해 본 것을 매킨토시로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디자이너 앞에 새로운 질문이 놓였다. 화면 안의 것들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 질문은 보기보다 깊었다. 5장 끝에서 예고했듯, 디자인은 이제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다루기 시작했다. 화면 속 버튼은 무게가 없다. 소재도 없다. 사출 금형의 제약도 없다. 물리 법칙 대신 약속과 은유만 있는 세계. 디자인의 두 번째 대확장이 시작된 것이다.
인터페이스에서 경험으로
초기 GUI 디자인은 시각 디자인의 연장이었다.
아이콘을 예쁘게 만들고, 버튼의 색상을 정하고, 레이아웃을 구성하는 것.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자연스럽게 이 영역으로 들어왔다. 화면은 또 하나의 캔버스였다. 픽셀은 또 하나의 물감이었다.
그러나 화면은 캔버스와 달랐다.
캔버스는 보는 것이다. 화면은 사용하는 것이다. 포스터는 아름다우면 충분하다. 포스터 앞에서 사람은 멈춰 서서 감상한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앞에서 사람은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메일을 보내려 하고, 문서를 저장하려 하고, 사진을 찾으려 한다. 아름다워도 그 일을 못 하게 만들면 실패다. 디자인의 평가 기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했다. 보기 좋은가에서, 쓸 수 있는가로.
1990년대 초, 애플의 연구원이었던 도널드 노먼 — 6장의 그 노먼이다 — 은 자신의 직함을 스스로 만들었다. User Experience Architect. 사용자 경험 설계자. 이것이 UX라는 단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노먼이 이 단어를 만든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통용되던 단어들이 전부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인터페이스(interface)는 화면을 가리켰고, 사용성(usability)은 쓰기 쉬운가만 따졌다. 그러나 노먼이 보기에 설계의 대상은 그보다 컸다. 사용자가 제품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 매장에서 박스를 보는 순간, 박스를 여는 순간, 처음 켜는 순간, 막혔을 때 도움을 찾는 순간, 그리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순간까지. 그 전체 흐름 안에서 사용자가 무엇을 느끼는가. 디자인의 대상이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경험 전체여야 한다는 것.
단어 하나가 디자인의 범위를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노먼 자신이 훗날 한탄했듯, 그 단어는 곧 통제를 벗어나 모든 곳에 붙기 시작했다. 이 바카라의 12장에서 다룰 인플레이션의 씨앗이 여기서도 뿌려진 것이다.
웹이 폭발했다
1995년 이후, 인터넷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넷스케이프가 상장 첫날 주가가 두 배로 뛰었고, 닷컴이라는 접미사가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웹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업들은 앞다퉈 온라인으로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웹사이트는 쓰기 어려웠다. 정보는 넘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구매 버튼은 있었지만 어디 있는지 몰랐다. 회원가입 양식은 열두 개의 필드를 요구했다. 화려한 인트로 애니메이션이 로딩되는 동안 사용자는 떠났다.
물리적 세계와의 결정적 차이가 여기서 드러났다. 마음에 안 드는 매장에서 나가려면 그래도 문까지 걸어가야 한다. 웹에서는 클릭 한 번이다. 경쟁자는 옆 블록이 아니라 한 클릭 거리에 있다. 사용자의 인내심이 역사상 가장 저렴해진 환경. 이 환경이 UX 디자인을 비즈니스의 사활 문제로 만들었다.
이때 제이콥 닐슨(Jakob Nielsen)이 등장한다. 그는 사용성 테스트를 체계화하고 대중화했다. 방법은 충격적으로 단순했다. 실제 사용자 몇 명에게 과제를 주고 — 이 사이트에서 항공권을 예약해보세요 —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어디서 머뭇거리는지, 어디서 잘못 클릭하는지, 어디서 한숨을 쉬는지. 닐슨은 다섯 명만 테스트해도 사용성 문제의 대부분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거창한 장비도, 대규모 설문도 필요 없었다.
이것이 가져온 전환은 방법 이상이었다. 디자이너의 직관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이 설계의 근거가 되었다. 회의실에서 "내 생각엔 이게 더 좋아 보이는데"라고 말하는 대신, "테스트에서 다섯 명 중 네 명이 이 버튼을 못 찾았습니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취향의 논쟁이 증거의 논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데이터가 들어왔다. A/B 테스트가 등장했다. 버튼이 빨간색일 때와 초록색일 때 클릭률이 얼마나 다른가. 사용자 절반에게는 A안을, 절반에게는 B안을 보여주고 숫자로 판정한다. 디자인의 결정이 측정 가능한 것이 되었다. 구글이 41가지 파란색을 테스트해서 링크 색상을 정했다는 일화는 이 시대의 상징이다. 그 테스트로 연간 2억 달러의 추가 수익을 얻었다는 후일담과 함께, 디자이너의 미감이 데이터에 패배한 시대의 상징이기도 했다. 구글의 비주얼 디자인 바카라임자였던 더글러스 보먼은 바로 그 문화를 비판하며 회사를 떠났다.
사용자 중심 설계라는 혁명
UX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시선의 방향이었다.
그 전까지 디자인은 대체로 안에서 밖을 향했다. 우리가 만든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모리스도, 로위도, 람스도, 결국 디자이너의 판단이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UX는 방향을 뒤집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설계한다.
사용자 리서치가 디자인 프로세스의 첫 단계가 되었다. 인터뷰, 관찰, 설문, 현장 조사. 사용자를 이해하지 않고 설계를 시작하는 것은 잘못된 순서가 되었다. 페르소나(Persona)가 등장했다. 가상의 사용자를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이름은 김수진, 34세, 두 아이의 엄마, 출퇴근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장을 본다. 이 구체적 인물의 목표와 불편함을 설계의 기준으로 삼는다. 추상적인 '사용자들'이 아니라 얼굴이 있는 한 사람을 위해 설계하는 것.
이것은 디자인을 민주적으로 만들었다. 적어도 의도에서는. 디자이너의 취향이 아니라 사용자의 필요가 중심이 된다. 디자이너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기준이 된다. 바우하우스가 꿈꿨던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UX라는 방법론을 통해 드디어 실현 가능해 보였다. 5장에서 본 바우하우스의 미해결 문제 —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가 — 에 UX는 명쾌하게 답하는 것 같았다.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그런데 사용자는 누구인가
UX가 성숙해지면서 불편한 질문이 생겨났다.
사용자 중심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용자를 중심에 두는가.
초기 인터넷 시대의 UX 연구는 특정 집단에 편향되어 있었다. 영어를 쓰는, 인터넷에 익숙한, 기술 친화적인, 젊고 비장애인인 사용자들. 장애가 있는 사용자, 노인 사용자, 디지털 소외 계층은 연구 대상에서 자주 빠졌다. 리서치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섭외하기 쉬운 사용자가 먼저 섭외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용자 중심' 설계는 사실 '섭외하기 쉬운 사용자 중심' 설계였다.
페르소나는 편리한 도구였지만, 동시에 위험한 도구였다. 특정 사용자를 대표자로 설정하는 순간, 그 페르소나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설계에서 지워진다. 김수진을 위해 설계된 앱은 김수진이 아닌 사람들 — 스마트폰이 낯선 칠순의 노인,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 — 에게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된다. 평균을 위한 설계는 평균 바깥을 배제하는 설계다.
그리고 더 어두운 문제가 자라고 있었다. 데이터 기반 설계는 강력했다. 그런데 그 데이터가 최적화하는 목표는 누가 정하는가. 클릭률을 높이는 설계가 반드시 사용자에게 좋은 설계는 아니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UX 방법론을 가장 정교하게 적용한 조직들이었다. 그들이 최적화한 지표는 체류 시간과 참여도였다. 스크롤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무한 피드. 도박의 슬롯머신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당겨서 새로고침. 슬롯적 인정의 욕구를 정확히 타격하는 좋아요 카운트. 떠나려는 순간을 포착해 날아오는 알림.
이것들은 모두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성 테스트를 거쳐, A/B 테스트로 검증된, 교과서적인 UX 설계였다. 방법론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문제는 그 방법론이 섬긴 목표였다.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이, 사용자의 시간과 주의를 채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다크 패턴'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해지 버튼을 찾을 수 없게 숨기고, 구독 동의를 교묘하게 기본값으로 두는 설계들. UX의 지식이 사용자를 상대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험 설계의 바카라임
노먼이 UX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때, 그것은 사용자를 더 잘 섬기기 위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UX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설득 도구가 되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UX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화면 안에서 생각하고, 선택하고, 소비하고, 관계 맺는다. 하루 평균 몇 시간씩,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인류 역사상 이만큼 많은 사람의 일상적 행동에 이만큼 직접적으로 개입한 직업은 없었다.
이 권력은 중립적이지 않다.
화면 안의 버튼 하나, 알림 하나, 피드의 순서 하나가 수억 명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물건의 형태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과 행동의 환경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6장에서 감성 디자인이 정체성을 설계했다면, UX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동 자체를 설계한다.
그 바카라임의 무게를 우리는 아직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가. 트리스탄 해리스 같은 전직 빅테크 디자이너들이 내부 고발자가 되어 주의 경제의 해악을 증언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무서워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 디자인은 또 한 번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면 안의 경험에서, 화면 바깥까지 이어지는 경험 전체로. 다음 장은 서비스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