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기능만으로는 부족했다
1979년 출시된 워크맨은 기술의 승리였다. 작고, 가볍고, 음질이 좋았다. 기능적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트랜지스터 시대부터 쌓아온 소형화 기술의 집약체. 일본 제조업의 정밀함이 만든 결정체였다.
그런데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워크맨의 후속 모델들이 쏟아지면서, 기능이 거의 동일한 두 제품 중에서 소비자들이 일관되게 한쪽을 선택했다. 더 나은 사양을 가진 쪽이 아니라, 더 예쁜 쪽을. 스펙시트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음질 데이터로도, 배터리 시간으로도, 무게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컬러가, 곡선이, 버튼의 느낌이 선택을 갈랐다.
이것은 4장에서 본 디트로이트의 발견 — 형태는 욕망을 따른다 — 의 재발견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디트로이트는 그 발견을 마케팅의 직관으로 다뤘다. 할리 얼의 테일핀은 분석이 아니라 감이었다. 1980년대의 일본은 같은 현상을 공학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감정을 측정하고, 데이터로 만들고, 설계 변수로 번역하는 것. 기능은 필요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를 과학으로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디자인의 다음 챕터를 열었다.
감성공학의 등장
1970년대 일본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시작되었다.
히로시마 대학의 나가마치 미쓰오(長町三生) 교수는 사람들이 제품에서 느끼는 감성을 측정하고 설계에 반영하는 방법론을 개발했다. 그는 이것을 감성공학(Kansei Engineering)이라고 불렀다. 칸세이(感性)는 일본어로 감각, 감성, 직관을 아우르는 단어다. 번역하기 어려운 이 단어를 그는 일부러 학문의 이름에 넣었다. 측정하기 어려운 것을 측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감성공학의 핵심 절차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제품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을 형용사로 수집한다. "부드럽다", "믿음직하다", "고급스럽다", "날렵하다", "현대적이다". 이런 감성 어휘 수백 개를 모은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제품 변형을 보여주며 각 형용사와의 연결 강도를 평가하게 한다. 통계 분석을 돌리면, 어떤 물리적 속성 — 곡률, 색상, 비율, 소재 — 이 어떤 감성과 연결되는지의 지도가 나온다. 감정의 언어와 설계의 언어 사이에 번역 사전을 만드는 것이다.
마쓰다 자동차가 이 방법론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했다. 1989년 출시된 로드스터(MX-5 Miata)를 개발할 때, 마쓰다는 "인마일체(人馬一體)", 사람과 말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개발 목표로 설정했다. 스펙이 아니라 감각이 목표였다. 그리고 이 추상적인 감성을 감성공학의 절차로 분해했다. 인마일체란 무엇인가. 운전자가 차의 반응을 몸의 연장처럼 느끼는 것.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변수들로 구성되는가.
스티어링의 응답 속도, 시트와 엉덩이의 거리, 기어 변속의 스트로크 길이, 그리고 배기음의 주파수까지. 엔지니어들은 말의 질주를 닮은 사운드를 찾기 위해 배기 시스템을 튜닝했다. 차체는 의도적으로 작게, 출력은 의도적으로 겸손하게. 빠른 차가 아니라 즐거운 차. 결과는 성공이었다. 마쓰다 로드스터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2인승 스포츠카다. 출시 3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철학으로 만들어진다.
감성공학이 증명한 것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이었다. 감정은 설계할 수 있다. 운에 맡기거나 천재의 직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으로 접근할 수 있다.
애플이 바꾼 것
1998년, 애플은 아이맥 G3를 출시했다.
반투명 플라스틱, 본디 블루 색상, 달걀처럼 둥근 형태. 손잡이까지 달려 있었다. 당시 컴퓨터 시장은 베이지색 박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컴퓨터는 사무기기였고, 사무기기는 진지해야 했다. 아이맥은 그 안에 폭탄처럼 떨어졌다. 컴퓨터가 귀여울 수 있다는 것, 갖고 싶은 물건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양은 경쟁 제품과 비슷하거나 일부 열세였다. 가격은 더 비쌌다. 그러나 아이맥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출시 첫해에만 200만 대. 파산 직전이던 애플을 살려낸 것은 프로세서가 아니라 반투명 플라스틱이었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물건을 사고 있었다.
조너선 아이브는 이 제품을 설계하면서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순간 미소 짓게 만들 것. 기능 설명서를 읽기 전에, 손을 뻗게 만들 것. 손잡이가 그 원칙의 상징이었다. 데스크탑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 손잡이는 운반용이 아니라 심리용이었다. 만져도 된다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장치. 기계와 인간 사이의 긴장을 풀어주는 디자인.
이것은 감성 설계의 선언이었다. 애플은 이후 모든 제품에서 이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했다. 제품의 포장을 여는 경험 — 애플은 박스를 여는 속도와 저항감까지 설계하는 언박싱 전담 공간을 운영했다 — 전원 버튼을 처음 누르는 순간, 손에 쥐었을 때의 무게감. 기능 이전에 감각. 스펙 이전에 감정. 그리고 세계는 애플을 따라갔다.
도널드 노먼과 감성 디자인의 이론화
산업이 감성을 발견하는 동안, 학문도 같은 곳에 도착하고 있었다.
2004년,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은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을 출간했다. 노먼은 원래 사용성(Usability) 연구자였다. 1988년 출간한 《디자인과 인간 심리(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서 그는 냉장고 문이 왜 헷갈리는지, 전화기 버튼이 왜 잘못 눌리는지, 멀쩡한 어른이 왜 문 앞에서 밀지 당길지 몰라 머뭇거리는지를 분석했다. 잘못은 사용자가 아니라 디자인에 있다는 것. 인지과학의 언어로 디자인을 해부한 이 바카라은 디자인계의 고전이 되었다.
그런데 노먼은 어떤 비판에 부딪혔다. 당신의 원칙대로 만들면 쓰기는 편하지만 못생긴 물건이 나온다는 것. 노먼 자신도 인정했다. 사용성이 좋은 물건이 반드시 사랑받는 것은 아니었다. 불편하지만 아끼는 물건이 있고, 편리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 물건이 있다. 노먼은 이 간극에 주목했다. 인간이 물건과 맺는 관계는 기능적 차원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16년의 연구 끝에 나온 답이 《감성 디자인》이었다.
노먼은 인간이 제품을 경험하는 세 가지 층위를 제시했다. 본능적 층위(Visceral), 행동적 층위(Behavioral), 반성적 층위(Reflective).
본능적 층위는 첫인상이다. 보는 순간 느끼는 것. 아름답다, 매력적이다, 갖고 싶다. 이것은 이성이 개입하기 전에 일어난다. 진화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반응이다. 인간은 날카로운 것을 보면 위험을 느끼고, 둥근 것을 보면 안전을 느끼고, 밝고 선명한 색을 보면 활기를 느낀다. 아이맥의 곡선과 캔디 컬러가 건드린 것이 이 층위였다. 디자이너가 이 층위를 건드릴 때, 소비자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을 경험한다.
행동적 층위는 사용하는 경험이다.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 버튼을 눌렀을 때의 반응,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의 만족감. 노먼은 이 층위를 기능, 이해가능성, 사용성, 그리고 물리적 느낌의 결합으로 설명했다. 좋은 도구를 쓸 때 느끼는 유능함의 감각. 잘 설계된 물건은 사용자를 더 능력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마쓰다의 인마일체가 정조준한 것이 이 층위였다.
반성적 층위는 의미다. 이 물건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내가 이것을 가짐으로써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추억, 자아 정체성, 슬롯적 신호. 노먼은 이 층위가 가장 강력하다고 봤다. 본능과 행동은 순간에 작동하지만, 반성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낡은 시계가 최신 스마트워치보다 소중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시계의 기능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그 시계의 의미는 한 사람의 기억 전체다.
노먼의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디자인의 언어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디자인의 평가 기준은 주로 기능과 사용성이었다. 노먼은 감정과 의미를 설계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디자이너는 이제 물건의 형태만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통해 사용자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기억하는지까지 설계해야 했다. 이것은 디자인의 능력이 한 단계 깊어졌다는 뜻이자, 디자인의 바카라임이 한 단계 무거워졌다는 뜻이었다.
감성이 무기가 될 때
바카라임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감정을 설계할 수 있다는 발견은, 감정을 조작할 수 있다는 발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노먼이 감성 디자인을 이론화하고 십여 년 뒤, 역사학자 설혜심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같은 인간을 분석했다. 인지과학이 실험실에서 도달한 결론에, 역사학은 수백 년의 소비 기록을 통과해 도달했다. 그녀의 저서 《소비의 역사》를 관통하는 명제는 이것이다. "내가 소비하는 것이 나를 규정한다."
인간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산다. 어떤 차를 모는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가, 어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가. 이 선택들은 기능적 필요와 무관하게 슬롯적 신호를 보낸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 집단에 속한다. 나는 저 집단과 다르다. 소비는 욕망의 문제이기 이전에 구별 짓기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것은 산업슬롯의 발명품이 아니라, 소비라는 행위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였다.
디자인은 이 구조 위에서 노먼의 반성적 층위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가장 정교했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대기자 명단은 기능적 이유가 없다. 백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과 관계없이, 대기 자체가 소유의 가치를 높인다. 희소성은 결핍의 결과가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 애플 스토어의 공간은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소속감을 체험시키는 곳으로 설계되었다. 나이키의 한정판 드롭은 운동화가 아니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을 판다. 추첨, 카운트다운, 품절. 이 모든 연출이 디자인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이성적으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설계된 감성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노먼이 말한 반성적 층위의 질문 — 이 물건을 가짐으로써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 에 기업들은 먼저 답을 준비해두었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 됩니다, 라고.
4장에서 계획된 노후화가 불만족을 설계했다면, 감성 디자인의 시대는 정체성을 설계했다. 더 교묘하고, 더 깊이 들어왔다. 물건이 망가져서 새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가 바뀌어야 해서 새것을 산다. 노후화되는 것은 이제 제품이 아니라 자아다.
디자인이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게 된 것은 분명한 진보였다. 인마일체의 즐거움과 아이맥의 미소는 그 진보의 선물이다. 그러나 같은 지식이 버킨백의 대기 명단과 한정판 드롭의 초조함도 만들었다. 이해는 섬김의 도구이자 착취의 도구다. 그 이해가 어디를 향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디자이너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무렵, 디자인의 무대 자체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건에서 화면으로. 다음 장에서는 디자인이 픽셀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