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늘 다음 수를 읽는 엄마

숫자로만 보면 잘되고 있었다.

by교주

고무금은 고등학교를 오래 다니지 않았다. 수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교실 안에 소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와 뒤쪽의 속삭임, 복도에서 뛰는 발소리와 선생님의 설명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수업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무금에게는 하나만 골라 듣는 일이 더 어려웠다.


무금은 교실에서 졸업하는 대신, 교실 밖에서 졸업하는 길을 골랐다. 집에서 검정고시 바카라을 펼쳤고, 혼자 공부하는 방에는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와 연필 소리만 있었다. 그 정도면 견딜 수 있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무금은 고트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들어갔다. 자신처럼 세상의 소리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강의는 흥미로웠지만 대학도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조별 발표 날의 목소리와 학생식당의 식판 소리는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귓속에 남았다.


무금은 이번에도 자신을 졸업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는 검정고시를, 대학에서는 자기 몸이 보내는 신호를 택했다. 정해진 길에서 내려왔지만, 아무 데로나 간 것은 아니었다. 세상 쪽의 소리를 줄여 보고 싶었다.


대학을 그만둔 뒤, 무금은 머물 곳을 찾아다니는 대신 견딜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사람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잠시 숨 쉴 만한 조용함을 만드는 일. 무금은 그 일을 ‘침묵 코치’라고 불렀다. 작은 사무실을 얻은 뒤에는 안쪽 방의 문틈을 막고, 문에 ‘묵음실’이라고 적었다. 무금에게 소리가 덜 힘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곳에서는 조용함을 조절할 수 있었다.


엄마는 처음엔 아들이 치료실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들떴다. 동네 사람을 만나면 인사보다 아들 이야기가 먼저였다. “침묵치료라고. 말로 설명하면 잘 모를 거야. 한 번 직접 받아 봐야 해.”


그날 저녁 예약노트에는 낯선 이름이 다섯 개나 적혀 있었다. “엄마. 이분들은 누구예요?” “우리 노래교실 친구들.” 그날부터 엄마는 예약을 도와주겠다며 치료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어느 저녁, 무금이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서 트로트 음악이 크게 흘러나왔다. 엄마는 앞치마를 두른 채 국자를 마이크처럼 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박자에 맞춰 냄비 불을 줄였다. “왔니?” 무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물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교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이론을 삶으로 번역하고, 멈춤과 고통까지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바꾸는 작가! — 교주 —

22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6화Ep.17 사람이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