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돌아도, 결국 내가 고르는 거였어
준치는 바카라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의학 교과서는 여전히 같은 페이지에 펼쳐져 있었고, 손은 그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눈은 그 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같은 문장을 따라갔는데, 내용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는 바카라을 한 번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준치는 천천히 등을 의자에 기댔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문 너머에서는 저녁으로 넘어가는 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카페에서 들었던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질량보존.
없어지는 건 없다.
모양만 바뀐다.
그 말이 계속 남았다. 준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럼 지금 내가 누리는 건 뭘까. 집, 돈, 안정, 부모가 만들어 준 길. 부모가 원하던 쪽이었다. 그 생각 뒤에 바로 다른 생각이 붙었다.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면… 대신 다른 걸 잃는다…”
잠깐 숨이 막혔다.
준치는 손을 바카라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럼…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지 않나.” 손이 파르르 떨었다. 준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어머니는 식탁 옆에서 반찬을 정리하고 있었다. 늘 하던 동작이었다. 특별히 급하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그 움직임을 한참 보다가, 준치는 말을 꺼냈다.
“엄마.”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왜.”
준치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나 의대… 그만둘게.” 말을 꺼내고 나서야 숨이 조금 가빠졌다. 어머니는 한 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게 전부였다. 준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화가 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유를 묻거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시 반찬을 정리했다. 잠깐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밥 먹어.” 준치는 그 말을 듣고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 밤, 준치는 방에 들어와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바카라은 그대로였고, 방 안 공기는 그대로였는데, 다르게 느껴졌다. 분명 큰 일을 저질렀는데, 너무 조용했다. 그는 갑자기 컴퓨터를 켰다. 파일을 하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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