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혼자라고 생각했던 날들]
발리에 도착해서도 나는 여전히 폐병 환자처럼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몸과 기억이 잠깐씩 인도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라다크의 차가운 공기와 숨이 차던 골목길, 기사 아저씨가 끓여 다 준 물에서 올라오던 뜨거운 김까지.
달갑지는 않았지만, 인도에서 가져온 기념품 같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니 마음은 놓였다. 엄마가 있었고, 몰리가 있었다. 몰리는 처음보다 많이 안정되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직접 보니 나도 조금은 안심이 됐다.
엄마는 내가 인도여행을 다녀와서야 처음 발리에 도착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집에 들어 서자 마자 사실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홀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왔는데도,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그때 엄마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다. 나는 내가 너무 슬퍼서 엄마도 슬프다는 생각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엄마가 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도,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이 집에 들어오실지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엉망이 된 집과 홀리의 흔적, 혼자 남은 몰리, 그리고 퉁퉁 부은 딸의 눈을 보며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생각하니 이내 죄송스러움과 고마움이 함께 몰려왔다.
나는 엄마가 몰리를 돌봐준 덕분에 걱정을 덜고 여행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돌봐준다’는 말 안에 어떤 시간이 들어 있는지는 잘 몰랐다.
엄마는 단순히 몰리의 밥을 챙겨 주기만 한 게 아니었다. 몰리 곁에 있어주면서, 함께 홀리의 빈자리를 견디고 계셨다. 돌아와서야 내가 없는 동안 엄마와 몰리가 보낸 시간이 보여 마음이 찌르르했다.
인도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홀리의 유골을 묻어 주는 것이었다. 홀리의 유골은 홀리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나무 아래 묻어 주기로 했다. 햇빛이 잘 들고, 거실에서도 늘 바라볼 수 있는 화단의 나무였다.
홀리는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 기분이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나무 위로 올라가 담장 너머의 풍경을 구경하곤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는 꼭 나를 내려다보며 야옹 하고 울었다. 마치 이만큼이나 높이 올라왔으니 어서 자기를 봐 달라는 듯이.
나무 아래 땅을 파고 주먹만 한 작은 유골함을 내려놓았다. 홀리가 이렇게 작은 곳에 들어 있다는 게 이상했다. 홀리가 이미 고양이별로 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이곳에 혼자 남겨두려니 마음이 쓰였다. 조심스럽게 흙을 덮고, 그 옆에는 예쁜 꽃 화분을 놓아주었다. 혼자 있어도 무섭지 말라고.
홀리가 떠난 뒤, 먼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지인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효빈이네 청이도, 쿄언니네 럭키도, 서희네 길동이도, Ucup아저씨네 세 마리 고양이도, 모두들 홀리를 마중 나갔을 거라고 했다. 홀리는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겠지만, 내게 익숙한 이름들이라 그런지 마음이 놓였다. 어디에 있든 외롭지는 않았으면 했다.
묘비에는 홀리의 이름과 함께 살았던 해, 그리고 짧은 문구를 새겼다.
Holy
2022–2026
Purr-fectly loved
‘더없이 사랑받은 홀리.’
Perfectly의 앞부분을 고양이가 그르렁거리는 소리인 Purr로 바꾼 말이었다.
그렇게 홀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홀리야, 네가 있어서 내 발리가 완벽했어.
다음 생에는 내가 먼저 너를 알아보고 찾아갈게.
몰리랑 씩씩하게 잘 살 거야. 우리 다시 만나.
마당에 앉아 블루투스 스피커를 켰다. 햇살이 좋은 오후였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홀리가 잠든 자리에도 내려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렸고, 그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도 함께 움직였다.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스치는 땅 위로 작은 반짝임이 일었다. 마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 같았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햇빛이 반짝였다. 홀리가 잠든 자리에는 그렇게 작은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다릴게 나는 너의 나약한 세계도 사랑해
안아줄게 절망 속에 헤엄치고 있는 너를
잠시 동안 멀어져도 늘 이 자리에 있을거야
걱정 말고 잘 다녀와 그곳에선 숨을 트며
모든 것이 너를 토닥여주길
내게 던져두고 가 아무 일도 없듯이
— 안희수, 〈네 어둠은 내가 먹어치울게〉 중
홀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틀어 놓은 노래였다.
이제는 아프지 말라고, 어디에 있든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오히려 홀리가 그 가사를 통해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누나,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홀리를 묻어주고 나서는 포토월의 사진을 바꿨다. 그동안 내가 다녀온 여행지들로 가득했던 자리에 홀리와 몰리의 사진을 붙였다. 인화한 사진은 집 안 곳곳에도 놓아두었다. 보고 싶을 때 바로 볼 수 있었으면 했다. 기억해야 한다고 애쓰지 않고, 그냥 눈에 들어오면 보고, 생각이 나면 그리워하고 싶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문득 사진을 바라봤다. 일을 하다가 익숙한 ‘냐옹’ 소리가 들린 것 같으면 잠시 포토월 앞으로 갔다. 우리에게는 재미있고 우스운 추억이 참 많았다. 사진을 보다 보면 슬프다가도 웃음이 났다. 홀리에게 이런 표정이 있었지. 이때는 이런 일이 있었지.
한동안 홀리를 생각하면 마지막 병원에서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는데, 사진 속에는 함께 살던 평범한 날들이 있었다. 홀리가 아프기 전에도 우리에게는 긴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까지 모두 슬픈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어느세 인도에서 가져온 기침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시작했던 요가 수련도 다시 이어갔다. 일을 하고, 몸을 움직이고, 몰리를 챙기는 사이 생활은 조금씩 익숙한 루틴을 되찾았다. 몰리도 더는 홀리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둘의 일상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자, 엄마도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셨다.
마치 모든 퀘스트를 끝낸 전사처럼, 엄마는 자신의 일상으로 귀환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