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에게 건네는 것들

[3부. 멀리 와서야 보이는 것들]

byJEN

그렇게 시작된 고열은 여행이 끝나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매일 밤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산병 증상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기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낮에는 어떻게든 괜찮은 척할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고, 풍경을 보고, 밥을 먹는 동안에는 열이 난다는 티를 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침은 숨길 수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기침 탓인지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도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모두가 조금씩 나를 배려해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차의 앞자리를 기꺼이 내어주었고, 저녁이 되면 내가 밥은 먹었는지 챙겼다. 그럴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나 때문에 여행이 불편해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기사 아저씨 놀부는 어느 날 작은 양철 냄비 하나를 들고 내 방으로 찾아왔다. 냄비 안에는 허브와 생강을 넣고 끓인 뜨거운 물이 담겨 있었다. 김이 펄펄 올라왔다. 이 김을 코와 목으로 천천히 들이마시면 기침이 좀 나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뜨거운 김을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코와 입으로 들이마시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사람이 내 기침 하나를 걱정해 이렇게 물을 끓여 방까지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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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홀리는 다시 문득문득 떠올랐다. 다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홀리가 떠오른다고 해서 매번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슬픔보다 내 몸이 먼저 아팠다. 열이 오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기침이 시작되면 숨을 고르는 일에 집중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면 그냥 눈을 감고 누워 있고 싶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홀리를 생각하면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홀리를 떠올리고도 다시 눈앞의 하루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게 괜찮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내 몸이 너무 아파서 오래 슬퍼할 힘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죄바카라감도 미안함도 오래 붙잡고 있을 겨를 없이, 그저 이놈의 감기가 빨리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인도에서 앓고 있는 동안, 발리의 집에서는 엄마와 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몰리는 여전히 홀리를 찾았다. 원래 몰리는 밖에 나가면 한참 동안 돌아다니다 들어오는 아이였는데, 홀리가 사라진 뒤로는 멀리 가지 않았다고 했다. 홀리가 자주 머물던 집 안의 자리들을 계속 오갔고, 밖에 나가서도 홀리가 다니던 동선을 빙빙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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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가장 좋아했던 건 매일 밤 나눠 먹던 츄르였다. 몰리는 여전히 츄르를 좋아했지만, 먹다가도 몇 번씩 뒤를 돌아봤다. 마치 늘 자기 옆에서 함께 먹던 홀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엄마가 보내준 사진과 영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고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홀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리에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홀리가 너를 두고 어디론가 가버린 게 아니라고,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 언젠가 다시 말날 테니 우리 힘내서 잘 살아보자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몰리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홀리가 있던 곳을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처음처럼 온종일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도 조금씩 짧아졌다.


체념이라는 말을 고양이에게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몰리 역시 자기 방식대로 홀리가 없는 하루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대신 엄마 곁에 더 오래 머물렀고, 전보다 더 자주 붙어 있었다.


인도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돌보고 있었고, 발리에서는 엄마가 몰리를 돌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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