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매트 위에서 시작된 타임슬립

[1부. 떠나기로 작정한 순간, 과거가 돌아왔다]

byJEN

인도여행 일정에는 요가 세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랴부랴 요가 수련을 다시 시작했다. 다시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멋쩍을 만큼 오래 손을 놓고 있었지만, 인도에 가서 요가를 제대로 즐기려면 기본기라도 좀 만들어 두고 싶었다.


인도까지 두 달. 처음에는 여행 때문에 억지로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 겨우 매트 위에 올라갔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욕심이 생겼다. 일주일에 네다섯 번, 시간이 나는 대로 요가를 했다.


요가는 사실 내가 즐겨 하던 운동은 아니었다. 나는 요가의 성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발리에 살고 있고, 언제든 요가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지만 좀처럼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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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수련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동작은 평소보다 깊게 들어갔고, 잘되지 않던 자세도 이상하리만큼 부드럽게 이어졌다. 호흡은 일정했고, 동작을 바꿀 때마다 수축하고 이완되는 몸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어떤 날은 같은 시간, 같은 선생님의 수업인데도 한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잘되던 동작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지루했고, 힘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날의 몸 상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번의 수련을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차이는 몸보다 마음에 있었다.

특히 힘들었던 날에는 마음이 좀처럼 요가원 안에 머물지 못했다.


‘오늘 일이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하지.’

‘점심은 뭘 먹지.’

‘여행 준비는 또 뭐가 남았더라.’


사소한 걱정부터 잡다한 생각까지, 마음은 날개라도 단 것처럼 자꾸만 매트 밖으로 날아갔다. 그러는 날에는 몸도 함께 무거워졌다. 그런데 이렇게 떠나가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서부터 요가가 조금 재미있어졌다.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면 다시 호흡으로 데려오고, 내가 움직이고 있는 몸에 붙잡아두었다. 발바닥이 매트에 닿는 감각,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 들숨과 날숨. 그 순간만큼은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거, 어디서 해본 것 같은데."


호흡을 보고, 몸의 감각을 따라가고, 다른 곳으로 달아난 마음을 알아차린 뒤 다시 지금으로 데려오는 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스무 살 무렵 미얀마에서 했던 위빠사나 명상과 꽤 닮아 있었다. 오래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요가 매트 위에서 갑자기 돌아왔다.




스무 살의 나는 엄마의 권유로 명상을 하러 미얀마의 숲속 수행처에 간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명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순히 새로운 곳으로 탐험하고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찾아간 곳이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 수행을 하고 아침 예불을 드렸다. 아침을 먹고 나면 다시 오전 명상,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저녁이 될 때까지 또 명상 수행이 이어졌다. 걸을 때는 늘 시선을 바닥에 두어야 했고, 석 달 동안 명상에 관한 인터뷰 시간을 제외하고는 묵언을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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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나는 매일 하고 싶은 일이 넘쳐 흐르던 사람이었다.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그런 나에게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머물며 눈앞의 것조차 마음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생활은 버거웠다.
매일 불평했고, 매일 집으로 뛰쳐가고 싶었다. 사실 원하기만 했다면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를 붙잡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러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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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스님 한 분을 만났다. 한국에서 오신 스님들은 대부분 익히 알고 있던 회색 승복을 입고 계셨다. 그런데 그 스님은 달랐다. 미얀마 스님들처럼 감색 천을 두르고 그들 사이에 섞여 생활하셨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인지조차 몰랐다.

알고 보니 스님은 미얀마에서 출가를 하셨고 미얀마어를 하셔서 명상 스승과 영어로 소통이 어려운 한국인 수행자들의 통역을 도와주고 계셨다. 묵언 수행이 원칙이었기에 스님과도 많은 말을 나눌 수는 없었다. 대신 명상 수행을 보고하기 위해 쓰던 노트에 스님은 가끔 나를 위한 짧은 말을 남겨주셨다.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더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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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러 온 외국인들 사이에서 나는 유난히 어린 편이었다. 스님 역시 그곳의 한국인 스님들 가운데 젊은 편이셨다. 그래서였는지 스님은 스무 살짜리 내가 이 생활을 얼마나 버거워하는지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정확히 어떤 말들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명상 노트에 손글씨로 써주신 그 몇 자의 말은 수행을 하는 동안 위안이 됐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아침이면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다시 명상실로 갔다. 하기 싫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명상을 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봐 주고 있는 사람에게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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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선이 너무 분주하면 마음에도 사심이 들어오기 쉽다고 배웠기에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시선을 단속했다. 많은 것을 보지 않으려 했고, 많은 것을 듣지 않으려 했다.
처음에는 나를 옥죄는 것 같았던 규칙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묵언도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내 주변에는 한국어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을 향하던 감각이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행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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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의 수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무렵, 수행 노트 마지막 언저리에 스님은 당신의 싸이월드 주소를 적어주셨다. 당시 스님도 출가하신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이 살아오던 세상과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내게 보여준다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꽤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싸이월드 주소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었을까 싶지만 그곳에서는 달랐다. 석 달 동안 말도, 시선도, 바깥 세상과의 접촉도 줄이며 살았다. 그런 시간의 끝에서 건네받은 주소 하나는 왠지 스님이 자신의 이전 삶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열어준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그것이 좋았다. 스님에게 나도 조금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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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스님의 싸이월드를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스님의 시간이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셨구나.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 사진을 좋아하셨구나. 미얀마에서 감색 가사를 두르고 있던 스님에게서 평범한 한국 청년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묘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무리의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인도였다. 낯선 거리와 사람들, 먼지가 내려앉은 풍경, 히말라야 산맥, 가사를 두른 고승,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사진 속 인도는 내가 바카라을 읽으며 상상했던 인도와 닮아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때는 그저 나도 언젠가 저곳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수많은 여행 사진을 보았고, 나 역시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사진을 찍고 또 잊어버렸고, 한때는 선명했던 풍경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무 살에 보았던 스님의 인도 사진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요가 매트 위였다.


미얀마의 숲속 수행처를 떠올린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한 번 열린 기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새벽의 명상실과 수행 노트, 감색 가사를 두른 스님, 그리고 오래전 싸이월드에서 보았던 인도의 사진까지 차례로 떠올랐다.


문득 스님이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해졌다.


그동안 스님을 전혀 떠올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가끔 잘 지내고 계실까, 건강하실까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전 알고 지낸 사람을 문득 떠올리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스님을 찾고 싶었다.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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