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떠나기로 작정한 순간, 과거가 돌아왔다]
"같이 인도 갈래?"
이 말을 한 사람은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인탄(Intan)이었다.
인탄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기억에 남은 건 얼굴도, 직업도 아니었다. 바로 언어였다. 나는 인도네시아어를 아주 능숙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현재 인도네시아, 발리에 거주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인탄이 쓰는 단어들은 유난히 아름답게 들렸다. 그리고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과 말투, 몸짓이 그 말을 더 반짝이게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에도 계속 듣고 싶어지는 그런 말이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으로 다이빙 여행을 갔다가 만났다. 처음 만난 그날 저녁, 인탄은 자기가 가져온 싱잉볼로 잠깐 명상을 할 건데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눈을 감고 앉아 인탄의 목소리를 듣는데 낮에 느꼈던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 사람은 말을 참 따뜻하게 하는구나."
정확히 어떤 문장을 말했는지는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탄이 건네는 말에는 이상하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따뜻한데 흐리지 않았고, 부드러운데 힘이 있었다. 불편한 이야기조차 멀리 밀어내지 않고, 내가 있는 자리 가까이 가져와 천천히 바라보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명상을 하는 내내, 인탄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붙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
“Ada masa untuk bertumbuh, membuat, memberi,
dan ada masa untuk diam, beristirahat, mendengarkan.”
자라나고, 만들어내고, 내어주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멈춰 서서 쉬고,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하는 시간도 있다.
— Intan Anggita Pratiwie (인도네시아어 원문, 필자 번역)
이렇게 만난 인탄이 정말 뜬금없이 인도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순간 마음이 이상하게 들떴다. 인도라니. 내가 그렇게 오래 품고도 끝내 꺼내지 못했던 인도라니!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 앞을 서성였는데, 내가 열기도 전에 안에서 문이 열린 느낌이었다. 인탄은 그 문 너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늘 혼자 여행했고, 혼자 떠나는 일에 은근한 자부심도 있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며칠씩 붙어 여행하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여행은 애초에 잘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탄과는 가고 싶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그랬다.
인탄과 함께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하며 인도의 골목길을 거닐 상상을 하자, 인도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오래전 류시화의 바카라을 읽으며 인도를 상상하던. 십 대의 설렘이 다시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