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10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내가 느끼는 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지는 때가 찾아오면 조금씩 행동이 고장이 난다.
어떠한 감정이 생겨서일 수도 있고, 도달해야 하는 목적 때문일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은 사라지고 상대방에게 맞추어 움직이는 뚝딱거리는 로봇이 되어버린 나를 본 적이 있다.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머릿속에는 지시어들만 가득하다.
그런 표정 말고 좀 더 웃어야지.
이런 말투 말고 조금 더 진중하게 말해봐.
그 행동은 별로야. 좀 더 차분하게.
정작 중요한 말과 행동은 멀리 보낸 채 껍데기만 보여주는 꼴이 되고 만다.
여럿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대화에 집중하는 대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바빴다.
'이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나는 정말 싫어하는데, 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
'저 친구는 어떤 슬롯 이슈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데, 굳이 내 생각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한 마디씩 삼키다 보면 정작 내 생각은 대화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불편함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더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타인에게 억지로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다.
잘 보이기 위해 시작된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편안해야 할 만남이 시험을 치르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는 말은 사람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않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어색한 침묵이 흘러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 서로의 속도를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남았다.
애써 얻은 인연이 아니라, 애쓰지 않아도 이어진 인연들.
그래서 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럽게 남는 사람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