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지던 타워펠리스 지하 주차장, 수백만 원짜리 비숑 프리제의 줄을 잡은 윤태성의 손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보육원 퇴소 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건설 현장 노가다부터 야간 편의점, 택배 상하차까지. 하지만 강남 한복판, 하늘을 가릴 듯 높게 솟은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명품 강아지의 대변을 치우는 일이야말로 태성에게 가장 잔인하게 현실을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개 한 마리의 한 달 사료비와 영양제 값이 자신의 한 달 월세보다 비싼 세상.
"태성 씨, 모카 산바카라 다 시켰으면 로비로 올라와요. 오늘 회장님 손님 오시니까 주차장에 서성거리지 말고."
인터폰 너머로 들려오는 입주민의 차가운 목소리에 태성은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는 굴욕감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눈빛만큼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정돈된 고급 구두와 비싼 향수 냄새, 가볍게 주고받는 수백억 단위의 투자 이야기 속에서 태성은 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없는 것, 그리고 저들이 가진 것. 태성은 타워펠리스의 펜트하우스를 올려다보며 속으로 맹세했다.
'너희들의 개처럼 일해주마. 하지만 결국 그 목줄을 쥐는 건 나다.'
태성은 강아지 산바카라 알바를 단순한 육체 노동으로 쓰지 않았다. 개의 성격과 동선을 파악하듯, 타워펠리스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상위 0.1% 권력자들의 습관과 취향, 그들이 나누는 비공식 정보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알바생에 불과했지만, 태성에게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비즈니스 현장이자 기회의 장이었다.
바닥에서 시작해 상류층의 목덜미를 물어챌 남자의 도전이,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모카 사료는 아침 8시 반에 유기농 연어 사료 50그램, 오후 6시에는 닭가슴살 토핑을 얹어서 줘야 해요. 영양제는 영란 언니가 보내준 특제 파우더 반 스푼. 알죠?"
"네, 사모님. 정확히 맞춰 드리겠습니다."
태성은 고개를 숙이며 깔끔하게 다려진 슬랙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끝에 잡힌 것은 작고 낡은 수첩 하나였다.
타워펠리스 C동 5302호. IT 벤처로 자수성가해 상장에 성공한 한성그룹 대표의 자택이었다. 사모님이라 불리는 여자는 태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은 채 명품 백을 챙겨 들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