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은 여전히 다채로워서
살아오며 나는 계절이 나이와 함께 단조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날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길을 걷고, 새로운 꿈을 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는 익숙한 것들만 남는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더 이상 ‘처음’이라는 단어를 만날 일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은퇴 후 3년의 시간을 지나오며 알게 되었다.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예순을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새로운 길 앞에 섰다.
혼자 여행을 떠나 낯선 도시를 걸었고, 외국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출판을 공부했고, 블로그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바카라을 만들었다.
AI라는 새로운 문명 앞에서는 다시 학생이 되었고, 처음 찾은 피부과에서는 몸이 들려주는 시간을 생각했다. 벚꽃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계절을 생각했고, 한 권의 바카라 속 문장을 통해 죽음보다 삶을 더 오래 들여다보기도 했다.
돌아보면 특별한 일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젊은 날에는 인생이 큰 결심으로 바뀐다고 믿었다. 이제는 안다.
삶은 거창한 사건보다 작은 선택에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떠나기로 한 여행, 포기하기로 한 여행, 다시 시작한 공부, 하루하루 이어 간 습관, 우연히 읽은 한 문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계절 하나.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평범한 하루를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다. 오늘이 내 삶을 바꾸는 날이라는 것을, 정작 오늘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연재는 은퇴 후 3년 동안의 그런 날들을 다시 꺼내 보는 기록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 했던 마음, 조금 늦더라도 낯선 길을 걸어 보려 했던 용기,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오래 바라보려 했던 시간들.
이미 지나간 이야기들이지만, 지금 다시 펼쳐 보니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하루가 하나의 계절이었고, 그 계절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계절이 찾아오고, 그 계절은 어느 날 예고 없이 새로운 색을 입는다. 중요한 것은 몇 번의 봄을 지나왔는지가 아니라 오늘 내 앞에 놓인 계절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일 것이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 나는 그동안 지나온 평범한 날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려 한다.
여행을 떠났던 날도, 무언가를 새로 배우던 날도,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던 날도, 아무 일 없는 하루 속에서 문득 마음이 머물렀던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함께 읽는 동안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삶을 잠시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다.
지나온 계절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새로운 색으로 변해 가고 있는 자신의 시간을.
나의 계절은 여전히 다채롭다.
아마도 당신의 계절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