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들을 재운 후 남편과 건물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링크를 공유하며 물건을 추리고 있었는데, 재개발 투자 전문가가 갑자기 어떤 동네를 소개했다. 아파트 촌 사이의 마지막 남은 오래된 동네지만, 역세권이고 학군도 괜찮은 곳. 문제는 이 동네만 주택가라는 거다.
왠지 모르게 임장이 하고 싶어졌다. 바로 다음날 그 동네를 찾았다.
유튜브 영상대로 오래된 주택이 즐비한 곳이었다. 아이들이 여느 날처럼 씽씽이를 타고 놀고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애들 웃음소리가 들리다니, 이제 사람 사는 곳 같네”
노모의 손을 잡고 산바카라을 하던 중년 남성분도 웃으며 한마디 했다. 처음 뵌 분 같은데, 이사 오셨나 봐요.
집 보러 왔다고 차마 말을 못 하고 웃고 말았다. 서울 한가운데 아직 이런 곳이 남아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다행히 동네에 나온 매물이 몇 개 있었다. 우리 예산에 들어온 매물은 딱 2개였고 앞에서 찰칵 뒤에서 찰칵 사진을 찍었다. 근처 초등학교에선 아이들 소리가 멀리 퍼져나갔고 우리 아이들이 갑자기 저 학교를 가보고 싶다며 달려갔다. 어어, 뭐야, 이거 운명인가? 뛰면서 생각했다. 바로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다다음날, 회사 끝나고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부동산 사장님 께지 모두 집 앞에서 만났다. 집주인은 85세 할머니었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시던 분이었는데, 어찌나 건물을 깨끗이 관리하셨느지 먼지 한 톨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보며 환히 웃었다.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오래된 나무 인테리어가 날 반겼다. 목재로 가득한 계단을 올라가자 특이하게도 다락방이 있다. 와,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무가 한가득인 이 오래된 주택에 모든 것을 빼앗겨버렸다.
지금까지 인테리어를 여러 번 했지만 희멀건한 인테리어에 염증을 느끼던 차였다. 늘 매도를 염두에 뒀기에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대에 맞는 것, 튀지 않는 것, 고급스러운 것. 이 3가지 중심으로 인테리어를 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 오래된 나무가 주는 편안함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러버렸다. 나무가 가득한 이 집에서 옹기종기 놀 아이들을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여기다, 여기다, 여기다!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부동산 사장님이 한마디 휙 던졌다.
“예전 그 할머니집은 썰매 타면 휙 미끄러지겠던데, 그곳보다 훨씬 낫네. 그래도 여긴 희망이 있잖아 “
우리 아이들은 이 근처 학교를 다니게 될 것이고, 나는 여기에서 출퇴근을 하게 될 것이다. 회사까지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 봤다. 흐음, 도어 투 도어까지 지금보다 30분 줄어드네. 첫째는 여기, 둘째는 여기 보내면 되겠다. 나 혼자서 이미 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마친 후였다. 그런데 월세가.. 월세 수익률이 형편없었다. 아무리 재개발 빠꼼이가 추천해 준 동네라지만, 앞으로도 어찌 될지 모른다. 좋아하다 신중해지다 좋아하다 신중해하는 날 보며 할머니가 말했다.
“여기에서 계속 살고 싶은데, 아들이 너무 강경해서 어쩔 수가 없네…”
이 어르신도 같은 이유에서 집을 파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대가 바뀌는 건가, 우리 집도 지금 파는 집도 모두 노인들의 손바뀜을 통해 다음 세대인 우리가 받는 형국이었다. 이어 미리 연락을 마친 세입자들과 인사를 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집 문은 쉽게 열렸고 세입자들은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가자마자 매수 의사를 전달했다. 딱 봐도 우린 살 사람처럼 보였는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잠시 기다려보라는 답이 들려왔다. 쓸쓸한 눈빛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어르신은 그곳에서 계속 살고 싶었던 것이었다. 30년 넘게 산 곳을 떠나려니 싫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 같아도 그럴 것이니까.
연휴가 지났다. 그 사이 이 집을 매수하겠다고 한 사람이 또 나왔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먼저 매수의사를 밝혔기에 우리에게 팔게 됐다는 사연을 전해 들었다. 대신 조건이 붙었다. 잔금일을 최대한 늦게 하자는 게 조건이었다. 괜찮았다. 매수같이 큰 일에선 의외로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앞선다.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었다.
꼭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쉬어야 하냐는 팀장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첫째 주 금요일에 연차를 썼다.
공동명의에 도장을 꾹꾹 눌러 찍고 나니, 얼떨결에 지분 50%를 갖고 있는 건물주가 됐다.
나도 이제 건물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