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나의 삶은 확 바뀌었다. 틈날 때마다 부동산 어플에서 단독/다가구를 검색하는 게 일상이 됐다. 싸고 좋은 건 없었지만, 그 어려운 것을 내가 반드시 해내겠노라 다짐했다. 아파트는 너무 올라버렸고 무엇보다 세금이 엄청났기에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없었다. 다행히 건물을 가지고 있는 친척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건물주로 사는 거 어때?”
“너무 좋지, 그런데 아파트가 최고야. 너 내 거 살래? 내가 싸게 해 줄게 “
내놓은 지 꽤나 되었는데도 건물은 팔기 어렵다던 친척의 볼멘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건물로 가득 찬 후였다.
부동산 매물을 확인하고 보러 가고 물건 브리핑을 받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본 게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어느 건물을 발견했다. 가격도 저렴했고, 월세 수익률도 저렴했다. 머뭇거리는 남편을 설득했다, 얼른 보러 가자고. 또 이러다가 놓치겠다고.
지금 돌이켜보니 바람잡이가 필요 없다. 내가 바람잡이 역할을 한 셈이니까. 남편은 신중하고 진중해서 이것저것 재보는 스타일인데 나는 일단 지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남편이 알아보다가 내가 마음을 먹으면 거래가 성사되곤 했다.
드디어 약속날,
우리 부동산 사장님, 상대측 부동산 사장님, 집주인, 집주인 첫째 딸, 그리고 우리
물건은 하나인데 사람만 10명이었다
집주인은 정정한 할머니였다. 100세까지 7년 남은 93세라고 하셨다. 내 생에 모든 노인을 통틀어 가장 정정한 93세였다. 늘 그렇듯 북적북적 건물 구경을 했다. 평소 인심 좋은 집주인이었는지 세입자들도 흔쾌히 집을 보여줬다. 어느 집은 깨끗했고, 어느 집은 담배냄새가 자욱했다. 지대가 높아 인테리어 어떻게 하지, 걱정부터 되었다. 이미 난 머릿속으로 매수까지 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 방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엄청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피가 철철 넘치는 이빨을 드러내며 크아앙 겁을 주고 있었다. 왼쪽에도 호랑이, 오른쪽에도 호랑이였다. 할머니께 ‘집 보러 온 사람에게 예쁘지도 않은 호랑이 그림을 사방팔방에 붙이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나는 가격조정을 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93세의 할머니가 집을 매도하는 이유는, 노쇠하여 첫째 딸 곁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란다. 가기 싫다는 말을 뒤로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은 진심이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이었다. 하지만 나를 보며 웃으셨다. 새댁같이 기운이 좋은 사람에게 우리 집을 넘기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틀니를 드러내고 환히 웃으셨다.
할머니가 브리핑에 연신 열을 올리셨다, 여긴 이래서 좋고, 저긴 저래서 좋고, 한 귀로 흘리고 한 귀로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마디 하신다. 이 산이 정기가 좋아 본인 자식들이 다 잘 됐고,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그러고 보니 밖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첫째 딸 차인 회색 메르세데스 벤츠가 생각났다. 강남구 사는 회색 벤츠를 모는 93세 집주인의 첫째 따님.
인자한 모녀의 얼굴. 인자하지 않은 건 피가 가득한 이빨을 드러내고 크아앙 울고 있던 호랑이와 담배연기뿐이다. 하지만 그 호랑이가 머릿속에 가득 차버려서 다른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서 살고 싶어?”
“아니, 호랑이가 너무 무서워 “
아이들도 호랑이 그림을 보더니 바로 가쟨다. 무섭다고. 이렇게 어설프게 건물구경은 끝이 났다.
밖으로 나와 네고를 시작했다. 우리가 제시한 금액을 듣자 상대측은 펄쩍 뛰었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결국 가족회의를 후 결정을 하기로 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후 나는 그 건물을 잊지 못해 1시간 30분 걸려 한번 더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우연히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그 할머니는 씁쓸하게 웃었다. 분명 처음 뵈었을 때는 환하게 웃으셨는데 이젠 억지웃음이었다. 나도 민망해져서 인사를 꾸벅 남기고 나오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돈은 냉정한 것을.
예상대로 그 가족은 가족회의를 거쳤다. 입질이 들어왔을 때 팔자는 첫째와 둘째의 의견과 ‘단 1원도 깎아줄 수 없다’는 셋째 아들의 말에 거래는 무산되었다. 네고도 네고였지만, 막상 사려고 하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파트는 환금성이 좋지만 다가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뜨뜻미지근하게 그렇게 그 거래는 끝이 났다. 계속 네고를 시도하는 것도 실례이기에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하려고 했는데 1원도 못 깎아준다는 말은 매수자인 나도 기분이 팍 상했던 탓도 있다.
할머니 건물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새로운 매물을 계속 뒤지는 하루가 계속됐다.
끝끝내 할머니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난 이제 진짜 건물주가 되고 싶다. 그런데, 이제 뭘 하나 포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가격을 포기하던지, 월세수익을 포기하던지.